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차기 기관단총 기밀 유출사건..'방산 비리 방정식' 부술 수 있을까
장교들이 개입한 것으로 보이는 기밀 유출사건이 또 발생했습니다. 이번에는 차기 특전사용 기관단총 개발사업입니다. 2급 군사기밀 등이 총기 전문업체에서 무더기로 나왔습니다. 현대중공업의 차기 구축함 KDDX 사업 기밀 유출사건이 불거진 게 작년 9월이니 잊을만하면 기밀 유출사건이 터집니다.
군 수사당국이 어련히 수사해서 결과를 낼 테지만 다소 걱정되는 바가 있습니다. 기밀 유출 등 방산 비리 저지른 업체들을 보면 절묘한 수법으로 솜방망이 처벌을 유도하곤 합니다. 수사와 재판에서 시간을 조절해 업체에 유리한 시점에 판결을 받는 꼼수입니다. 사업비는 알뜰히 챙기고, 일 없는 기간에 맞춰 있으나 마나 한 제재받는 기막힌 방법입니다.
차기 기관단총 기밀 유출사건
군 당국은 현재의 K1A 기관단총을 대체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K1A는 개발된 지 45년 된 노후 모델이어서 해외 최신 모델에 비해 전반적으로 정확도와 내구도가 떨어집니다. 조준경, 라이트 등도 부착할 수 없습니다. 군은 새로운 기관단총을 개발해 2024년부터 1만 6천 정을 도입한다는 계획입니다.
작년 6월 총기 전문업체 A사가 차기 특전사용 기관단총 개발사업의 우선협상대상으로 선정됐습니다. 그런데 한 달도 안 돼 안보지원사령부가 A사를 압수수색했습니다. 임원들 PC에서 차기 기관단총 관련 다수의 군사기밀들이 나온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개발 목표와 추진 전략, 기관단총의 체계, 구성품 요구성능을 포함한 ROC, 즉 작전요구성능 2급 기밀들입니다.
안보지원사령부는 A사의 영업 담당 임원 B 씨가 육군본부 전력단에서 총기 개발업무를 맡았던 예비역 중령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안보지원사는 B 씨가 현역 장교들의 도움을 받아 기밀을 빼돌린 것으로 의심하고 있는데 관련자들의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칼 빼드는 방사청
언젠가 판결이 날 테고, 그때가 현대중공업의 군수 분야 비수기라면? 직원 몇 명 처벌받는 선에서 사건은 마무리되고, 비수기의 제재는 현대중공업의 털끝 하나 못 건듭니다. 방산업계의 전형적인 기밀 유출사건 방정식입니다. 대통령이 작년 7월 국방과학연구소에 가서 "이번 정부에는 방산비리 없다"고 자부 겸 신신당부했는데도 무기체계 관련 기밀 유출사건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기관단총 기밀 유출사건을 두고 방사청 내부에서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방사청 관계자는 "혐의가 분명하니 업체와 계약을 유지할 수 없다는 측과, 그럼에도 국가계약법상 업체를 처벌할 근거가 없다는 측이 팽팽히 맞섰다"고 말했습니다. 수사 중인 사건이지만 관련 계약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쪽으로 의견이 정리된 것 같습니다.
방사청의 조치는 크게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A사가 지난 3월 사실상 따낸 K2C1의 1만 8천 정 양산사업에 대해 적격심사를 중지한 것입니다. A사가 기관단총 기밀을 빼낸 것이 맞다면 A사는 K2C1 사업 심사에서도 보안사고 관련 감점 처분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일단 K2C1 사업 절차를 중단했습니다.
방사청과 안보지원사, 지금부터라도…
방사청의 조치는 긍정적이기는 해도 늦은 감이 있습니다. 방사청 해당 팀은 작년에 사건의 대체적인 내용을 파악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방사청의 한 관계자는 "해당 팀도 작년 여름과 가을 여기저기에서 관련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고 확인했습니다.
현대중공업 KDDX 기밀 유출사건이 터지고, 이에 앞서 대통령의 '방산 비리 부재' 발언도 있었는데 방사청은 기관단총 기밀 유출사건을 알고도 모른 척한 것이어서 도통 방사청에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지난달 언론 보도로 사건이 공개되자 그제야 왈가왈부했습니다. 현재는 안보지원사에 자료 요청까지 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방사청의 향후 행동을 지켜볼 일입니다.
안보지원사는 작년 7월 압수수색해서 기밀 유출 증거를 확보했는데 아직까지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군 수사 관계자는 "기밀 유출사건 수사가 원래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라고 해명하는데, 그래서 업체들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꼼수를 부려 무탈한 것입니다. 안보지원사는 철저한 수사는 기본이고, 방사청의 요청에도 적극적으로 응해야 할 것입니다. 참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방산 비리 저지르면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분명히 보여줘야 합니다.
김태훈 기자onewa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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