ESG 외치다 영업비밀 침해로 LG에 2조원 물게 된 SK이노

송기영 기자 2021. 4. 1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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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096770)이 LG에너지솔루션과의 배터리 분쟁에서 2조원의 합의금을 지급하기로 한 것과 관련해, 재계에서는 SK 측이 사실상 완패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역대 글로벌 영업비밀 침해 분쟁 가운데 최고 배상액을 LG(003550)에 지급하기로 한 것은 결국 SK 측이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강조하고 있는데, 영업비밀 침해가 ESG 경영기조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 회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있다.

이번 배터리 분쟁은 SK이노베이션이 2017~2019년에 LG에너지솔루션(당시 LG화학(051910)) 직원을 대거 영입하면서 불거졌다. SK이노베이션은 김준 사장이 2017년 1월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한 뒤 배터리 사업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SK이노베이션 제공

12일 업계에 따르면 김 사장은 LG에너지솔루션과의 배터리 분쟁 합의를 발표하기 전날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불확실성이 사라졌으니 우리 기술과 제품 경쟁력으로 저력을 보여주자"고 밝혔다.

김 사장은 LG에너지솔루션과 2조원에 합의한 이유에 대해 "전기차와 배터리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시점에서 소모적인 소송 절차에 얽매이기보다 사업의 본원적인 경쟁력 강화에 집중하는 것이 회사와 국가 전체의 산업 경쟁력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해 합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김 사장은 영업비밀 침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업계는 이번 합의로 SK측이 사실상 영업비밀 침해를 일부 인정한 것으로 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2조원의 합의금 중 1조원을 로열티로 지급하기로 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번 합의에 대해 "배터리 관련 지식재산권이 인정받았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SK이노베이션은 그동안 영업비밀을 침해하지 않았다며 LG에 수천억원에서 1조원 수준의 합의금을 제시했다. LG는 영업비밀 침해와 미래 손실 등을 추산해 3조원의 합의금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이번 배터리 분쟁과 관련해 SK이노베이션의 신용등급을 낮췄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1월 SK이노베이션 기업신용등급 및 선순위 무담보 채권등급을 'Baa2'에서 'Baa3'으로 하향조정했으며,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신용등급을 'BBB' 등급에서 투자 등급 최하단인 'BBB-' 등급으로 강등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회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대한상의 제공

SK이노베이션은 이번 합의로 미국 시장을 지켰지만, 배상금 지급에 따른 재무부담이 가중될 전망이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2조568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현금성 자산은 작년말 기준 3000억원 수준이다. 부채비율은 149%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월 미 국제무역위원회(ITC)가 'SK가 LG의 배터리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는 결정을 내린 이후에도 LG와의 합의에 소극적으로 임했다. 대신 미국 배터리 시장 완전 철수라는 ‘배수의 진’을 치고 미국 바이든 행정부에 로비를 펼쳤다.

SK는 캐럴 브라우너 전 환경보호청(EPA) 청장, 샐리 예이츠 전 법무부 부장관 등 관련 인맥이 넓은 인사들을 고용해 바이든 대통령에 거부권 행사를 호소했다. 김종훈 이사회 의장과 김준 사장도 미국으로 건너가 거부권을 끌어내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끝내 거부권을 이끌어내는데는 실패했고, 결국 LG와 합의했다.

두 회사의 배터리 분쟁은 2017년∼2019년에 LG화학 직원 100여명이 SK이노베이션으로 대거 이직하면서 시작됐다. LG 측은 배터리 후발주자인 SK가 자사 직원들을 노골적으로 빼갔고 핵심 배터리 기술이 유출됐다고 의심했다. 업계에서는 김 사장이 취임한 이후 배터리와 소재사업에 승부수를 띄우고 LG 측 인력을 대거 영입하면서 분쟁이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강조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거리가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은 지난 6일 SK이노베이션의 ESG 등급을 A+에서 A로 한 단계 낮췄다. 경쟁사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사회적책임경영’ 분야에서 등급을 하향 조정한 것이다.

최 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ESG를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8일 ‘상하이 포럼 2020’ 개막연설에서는 "기업들이 친환경 사업, 사회적 가치, 신뢰받는 지배구조 등을 추구하는 ESG 경영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이뤄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취임 간담회에서는 "ESG는 누군가가 하겠다거나 하지 않겠다고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이미 몇 년 전부터 세계적 흐름이었다. ESG를 추진할 때 어떻게 디테일을 잡느냐에 따라 글로벌 시장을 주도할 수도 있고, 뒤처질 수도 있다. 대한민국 기업의 창조성을 바탕으로 ESG 분야에서 세계를 리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SK그룹 안팎에선 "LG의 배터리 사업부 인력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영업비밀 침해 문제를 야기하고, 분쟁 과정에서 끝까지 합의를 늦춰 전 세계적으로 SK그룹 이미지를 실추하고 SK 배터리에 대한 불신을 야기한 것에 대해 CEO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분쟁이 (미국 법원의 판결이 아니라) 합의로 끝났으므로 SK이노베이션이과 CEO에게 잘잘못을 묻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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