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치킨게임 벌인 LG-SK..극적 화해까지 어떤 일 있었나

문창석 기자 2021. 4. 12.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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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기술 놓고 소송..격화되며 감정싸움 번지기도
한 쪽 편만 들 수 없었던 美 행정부 압박에 전격 합의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서울=뉴스1) 문창석 기자 = 지난 2019년 4월부터 전기차 배터리를 둘러싸고 이어진 LG와 SK의 전쟁이 2년 만에 종결됐다. 국내 기업들끼리 이렇게까지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건 드문 일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양측의 갈등은 극한으로 치닫았다. 많은 굴곡이 있었지만 끝내 합의에 도달하면서 양사의 배터리 사업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이번 소송전은 LG에너지솔루션의 모회사인 LG화학이 지난 2019년 4월29일 'SK이노베이션이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하면서 시작됐다. SK가 2년 동안 자사 전지사업 본부의 핵심 인력 76명을 빼가 전지 사업을 집중 육성했다는 게 LG의 주장이었다.

SK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 해 6월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의 주장이 근거없다고 주장하며 국내 법원에 LG 측의 손해배상과 영업비밀을 침해한 사실이 없다고 밝혀달라는 채무부존재 확인을 청구했다. 9월에는 반대로 'LG가 자사의 배터리 특허를 침해했다'며 ITC에 제소했다.

양측이 화해 시도를 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 해 8월 말까지 양측은 화해를 위한 실무진 협상을 이어갔고, 9월16일에는 최고경영자(CEO)인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이 한 시간 남짓 만나 서로의 입장을 논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무진 협상에서 LG 측은 '공식적인 사과와 재발 방지 서약, 일정 금액의 손해배상이 대화 시작의 전제 조건'이라 했고, SK 측은 이것이 '백기투항을 하라'는 굴욕과 다름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거기다 CEO 회동 다음날인 9월17일 경찰이 SK이노베이션을 압수수색하며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2019년 5월 LG화학은 자사의 영업비밀을 유출했다며 SK이노베이션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는데, 이와 관련한 수사 절차가 진행된 것이다.

압수수색 전날까지만 해도 양사는 "CEO들이 진정성 있는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지만, 수색 이후 또다시 날선 말을 주고받으며 격화일로로 치닫았다. SK이노베이션은 공식 입장을 통해 "'묻지마식 소송'에 대응하느라 기회손실이 막심하다"고 날을 세웠고, 곧이어 LG화학은 "도를 넘은 인력 빼가기"라며 압수수색은 정당하다고 맞섰다. 이후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이 국내외에서 쟁송을 하지 않기로 한 합의를 파기했다'는 소송을 제기하며 더욱 격화됐다.

여의도 LG트윈타워 2021.4.11/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사태는 2019년 11월 LG화학이 ITC에 'SK이노베이션의 조기 패소 판결을 내려달라'고 요청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SK이노베이션이 직원들에게 LG화학 관련 이메일을 지우게 하는 등 조직적·고의적으로 광범위하게 증거를 인멸했고, 포렌식 명령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기에 패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SK이노베이션은 "일부 증거 보존이 매끄럽지 못했지만 고의성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그해 11월15일 ITC의 산하기관인 불공정수입조사국(OUII)은 SK이노베이션의 증거인멸 행위를 인정하며 'LG화학의 조기 패소 판결 요청을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했고, ITC는 이를 받아들여 지난해 2월14일 SK이노베이션에 대해 조기 패소 판결을 내렸다. SK의 영업비밀 침해 여부를 판단하려 했는데 이를 조사하기 위한 자료를 SK가 무단으로 파기했으니, 더 조사할 것도 없이 SK에 대해 패소 판결한 것이다.

업계는 이번 배터리 전쟁의 판세가 여기에서 갈렸다고 본다. 이 조기 패소 판결은 예비결정일 뿐이었지만, 1996년부터 2019년까지 25년 동안 ITC에서 다뤄진 모든 영업비밀 침해 소송 사건에서 조기패소 판결이 최종결정까지 그대로 이어졌다는 점을 고려할 때 무게추는 LG 쪽으로 확 기울었다. 실제로 이 예비결정은 올해 2월 ITC의 최종결정까지도 그대로 이어지면서 SK이노베이션에게 치명타가 됐다.

이후 SK이노베이션은 이 예비결정에 대해 ITC의 재검토 결정까지 받아내는 등 반전을 노렸지만 끝내 뒤집지는 못했다. SK는 LG가 ITC에 제기한 소송의 정당성을 흔들기 위해 국내 법원에도 'LG가 관련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한 과거 합의를 깨고 ITC에 제소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기각되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서린동 SK 본사 2021.4.11/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해가 바뀐 2021년 2월10일 ITC는 예비결정대로 LG화학의 배터리 자회사인 LG에너지솔루션의 손을 들어주는 최종결정을 내렸다. 특히 이날 ITC가 SK이노베이션에 대해 당초 OUII가 건의한 제재 기간(5년)보다 더 늘어난 10년의 수입금지를 명령한 점이 변수로 떠올랐다.

대웅제약과 메디톡스의 영업비밀 침해 사건에서 ITC는 예비결정에서 수입금지 기간을 10년으로 정했지만, 최종결정에선 21개월로 대폭 단축한 바 있다. SK이노베이션은 혹시 패소하더라도 이렇게 수입금지 기간이 짧아지는 시나리오를 원했다. 성사됐다면 SK가 실질적으로는 이겼다고 볼 수 있었지만, 반대로 더 늘어나면서 3조원을 투자한 미국 사업을 사실상 접어야 하는 등 상황이 매우 다급해졌다.

그동안 끊어졌던 양사의 합의 협상도 이 때부터 다시 진행됐다. SK이노베이션은 그동안 합의금으로 수천억원을 주장했지만 이 때 약 1조원으로 높였다. 하지만 이는 약 3조원이 돼야 한다는 LG에너지솔루션의 주장에는 크게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양측은 원칙적으로는 합의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지만, 논의는 평행선을 달렸다.

SK가 ITC 패소에도 희망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때문이었다. 미국 행정부 소속인 ITC의 결정에 대해 미국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 이게 성사된다면 SK에 10년의 수입금지를 명령한 ITC의 결정은 무효화되고 다시 원점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 여기에 3월31일 ITC 특허침해 사건에서 'LG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예비결정을 받으며 LG의 추가 공격을 막아낸 점도 희망을 더했다. 만약 이 소송까지 졌다면 SK는 영업비밀 침해에 특허 침해까지 더해져 벼랑 끝까지 몰릴 뻔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이후 SK이노베이션은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총력을 다했다.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 출신인 김종훈 이사회 의장은 미국에 장기간 머물며 정관계의 다양한 인맥들을 활용해 거부권 행사의 필요성을 촉구했고, 김준 총괄대표도 주주총회를 비우면서까지 미국으로 날아가 힘을 보탰다. SK 공장이 들어설 조지아주(州)도 SK의 사업 철수를 막기 위해 주지사가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기존의 전황을 유지해야 하는 LG도 SK와 비슷한 수준의 로비 비용을 지출하며 방어에 힘을 기울였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의 고민도 깊어졌다. 자신의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조지아주의 요청을 외면할 수 없다는 정치적인 상황도 있었고, SK 배터리를 통해 자국 내 전기차 사업을 확대해야 한다는 산업적 측면도 거부권 행사의 필요성을 높였다. 하지만 실제로 거부권을 쓰는 건 부담이 매우 컸다. 이는 ITC 소송에서 승리한 LG를 외면하고 패소한 SK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주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정치적인 부담이 매우 컸다. 특히 지식재산권 침해에 대한 윤리적 잣대가 엄격한 미국 사회의 분위기상, SK의 영업비밀 침해를 묵인하는 거부권 행사는 앞으로 중국과의 무역에서도 문제가 될 소지가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직접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또는 행사하지 않음으로써 어느 한 쪽의 손만 들어주는 부담을 지는 것보다는, 양사가 합의하도록 만드는 게 최선이었다. 이에 미국 행정부는 거부권 행사 시한이 지나기 전에 양사에 합의할 것을 종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사는 "합의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준 한·미 정부 관계자들에게 감사하다"며 미국 정부 차원의 개입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결국 지난 11일 SK와 LG는 총 2조원의 합의금을 주고 받는 것에 합의하며 2년 동안의 전쟁을 종결했다.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themo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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