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보정으로 지워진 '킬링필드' 희생자의 그늘

윤기은 기자 2021. 4. 12.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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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한 사진 예술가가 캄보디아에서 수백만명이 학살된 ‘킬링필드’ 희생자의 사진을 웃는 얼굴로 보정해 ‘역사 왜곡’ 논란이 일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아일랜드의 사진 보정 전문가 맷 러프레이가 캄보디아 프놈펜 S-21 수용소에 수감됐던 희생자들의 표정을 웃는 모습으로 보정한 사진을 미국 잡지 <바이스>에 지난 9일(현지시간) 실었다고 보도했다. 러프레이는 일부 희생자 얼굴에 화장을 덧칠하고, 흑백사진에 색을 넣기도 했다.

BBC에 따르면 러프레이는 바이스와의 인터뷰에서 “S-21에서 처형 당하거나 고문 당한 1만4000명의 캄보디아인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그는 “사진가가 사진을 찍을 당시 긴장한 여성에게 말하는 방식이 남성에게 말한 것과는 달랐을 것이다. 그래서 여성이 더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소식이 전해지자 캄보디아 문화예술부는 11일 바이스 측에 “피해자의 존엄성에 영향을 미친다”며 사진을 내려달라 요청했다. 바이스 측은 사진을 홈페이지에서 삭제하고 “진상조사를 하겠다”며 사과문을 냈지만, 논란은 계속 확산되고 있다.

캄보디아 정치인 무 소추아는 자신의 트위터에 “희생자 사진에 화장을 입히는 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피해자들에 대한 심각한 모욕다”이라고 비판했다. 킬링필드 희생자의 유가족인 리디아는 “대량학살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룰 때는 책임감 있는 저널리즘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캄보디아 프놈펜에 보관된 킬링필드 대학살 당시 희생된 사람들의 유골이 2011년 10월29일 사진에 담긴 모습 . 위키피디아 제공


킬링필드는 1975~1979년 집권한 폴 포트의 급진 공산주의 정권인 크메르루주가 시민 200만여명을 학살한 사건이다. 이들은 친미 성향인 이전 정권에 협력했다고 의심되는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 학대하고 고문했다. 안경을 쓰거나 외국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미국과 연관돼 있다고 여기고, 무차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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