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안 버리겠다"더니.. 오염수는 바다에, 약속은 쓰레기통에?

황현택 2021. 4. 12.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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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후쿠시마(福島) 제1 원자력 발전소에서 발생하는 방사능 오염수를 기어코 바다에 버릴 것으로 보입니다.

내일(13일) 관계 각료회의를 열어 오염수 '해양 방류'를 확정할 전망입니다. 여러 처분 방법 중 '해양 방류'가 가장 싸고,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결정이 내려지면 공사 소요 등을 거쳐 2년 후, 2023년 4월부터 막대한 양의 오염수가 태평양 바다로 쏟아져 나오게 됩니다. 이때부터 무려 30년간 방류가 계속됩니다. 일본 내 어민과 환경·시민단체는 물론,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 반발도 거세지고 있습니다.

일본 도쿄전력이 2015년 8월 후쿠시마현 어업협동조합연합회에 보낸 ‘오염수 해양 방류 관련’ 답변서.


■ "안 버리겠다" 약속도 쓰레기통에

오염수의 유해성 여부는 둘째치고, 일본 정부의 '해양 방류' 방침은 자국민과의 약속까지 저버린 결정입니다.

후쿠시마 제1 원전의 운영사는 도쿄전력입니다. 원전 사고로 대량의 방사성 물질을 유출한 '책임'이 있는 회사이죠. 히로세 나오미(廣瀬直己) 사장은 2015년 8월 25일, 본인 명의로 후쿠시마현 어업협동조합연합회(이하 연합회)에 아래와 같은 답변서를 보냈습니다.

<연합회 요청>
"건물 내의 물은 다핵종제거설비(ALPS·알프스)에서 처리한 뒤에도 발전소 내의 탱크에서 책임지고 엄격히 보관 관리하고, 어민과 국민의 이해를 구하지 않은 채 '해양 방류'를 절대 해선 안 됩니다."

<도쿄전력 답변>
"현재 트리튬(삼중수소) 분리 기술의 실증 시험이 실시되고 있습니다. 검증 등 결과에 대해 어민과 관계자들에게 정중한 설명 등 필요한 대응을 하고, 이러한 과정과 관계자의 이해 없이는 어떠한 처분도 하지 않고 다핵종제거설비에서 처리한 물은 발전소 부지 내 탱크에 보관하겠습니다."

이후 5년간 상황은 달라진 게 없습니다. 기시 히로시(岸宏) 연합회 회장은 7일 도쿄(東京) 총리관저에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를 만나 "어민들의 (해양 방류) 반대 입장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후쿠시마현 내 시정촌(市町村·기초행정단위) 의회의 약 70%도 오염수 해양 방류에 반대하는 '결의안' 등을 가결해 놓은 상태입니다.

"오염수 방출 없이 계속 보관하겠다", "그 사이 방사성 물질 제거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5년 전 약속, 어디로 갔습니까?


■ 오염수 2차 처리?…"못 믿겠다"

후쿠시마 제1 원전에서는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 당시 폭발사고를 일으킨 원자로 내의 용융된 핵연료(데브리)를 식히는 순환 냉각수에 빗물과 지하수가 유입돼 섞이면서 오염수가 늘고 있습니다.

현재 저장 탱크 1천50개에 오염수 125만 톤(t)이 쌓여 있습니다. 저장 용량 137만 톤 가운데 91%로, 일본 최대 돔구장인 도쿄돔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양입니다. 오염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늘어, 내년 가을이면 저장 한계에 부닥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와 언론은 이 물을 '알프스(ALPS) 처리수' 또는 '트리튬(삼중수소) 수'라고 표현합니다. '오염수'라는 용어가 주는 부정적 이미지를 희석하기 위해서이죠.

이 표현이 성립하려면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처리된 물은 기술적으로 제거하기 어려운 트리튬(삼중수소)을 제외한 나머지 방사성 물질(62종)은 걸러졌어야 마땅합니다.


과연 그랬을까요?

현재 방사능 오염수의 약 80%에는 세슘 134,137이나 스트론튬90, 요오드129 같은 치명적 방사성 물질이 법정 기준치 이상 포함돼 있습니다.

이 사실이 처음 밝혀진 게 2018년 9월(교도통신 첫 보도)입니다. 도쿄전력도 이 사실을 시인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무려 7년여가 흐른 뒤입니다.

오염수 해양 방류를 앞두고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또' 약속을 했습니다. 트리튬(삼중수소)을 제외한 방사성 물질은 'ALPS 2차 처리(재정화)'를 해서 기준치 이하로 낮추겠다는 겁니다.

미덥습니까? 과거와 달리 이번에 오염수가 향하는 곳은 저장 탱크가 아닌 바다입니다. 제대로 '재정화'를 했는지 검증할 방법도, 문제가 드러났다 해서 되돌릴 방법도 없습니다.


■ 후쿠시마 어획량 17.5%

"어부에게 '부흥'은 딴 게 없어요. 잡은 물고기를 젊은 엄마들이 사주는 겁니다. 오염수를 바다로 흘려보내면 그걸로 끝입니다. '방류 외에 방법이 없다'는 정치인은 우리 목소리를 안 듣죠. 이겨 겨우 생선값이 오르는데 오염수를 방류하면 원점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 재팬' 인터뷰 中)

후쿠시마현 신치마치(新地町)에서 3대째 물고기를 잡아 온 오노 하루오(小野春雄) 씨의 말입니다.

후쿠시마산 수산물의 방사성 물질 허용 기준치는 1kg당 50베크렐로 일본 정부(100베크렐)보다 엄격합니다. 그런데도 지난해 어획량은 4천5백 톤으로, 동일본대지진 이전의 17.5%밖에 안 됩니다. 그나마 '후쿠시마산' 딱지가 붙어 제값도 못 받습니다.

오염수 '해양 방류'는 10년 노력에 치명상을 가할 겁니다.

일본 정부는 오염수를 해양 방류할 경우 트리튬을 물을 희석해 기준치 이하로 낮추겠다고 합니다. 이 역시 농도를 낮추더라도 해양에 방출되는 총량은 같으니 어찌 보면 '하나 마나 한' 이야기입니다.

트리튬은 인체에 흡수되면 유전자를 손상시킬 수 있습니다. 반감기는 12.3년입니다. 위험성을 무시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저감할 때까지 무려 120년 넘게 걸립니다.

게다가 2051년 완료를 목표로 한 후쿠시마 제1 원전 폐로 작업이 본격 시작되면 앞으로 훨씬 더 많은 고농도 방사능 오염수가 생성될 겁니다. 일본 정부의 '불도저식 밀어붙이기'에 후쿠시마 어민들이 느끼고 있는 분노와 좌절….

한국 역시 '바다 건너 불구경'할 일은 아닌 듯 보입니다.

황현택 기자 (news1@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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