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윤석열 '동굴 속의 100일'

기자 2021. 4. 12.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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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운 논설위원

단군신화 곰처럼 마늘·쑥 수련

오세훈 김종인 요청에 무응답

안철수는 尹 ‘정치 교체’ 주목

정치엔 범죄 수사式 기획 위험

무엇을 위해 정치할지 밝히고

6월 중순까지는 구체안 내놔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4·7 재·보궐선거 전후 세 명의 주요 정치인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오세훈·김종인·안철수. 그러나 응답하지 않았다. 선거 후에도 왜 소통하지 않느냐고 묻자 윤석열은 “나는 지금 동굴 속의 곰”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단군신화 속의 곰이 사람이 되고자 100일 동안 쑥과 마늘을 먹은 것처럼, 집에서 ‘열공’한다는 것이다. 곰이 사람으로 변신하듯 검사에서 정치인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에게 쑥과 마늘은 외교·안보와 경제·산업이다. 최근 북한·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국제 이슈를 한 바퀴 돌았다고 하니, 쑥은 거의 다 먹은 셈이다. 경제학자인 아버지 밑에서 밥상머리 교육을 받았고, 론스타 사건 등을 수사했기 때문에 경제·산업이라는 마늘은 더 수월하게 먹을 수도 있다.

오세훈은 세 번째 서울시장에 당선되고 내년에 4선을 바라보는 야권의 소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그의 연락은 후보 경선과 선거를 앞두고 도움을 얻기 위한 ‘모종의 의사소통’이었기 때문에 굳이 응할 이유가 없었다. 정치 참여를 공식 선언하지도 않은 윤석열이 특정 당, 특정 후보를 지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이 대선에 나간다면 야당 출신 서울시장은 존재 자체만으로 든든한 우군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김종인은 현재 정치권에서 최고의 경륜가라고 한다. 지난 보선이 국민의힘 승리가 아니라 문재인 정권 패배라지만, 김종인의 전략과 뚝심은 대단했다. 일단 국민의힘을 떠났지만, 내년 대선까지 그의 영향력은 이어질 것이다. 그런 김종인이 여러 차례 “만나자면 만나보겠다”고 옆구리를 찔렀지만, 윤석열은 절을 하지 않는다. 윤석열 측근들은 정치권과 언론계에서 김종인에 대한 평판을 들어봤는데, 여러 얘기가 나온 것 같다. 김종인은 윤석열을 도울 생각도 있지만, 본인의 ‘어젠다’도 내려놓지 않았다는 말을 듣는다. 국민의힘 후보 결정 전, 전직 의원들이 국가 지도급 인사를 찾아가 “김종인이 대선에 나가야 하니, 당신이 서울시장에 나가라”고 요청했다. 일부 정치 원로도 그에게 대선 출마를 권유했다. 김종인은 내각제 등 개헌 필요성도 제기하고 있다. 윤석열 측도 김종인의 노마지지(老馬之智)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안철수에 대한 김종인의 거친 말과 비토가 언젠가는 윤석열을 향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국민의당 대표인 안철수는 국민의힘과 합당 추진 전에 윤석열의 생각을 듣고 싶어 한다. 특히 정권을 바꾸려는 것인지, 정치판을 바꾸려는 것인지를 궁금해한다. 집권이 목적이라면 두 사람은 협력도, 경쟁도 할 수 있는 관계다. 그러나 기존 정치 세력의 기득권이 강고하게 뿌리내린 정치판 자체를 바꾸려면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과 싸워야 한다. 두 사람이 함께 국민의힘에 들어가 야권부터 바꿀 가능성도 물론 있다. 안철수는 몇 차례 선거에 나섰지만, 기호 1번이나 2번을 단 적이 없다. 그는 거대 정당과 싸워온 기록이 있다. 안철수가 대통령 꿈을 버리지는 않았지만, 정치 교체를 위해서라면 미룰 수 있다.

국민의힘은 선거에서 승리하는 날부터 교만해졌다. 윤석열에게 돈이 없으니 들어오라 하고, 박근혜에 대한 구형이 과했다고 공격했다. 당사에 축하하러 온 안철수는 끝자리에 앉혔다. 말은 국민의힘이 잘해서 이긴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행동은 반대로 하고 있다. 사람이든, 당이든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윤석열은 특수통 검사였다. 기소를 전제로 기획하고 판을 짠 다음 수사에 들어갔다. 윤석열은 정치도 자기 방식대로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100일간의 칩거도 기획을 하고, 판을 짜는 과정으로 보인다. 윤석열이 3월 4일에 사퇴했으니 6월 14일이 돼야 세상에 나오게 된다. 수사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는 꼭 그림 그린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선거 직후 지지율도 출렁거린다. 윤석열이 아직 결정하지 못한 부분이 많을 것이다. 언제부터 하든, 누구와 함께하든 윤석열이 선택할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려는가’하는 기본적인 국민의 물음에는 답해야 할 때가 됐다. 정권뿐 아니라 이 나라 정치도 바꾸겠다는 뜻이 있다면, 안철수에게도 응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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