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경제는 친환경?..문제는 수소 생산방식이다

홍대선 2021. 4. 12.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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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 정책의 핵심으로 떠오른 수소
독립 형태의 수소 생산 위해 에너지 필요
국내 '재생에너지 보급' 제한적 상황에서
'화석연료 기반' 수소경제 추진에 우려
재생에너지 기반 '그린수소' 방식 말고는
수소 생산 과정에서 'CO₂ 발생' 불가피
일부에선 "기존 수소 전략 재검토" 주장
범사회적 기구 '탈석탄위원회' 설립해
재생에너지 기반 '그린수소' 힘쏟는
독일의 탄소중립 정책 참고할만해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 위해선
정부·기업·국민 등 각계 참여 유도 필요"
산업화 이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40% 이상 높아졌다. 세계 각국에서 지구온난화를 막으려는 노력이 이어지는 가운데 대체에너지와 함께 수소에너지가 탈탄소 사회로 가는 핵심 에너지원으로 떠오르고 있다. 언스플래시

국제사회는 2015년 채택한 파리기후변화협정을 통해 기후위기 대응에 큰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나 탈탄소 사회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난방이나 차량, 전기 사용 등 에너지 절감을 통해 탄소 배출량을 줄이려는 노력이 일상에서 일어나지만, 이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의 70~80%를 여전히 석유와 석탄 같은 화석연료에서 얻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가 주목하는 에너지 전환의 방안은 크게 두 가지다. 태양광, 풍력 등 자연의 힘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재생에너지와 수소에 화학반응을 일으켜 전기를 생산하는 수소에너지를 활용하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에너지 전환 가속화와 고탄소 산업구조 혁신 등의 내용을 담은 ‘2050년 탄소중립 추진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여기서 정부는 탄소중립의 핵심으로 ‘수소에너지원’을 꼽고 저렴하고 안정적인 공급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와 함께 수소생태계 구축이 탄소중립 사회로 가는 목표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수소는 우주 질량의 75%를 차지할 정도로 가장 흔한 원소이다. 지구 표면의 70%를 덮고 있는 물에도 수소가 들어 있다. 액체나 고압 기체로 저장이 가능하고, 운송이 쉽다는 이점도 있다. 화석연료와 달리 고갈될 우려나 지역 편중이 없고 자연환경 조건에 따라 전기 생산량이 달라지는 재생에너지의 단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것도 수소의 장점이다. 전문가들은 수소생태계 구축을 위한 과제로 크게 두 가지를 든다. 수소 생산 과정에 온실가스 발생이 없어야 하고 경제성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수소경제 글로벌 시이오(CEO) 협의체인 ‘수소위원회’는 2050년이면 세계 수소 소비량이 5억4600만t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이는 132억6천만배럴의 석유를 대체하는 규모로, 전세계 에너지 수요의 20%에 육박한다. 수급 예측의 정확성을 떠나 지금 추세로는 수소에너지 비중이 계속 커질 것임은 분명하다.

수소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가벼운 원소다. 문제는 순수한 상태로 존재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공기 중 기체 상태의 수소 비중은 0.00005%밖에 안 된다. 독립 형태의 수소를 얻기 위해서는 수소화합물에 에너지를 가해 분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주의 수소를 가져다 쓸 방법이 마땅찮고 지구상에서 수소는 많은 비용과 노력을 투입해야만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생산 과정에서 추가적인 환경 문제를 일으킬 수 있어 ‘무공해·무진장 궁극의 에너지’란 표현은 과도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현재 대부분의 수소는 탄소와 수소로 구성된 천연가스에서 수소를 추출하는 천연가스 ‘개질(Reforming) 방식’으로 생산된다. 세계 최대 수소 생산국인 중국이 이 방식으로 수소를 생산하고 있다. 천연가스 개질 방식은 생산 비용이 저렴하지만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대부분의 충전소에서 사용하는 개질 수소는 천연가스의 주성분인 메탄(CH₄)을 고온의 수증기와 반응시켜 뽑아낸다. 이 공정에선 이산화탄소(CO₂)가 부산물로 생긴다. 결국 개질 수소를 생산하려면 온실가스 배출은 불가피하다.

수소 산업에서 자주 거론되는 ‘부생 수소’는 석유화학 공정이나 철강 등을 만드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나오는 수소다. 부산물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생산량에 한계가 있으나, 수소 생산을 위한 추가 설비나 투자 비용 등이 적어 경제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부생 수소도 열분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양의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는 “저탄소·탈탄소의 대안이라는 수소에 대한 열기가 지나칠 정도로 뜨거운데, 수소 생산 기술을 고려할 때 수소의 친환경성은 보장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수소경제’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정부 정책이 과연 친환경적이고 경제적으로 타당한 전략인지 논란이 일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재생에너지 보급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화석연료 기반의 수소경제 인프라를 대폭 확충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냐는 것이다.

비영리법인 기후솔루션의 박지혜 변호사는 “우리나라가 주력하고 있는 액화천연가스(LNG)를 개질한 수소 기반의 연료전지는 발전단가가 높을 뿐만 아니라, 엘엔지 발전보다도 온실가스를 더 많이 배출하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선호되지 않는 기술”이라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탄소중립 전략 수립을 계기로 기존의 수소 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한마디로 수소는 친환경적이지만 생산 과정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수소차의 경우 수소탱크에 저장된 수소를 공기 중의 산소와 반응시켜 전기를 만들고 이 전기로 엔진 격에 해당하는 모터를 구동한다. 이 과정에서 수소차는 물만 배출할 뿐 유해가스는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수소차 자체는 친환경차라고 말할 수 있지만 수소차에 연료로 쓰이는 수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는 남는다.

미국 친환경 스타트업인 헬리오겐이 캘리포니아에서 인공지능(AI)을 이용해 만든 태양광발전 시스템. 헬리오겐은 여기서 나오는 1000℃ 이상의 고온으로 물에서 수소를 분리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헬리오겐

세계 주요 국가들이 생산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이 없는 ‘그린수소’ 생산에 주목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수전해 생산 방식이다. 태양광, 풍력 등으로 생산한 전력으로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생산하는데, 오스트레일리아와 독일, 프랑스 등이 도입했다. 특히 오스트레일리아는 대륙 서쪽에 거대하게 펼쳐진 필바라 사막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여기서 생산된 전기에너지를 활용하는 수전해 수소 생산 설비를 대규모로 건설 중이다.

미국은 플라스틱, 폐휴지 등의 자원을 재활용해 수소를 생산하는 시설을 세계 최대 규모로 구축하고 있다. 재활용 종이와 플라스틱을 고온으로 가열한 뒤 얻은 바이오가스에서 수소를 추출하는 방식이다. 바이오매스를 원료로 수소를 생산할 경우 생산 비용이 저렴하고 온실가스 배출량도 적다는 장점이 있다. 또 폐기물을 활용하기 때문에 쓰레기 매립으로 발생할 수 있는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다.

한국처럼 수십년 동안 석탄과 원자력에 의존해온 독일의 움직임은 적잖은 시사점을 준다. 독일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2022년까지 자국 내 가동 중인 핵발전소의 폐기를 결정했고, 2019년에는 2038년까지 모든 석탄발전소 운영을 중단하기로 했다. 독일 에너지 전환의 제도적 기반을 제공한 것은 20년 전에 도입된 재생에너지법과 2018년 출범한 탈석탄위원회였다.

탈석탄위는 정치권과 환경단체뿐만 아니라 석탄산업 종사자, 소비자단체까지 포함된 범사회적 기구다. 독일은 최근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에 방점을 두고 그린수소 전략을 내놨다. 지난 1월 국회 토론회 참석차 방한한 울리히 벤터부슈 독일 연방경제기술부 부국장은 “효과적인 수소전략 추진을 위해 수소의 생산과 운송부터 어떤 분야에 수소를 활용할 것인지까지 고려하면서 다양한 인프라를 통합하는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중장기적으로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은 점차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지금의 에너지 체계와 산업구조를 고려할 때 수소경제에 올인한다고 해서 탄소중립을 실현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탄소중립시대 국제질서 변화와 대응’ 보고서에서, 국내 산업구조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제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석탄발전 비중도 높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하루빨리 탈석탄으로 나아가는 것이 시급하지만, 한편에선 석탄발전소를 계속 짓고 있는 것이 국내 현실이기도 하다. 정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은 주요 선진국 G7 대비 탄소중립을 위한 정책적 환경은 높게 평가되나 탄소배출과 산업구조는 상대적으로 불리한 여건에 놓여 있다”며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정부, 기업, 국민 등 각계의 참여를 유도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홍대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어젠다센터장 hongds@hani.co.kr

<수소 생산 방식>

수소는 생산 방식에 따라 그린, 그레이, 브라운, 블루 수소 등 4가지로 구분된다. 색깔로 수소를 분류해온 유럽연합(EU)은 2016년부터 ‘수소 원산지 보증제도’를 통해 수소의 친환경성을 인증하고 있다. 수소도 다 같은 수소가 아닌 셈이다.

누리프 벤처스

그린 수소(Green Hydrogen)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에서 나오는 전기로 물을 전기분해(수전해)해 생산한다. 생산 과정에 이산화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아 이상적인 수소에너지로 분류되나, 생산 단가가 높아 상용화까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그레이 수소(Gray Hydrogen)

천연가스를 고온·고압 수증기와 반응시켜 물에 함유된 수소를 추출하는 개질 방식이다. 석유화학이나 철강 공정 등에서 부산물로 발생하는 부생수소도 여기에 포함된다. 수소 생산을 위한 추가 설비 등이 없어 경제성이 높다.

블루 수소(Blue Hydrogen)

그레이 수소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포집·저장해 탄소배출을 줄인 수소를 말한다. 그린 수소에 비해 환경친화성은 떨어지나 경제성이 뛰어난 게 장점이다.

브라운 수소(Brown Hydrogen)

석탄이나 갈탄을 고온·고압에서 가스화해 수소를 추출하는 방식이다. 수소 생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가장 많이 발생해 탄소중립을 위한 친환경 에너지로서 의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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