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현대 호가 2~3억↑..오세훈 재건축 규제 완화 '촉각'
노후 아파트값 상승률 신축 대비 2배
가격 급등 우려에 규제 완화 한발 물러서
다만, 시장의 임기가 1년3개월에 불과한 데다, 정부의 협조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될지 미지수라는 의견도 나온다.
12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에 따르면 선거 이틀 전인 지난 5일 압구정동 현대7차 245.2㎡는 6개월 전 67억원(9층)보다 13억원 뛴 80억원(11층)에 신고가로 매매거래됐다. 이는 전국 최고가로, 조합설립이 임박했다는 소식에 다급하게 거래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30억원 중후반대를 오르내리던 현대1·2차 아파트 전용 131㎡ 매도 호가가 2억~3억원 정도 올라 40억원대를 돌파했다.
정부는 작년 '6·17 대책'을 통해 투기과열지구의 재건축 아파트를 조합설립 인가 이후에 구입하면 입주권을 주지 않기로 했다. 이에 압구정동 등의 재건축 단지들은 이 규제를 피하고자 관련 법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 조합설립을 마치려 절차를 밟아왔다.
대치동 은마아파트도 주변 상가로 매수 문의가 꾸준히 이어지는 등 비슷한 상황이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전용 76.79㎡)의 경우 지난 1월 21억7000만원에 2월에는 22억원, 지난달 2일에는 22억4000만원에 거래되면서 신고가를 잇따라 경신했다.
아파트가 재건축되면 주변 상가도 함께 재정비에 들어가는데 상가는 아파트와 달리 대출이 가능해 투자자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는 게 주변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의 설명이다.
연초보다 집값이 소폭 상승한 잠실주공 5단지는 물론, 양천구 목동과 노원구 상계동, 마포구 성산동 등 재건축 단지가 있는 지역에도 선거 전후로 매수 문의가 늘고 있다.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는 14개 단지가 모두 1차 재건축 안전진단을 통과했으나, 작년 9월 목동9단지에 이어 최근 목동11단지가 2차 안전진단에서 떨어지면서 기대감이 한풀 꺾인 상태였다.
성수동 성수전략정비구역 등 재개발 지역도 '50층 개발' 기대감으로 들썩인다. 오 시장은 2009년 한강르네상스 계획에 따라 성수전략정비구역을 지정하고, 당시 기부채납(공공기여) 비율을 25%로 늘리는 대신 아파트를 최고 50층 높이로 지을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 그러나 시정을 박원순 전 시장에게 넘긴 이후 '35층 층고제한'에 막혀 사업이 지지부진해 왔다.
올들어 서울 아파트값은 지난주까지 주간 누적 기준 1.05% 올랐다. 구별로는 송파구가 1.64%로 가장 많이 올랐고, 강남구(1.33%), 마포구(1.32%), 서초구(1.30%), 양천구(1.29%), 노원구(1.25%) 등이 상승률 1∼6위를 차지했다. 이들 지역은 모두 재건축 '호재'가 있는 지역이다.
올해 들어 재건축 단지 등 노후 아파트값이 신축 아파트값보다 2배 가까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을 앞둔 노후 아파트는 곧 새 아파트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에 사업 추진에 탄력이 붙을만한 호재가 생기면 가격이 껑충 뛰는 특성이 있다.
한국부동산원의 주간 아파트 가격동향조사 통계를 보면, 서울에서 준공 20년 초과 아파트값은 올들어 지난주까지 누적 기준 1.27%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준공 5년 이하인 신축가 0.70% 오른 것과 비교하면 1.8배 높은 수준이다.
1973년 준공해 재건축을 앞둔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106.25㎡는 작년 12월 37억원(5층)에서 지난달 11일 45억원(2층)으로 3개월 사이 7억원이 올랐다. 작년 재건축을 위한 안전진단을 최종 통과한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6단지 95.03㎡는 지난해 12월 19억원(2층)에서 올해 2월 21억8000만원(2층)으로 값이 올랐다.
중저가 아파트가 즐비한 노원구에서도 지은 지 21년된 월계동 현대아파트 59.95㎡가 작년 12월 6억7000만원(11층)에서 이달 2일 7억4700만원(6층)에 거래돼 역대 최고 가격에 매매됐다.
서울 5개 권역별로 보면 20년 초과 아파트값은 동남권(강남·서초·송파·강동구)이 1.60%로 가장 많이 올랐다. 이어 동북권 1.19%, 서남권 1.17%, 서북권 0.95%, 도심권 0.91% 순이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일단 지난해 신축 아파트값이 이미 많이 올랐고, 상대적으로 구축 아파트값이 덜 올라 올들어 가격이 키 맞추기 한 측면이 있다"면서 "압구정 등 재건축 단지의 사업 추진 기대감이 커진 것도 하나의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주택업계 한 관계자는 "과도한 재건축 기대감으로 시장이 과열되면 단기적으로 시장 불안이 야기될 수 있다"며 "이에 대한 대비책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재건축발 집값 상승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오세훈 서울시장도 선거 기간 공언했던 "일주일 내 재건축 규제 완화" 입장에서 한발 물러서는 모습이다. 선거 직후 제기된 부동산 규제 완화 요구를 검토하고 있는 정부 역시 규제 완화 시그널이 주택 시장에 미치는 영향 탓에 뾰족수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오 시장은 당선 후 첫 휴일인 지난 11일 국민의힘을 찾아가 부동산 규제 완화 공약 실현을 위한 법률, 조례 개정 등에 적극 나서달라고 협조를 요청했다. 한강변 아파트 35층 높이 규제완화 등 자신의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법이나 조례 개정이 수반돼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국회나 서울시의회가 더불어민주당 절대 우세인 상황이어서 쉬운 일은 아니다.
오 시장은 이날 "재건축과 재개발 등 규제 완화가 집값을 자극하지 않도록 관련 정책을 신중히 추진하겠다"면서 규제 완화 때문에 서울시 집값이 오를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 "무슨 정책이든 부작용과 역기능이 있게 마련이고 그것을 최소하는 게 노하우라며 신중하지만 신속하게 업무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오 시장의 발언에 대해 기존 '전면 완화', '즉시 완화' 입장에서 '속도 조절론'으로 몸을 낮춘 것이라고 평가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안정적으로 집값을 유지하고 공급대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가운데 서울시와 협력하겠다는 것이 원칙"이라며 "재건축 규제 완화 부분은 서울시장 권한으로 할 수 있느냐 없느냐 문제보다 규제 완화가 집값과 직결되다보니 서울시가 부담을 느끼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건축단지 중심의 호가 상승이 미풍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그동안 서울지역은 집값 상승에 대한 피로감이 높은 상태인데다 대출과 세제규제 등이 강력해 상승 동력이 크지는 않다"면서 "서울은 한강변 재건축 등 사업성이 개선될만한 곳 들 위주로 제한적으로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성신 매경닷컴 기자 robgud@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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