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초대 받은 삼성..바이든, 얼마짜리 청구서 꺼낼까

오문영 기자 2021. 4. 12.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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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24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반도체 등의 미국 공급망을 논의하기 위해 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반도체 칩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AFP=뉴시스


백악관의 초대장을 받은 삼성전자의 셈법이 분주하다. 전세계적인 반도체 공급 부족에 따른 수급 현황 파악이 회의 소집의 표면적인 이유지만, 이 자리에서 미국 내 공장 증설이나 차량용 반도체 생산 요구를 받을 수 있어서다.

12일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백악관은 이날 오후(현지시간, 한국시간 13일 새벽) 반도체 공급망 화상 회의를 연다. 반도체 수급난으로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와 가전 등 생산이 차질을 빚고 있는 가운데 미 당국자들과 기업인들이 해결책을 논의하고자 모이는 자리다.

백악관이 공개한 19개의 초청 기업 명단 가운데 11개 기업은 반도체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 회사다. 반도체 생산업체로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대만 파운드리업체 TSMC, 네덜란드 차량용 반도체 업체 NXP, 종합반도체 업체 인텔 등이 참석한다.

다가온 바이든 '청구서'…삼성전자 화답에 이목

표면적인 회의 소집 배경은 수급 현황 파악과 해결책 논의이지만, 업계는 미국 내 반도체 생산기지 유치를 위한 압박과 회유의 자리가 될 것이라 보고 있다. 반도체 수급난이 발생한 직후 바이든 행정부는 자립화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 이면에는 동아시아에 집중돼 있는 반도체 생산력으로 미국이 경제적, 안보적으로 취약해졌다는 분석이 깔려있다.

미국 주도의 반도체 동맹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국가안보 보좌관이 회의를 주재하는 점에서 반도체 산업을 경제 이슈 차원을 넘어선 안보 문제로 보는 미국 정부의 시각이 묻어난다는 평가다. 바이든 대통령도 상황의 심각함을 감안해 회의에 직접 참여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가 미국 정부의 초청에 어떤 답을 내놓을지는 유독 주목받고 있다. 회의에 참석하는 반도체 생산 업체들 중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투자를 당장에 진행할 수 있는 여력을 가진 업체는 삼성전자와 인텔, TSMC 정도로 좁혀진다. 삼성전자 외 두 기업은 미국 내 대규모 투자를 공식화한 상태다. 지난 2월 미국과 대만 정부는 고위급 경제회담에서 반도체 공급망 재구축에 합의하기도 했다.

삼성도 미국 현지에서의 공장 증설을 검토하고 있지만 문제는 투자 시점과 혜택 규모에 대한 결정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데 있다. 텍사스주와 뉴욕, 애리조나 주정부와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현지 투자 진행 여부에 대한 확답을 요구한다면 입장이 난처해질 수 있다.

최근 반도체 대란의 원인인 차량용 반도체를 공급해달라는 요구도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곤혹스럽다. 삼성전자는 차량용 반도체를 거의 생산하고 있지 않다. 스마트폰용에 비해 제조·품질관리가 훨씬 까다로운 반면 수익률은 적기 때문이다. 주문제작 방식으로 일부 생산 중인 차량용 반도체는 인포테인먼트·자율주행용으로 수급난이 발생하고 있는 품목과는 다르다.

'20조원' 美투자에 속도 낼까…대중국 관계는 부담

바이든 정부가 미국 내 시설 투자를 유인하기 위해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만큼, 삼성전자에게 이번 회의가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정부는 지난달 31일 500억달러(약 56조원)를 반도체 산업 공장 건설과 연구개발에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이와 별개로 미국 상원 지도부는 자국 반도체 사업을 지원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7일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와 미치 매코널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가 반도체 지원책과 관련된 법안을 발의할 것"이라 예고하기도 했다.

분명히 미국은 삼성전자에게 매력적인 선택지 중에 하나다. 미국에는 구글과 애플, MS 등 반도체 최대 고객사가 있다. 비용 절감 뿐만 아니라 고객 유치에도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결국 어느 정도의 세제 감면 등 혜택을 이끌어내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 말했다.

다만 중국과의 관계는 변수로 꼽힌다. 백악관 회의를 기점으로 미국 투자에 속도를 낸다면 중국과의 관계가 불편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업계에서 나온다. 미국과 무역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 입장에서 삼성전자의 행보를 단순히 산업성 측면에서만 바라보지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중국은 삼성전자 매출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시장이기도 하다. 샤오미와 오포, 비보 등 삼성전자로부터 메모리반도체를 공급받는 스마트폰 업체들이 있다. 산시상 시안과 쑤저우에서는 각각 낸드플래시 생산 공장과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반도체 사업본부 고위 임원들은 지난 주말에도 사무실에 나와 백악관 화상회의와 관련한 준비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에서는 수감 중인 이재용 부회장을 대신해 최시영 파운드리사업부장(사장)이 회의에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오스틴 공장은 물론 이번에 증설을 검토 중인 것도 파운드리사업부 소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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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문영 기자 omy0722@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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