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문앞' 대신 배달, 택배기사에 수수료 떼는 아파트
대행업체 개당 500원씩 수수료 받아
대행업체 "수수료 받아야 우리도 운영"
해당 아파트 "금시초문"
택배기사 ㄱ씨는 보통 한 상자를 배달할 때 800원을 번다. 그러나 서울 마포구의 한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에 배송을 갈 때는 개당 300원으로 수입이 줄어든다. 택배기사의 출입을 금지하는 이 아파트가 계약한 ㅅ대행업체에 택배 1개당 500원의 수수료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ㅅ업체는 택배기사들에게 수수료를 받고, 택배를 지하 주차장에서 받아 입주민 현관 앞까지 옮겨준다. ㄱ씨는 “많게는 한달에 100만원 가까이 낸 적도 있다. 일을 하면 돈을 벌어야 하는데 이런 고급 아파트에 내가 돈을 내가며 배달해야 하는 현실이 잘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택배기사의 출입을 금지하며 내세운 대행업체가 기사들에게 과도한 수수료를 떼가는 아파트가 있어 기사들의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해당 대행업체는 “아파트에서 받는 돈만으로는 운영이 안 된다”는 입장이라, 아파트 쪽에서 ‘을과 을’의 갈등을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2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해당 아파트는 2012년 완공 뒤 ‘입주민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택배기사들의 출입을 막고, 대신 택배대행업체를 계약했다. 택배 기사들이 지하주차장에 짐을 내리면 대행업체 직원들이 이를 받아 입주민 현관문이나 상가 앞까지 택배를 배달하는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이 아파트는 분양 당시 외부인 출입통제 등 철저한 보안시스템을 장점으로 내세웠다.
직원 4~5명으로 구성된 ㅅ업체는 매달 아파트 입주민들이 내는 관리비 가운데 일정 금액을 받고, 아파트에 출입하는 10여개 택배회사 기사들의 배달 수량을 정산해 한 달에 한 번씩 수수료를 받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택배기사들은 ㅅ업체가 받는 수수료 액수가 과도하다고 토로한다. 특수고용직인 택배기사들은 보통 월급을 받지 않고, 배송하는 상자 개수에 따라 한 달 수입이 결정된다. ㅅ업체에 수수료를 내면 수입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 해당 아파트를 담당해온 택배기사 ㄱ씨는 “연예인이나 고위층이 많이 산다고 아파트 출입이 처음부터 금지됐다. 대행업무 입찰 금액이 싸서 그런건지 대행업체가 모자란 운영비를 택배기사에게 요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택배기사 ㄴ씨는 “지난해까지 ㅅ업체가 수수료를 개당 600원을 받아갔다. (택배기사들이) 어렵다고 사정사정해 올해부터 수수료가 500원이 됐다”며 “우리 입장에서 현관문까지 배송하는 시간을 아낄 수 있는 건 장점이지만, 수수료가 더 낮게 책정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ㅅ업체는 <한겨레>에 “아파트 관리비만으로는 운영이 어렵다”고 주장했다. ㅅ업체 관계자는 “택배기사에게 수수료를 받아야 (직원) 급여를 만들어낼 수 있다. 관리비와 택배기사에게 받는 돈이 보통 반반 정도 비율”이라며 “택배기사가 수익을 내고 싶으면 우리가 동행하는 식으로 출입을 허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당 아파트 담당 택배기사들은 “예전에 강력히 요구해 ㅅ업체 직원과 동행해 아파트에 출입한 적도 있지만, ㅅ업체 일손이 달려서 그런지 결국 ‘요금을 내라’고 말을 바꿨다”고 반박했다.
정작 아파트 쪽은 택배기사들과 ㅅ업체의 갈등과 관련해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입주민들이 외부인 출입을 꺼리는 분위기다. 입주자대표회의에서 대행업체를 정했고 입주민들이 따로 비용을 낸다”며 “(ㅅ업체가) 택배기사에게 따로 금액을 받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아파트 쪽 다른 관계자도 “2012년부터 수의계약을 진행하다 2016년께 최저가입찰로 들어온 업체다. 입주민한테 받는 돈으로 운영하겠다고 계약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갈등 해결을 위해서는 아파트 쪽이 나서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민욱 전국택배노동조합 교육선전국장은 “(아파트 쪽에서) 택배기사 출입 허용이 정말 위험한지 제대로 따져보지 않은 채 택배기사에게만 과도한 비용을 전가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입주민들의 필요에 의해 택배기사의 출입을 막고 대행업체를 쓰고 있는만큼 택배기사보다는 입주자들이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는 게 맞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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