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의 아이들'이 겪는 척박한 현실.. 어른들은 알까요?

안진용 기자 2021. 4. 1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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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른들은 몰라요’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한 후 낙태를 하려는 10대 소녀가 겪게 되는 처절한 삶, 그리고 그를 둘러싼 모진 시선과 사회 부조리를 그린다.

■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속 처절한 10대 이야기

임신한 소녀·학폭·성매매협박…

방황하는 10대 삶 스크린 옮겨

이환 감독 두번째 청소년 영화

가출팸 담은 ‘박화영’ 속편인셈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아쉬워”

절도 서슴지않는 주영役 안희연

“금기하던 욕설 안나와 울기도”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감독 이환)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어른들은 모르는 10대들의 삶을 그린다. 동심(童心)과는 거리가 멀고도 먼, 어른들의 상상, 그 이상의 척박한 10대들의 불편한 삶과 마주하게 된다.

이 영화가 10대 가출팸의 삶을 담은 독립 영화 ‘박화영’을 연출한 이환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어른들은 몰라요’는 1200만 회에 육박하는 유튜브 조회수를 올려 ‘비공식 1000만 영화’라 불리는 ‘박화영’의 속편에 가깝다. ‘박화영’에 등장했던 세진(이유미 분)이 낙태 비용을 마련하려는 10대 임신부로 나오고, 그와 함께 어울리는 10대 남녀 네 명의 처절한 인생이 스크린 가득 담긴다.

이 감독은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화영’으로 관객과의 대화를 마친 후 여성 두 분이 기다리고 계셨다. 영화 속 10대와 비슷한 삶을 산 후 지금은 청소년 쉼터에서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박화영’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며 “그분들이 ‘10대 영화를 한 번만 더 만들어주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당시 낙태를 둘러싼 찬반 여론이 팽팽하던 때라 이 주제를 포함한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학교폭력에 시달리고, 막 교생 실습을 마친 담임 선생의 아이를 갖게 된 여고생 세진. 담임 선생에게 “나 애 떼려고”라며 해맑게 말한 후 가출한 세진의 삶에 희망이라곤 없다. 또 다른 가출 소녀 주영(안희연 분)과 만나고 오토바이를 타는 20대 남성 두 명과 가출 패밀리를 만든다. 그들 사이에 유대가 존재한다지만 솟아날 구멍은 없다. 뭔가 해보려 할수록 삶은 늪처럼 그들을 빨아들인다.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이 만든 세상에서 허우적대는 그들에게 기댈 만한 어른은 없다. 학생과 관계를 맺어 임신시킨 선생은 꽁무니를 빼고, 그의 아버지인 교장은 ‘발설 금지 각서’에 사인하라고 종용한다. “도와주겠다”고 손을 내민 어른은 모텔에서 옷을 벗고 덤비고,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은 친한 형은 두 10대 여성에게 술 시중과 성매매를 강요한다.

이 감독이 음지의 삶을 살고 있는 10대를 두루 만난 후 스크린 속에서 창조한 세계는 실제 대한민국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는 살풍경이다. 그런 10대를 잉태한 궁극적인 잘못이 이를 바로잡을 제대로 된 어른이 없기 때문이라는 귀결은 다소 성급한 느낌이 있지만, 세진과 주영이 그들의 그릇된 행동을 다그치는 경찰에게 “그런 어른이 있으면 우린 계속 이렇게 살 것”이라고 외치는 장면은 폐부를 찌른다.

두 여배우의 열연은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다. ‘박화영’에 이어 ‘어른들은 몰라요’에도 출연한 이유미가 풍기는 묘한 분위기는 스크린을 압도한다. 연기 경력이 일천한 걸그룹 EXID 출신 안희연(하니)은 주영 역을 맡아 ‘연기 도전’을 넘어 될성부른 신인의 탄생을 알렸다. 이 감독은 안희연의 걸음걸이를 관찰한 후 주영 역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희연은 문화일보에 “해외에 있을 때 SNS 다이렉트 메시지로 직접 섭외 제안을 받았다”며 “감독님께 ‘앞으로 내가 뭘 할진 모르겠지만 세상을 조금 더 좋은 쪽으로 만들고 싶다. 이 영화가 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맞냐’고 물었고, 감독님도 같은 꿈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출연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걸그룹 활동을 해온 안희연과 주영은 은근히 닮은 구석이 있다. 노래 ‘위아래’가 뒤늦게 인기를 얻어 소위 ‘역주행’의 아이콘이 돼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많은 이에게 희망을 전했던 것처럼, 주영은 이유 없이 세진을 돕고 위기에서 수차례 구한다. 몸 구석구석 문신을 하고 술·담배·절도를 서슴지 않는 주영을 연기하는 과정은 그동안 여러 금기에 싸여 있던 안희연이 그 틀을 깨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과정이었다.

그는 “욕설이 너무 어색했다. 걸그룹 활동할 때 금기시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뭔가 확 나오지 않으니 스스로 답답하고 서러워 울기도 했다”며 “그 선을 넘으면, 그 기준이 무너지면 죽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자유로워졌다. 그래서 스스로 더 놀라는 경험이었다. 감독님의 말씀처럼 ‘기분 좋은 배신감’을 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아쉬운 대목은, 10대들 보라고 만든 영화의 관람등급이 ‘박화영’에 이어 또 청소년 관람불가다. 많은 10대가 ‘어둠의 경로’로 영화를 본 후 공감을 표한 것을 고려할 때, 지독한 아이러니다. 이 감독이 세상을 향해 ‘어른들은 몰라요’라고 외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감독은 “15세 관람가로 신청했는데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외면을 받았다. 세상은 아직도 10대와 그들의 삶을 모른다. 시대가 변했는데 인정해주지 않는다. 10대들이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를 선회해서 만나길 바라지 않기에, 이 같은 관람 등급이 아쉽다”고 말했다. 15일 개봉.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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