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돗개의 불행은 진도에서 시작된다

김지숙 2021. 4. 12.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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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개 진도, 다르지 않아요][애니멀피플] 보통의 개 진도, 다르지 않아요
1회. 보호가 낳은 학대 '진도개보호법'의 모순
전남 진도군 진도개테마파크의 공연 프로그램 중 하나인 경주에서 진돗개들이 달리고 있다. 진도군청 누리집

대한민국 ‘국견’으로 불리는 천연기념물 53호, 영리하고 용맹한 토종개이지만 개 농장 뜬장, 도살장, 마당 방치견으로 흔하게 보이는 개, 바로 진돗개입니다. 한국사회에서 진돗개는 “가장 사랑받으면서도 가장 학대받는 개”(카라 전진경 대표)입니다.

애니멀피플은 2017년 창간 당시 ‘대한민국 진돗개 보고서’를 통해 진돗개의 복합적인 상황을 한 차례 살펴봤습니다. 4년간 진돗개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진돗개 농장주부터 국내외 진돗개 반려인, 진돗개 전문가, 훈련사와 수의사, 진돗개의 해외입양을 주선하는 단체들을 만났습니다.

진돗개 견종에 대한 차별과 오해를 줄이는 협업도 진행했습니다. 환경·동물복지를 추구하는 패션잡지 ‘오보이’는 훌륭한 반려견으로 도시에서 살고 있는 진도믹스 반려가정을 화보로 촬영했고, 유튜버 ‘진솔쓰’는 진도믹스 유기견들의 입양을 홍보하는 콘텐츠를 제작했습니다.

애피는 앞으로 총 4회 기사로 진돗개를 둘러싼 여러 입장과 순간들을 전합니다.

조용하던 공연장 곳곳에서 흥분한 개들의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개도 사람도 묘한 흥분감에 휩싸이는 듯했다. 200m 원형 트랙 출발 지점의 문이 열리자 개들은 눈앞에서 쏜살같이 사라졌다. 개들은 눈앞 ‘사냥감’을 쫓았다. 기계에 매달린 채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미끼는 잡힐듯 말듯 개들을 앞서갔다.

두번째 바퀴가 되자 네 마리 중 두 녀석이 후미로 떨어졌다. “얘네는 지쳤나보다.” 선두와 거리가 벌어진 개들이 의무라도 다하려는 듯 이전보다 건성으로 달려 도착 지점으로 향했다. 그제서야 개들의 주둥이에 씐 입마개가 눈에 들어왔다.

  “테마파크가 진돗개 편견 부추겨”

3월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진돗개 테마파크를 폐지해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테마파크가 생명을 경시하고 시대를 역행하며, 소리에 예민한 개들을 학대하는 동물 서커스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2012년 진돗개 혈통보전과 우수성 홍보 등을 목적으로 문을 연 전남 진도군 진도개테마파크(진도군은 천연기념물로 관리받는 진돗개를 ‘진도개’로 쓰고 있다)는 매년 3~12월 진돗개 공연, 경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해마다 공연이 시작되는 3월이면 동물복지와 관련한 작은 항의들이 있어왔으나 올해는 논란의 진폭이 달랐다.

진도개테마파크 내 방사장의 성견들. 테마파크는 위탁받은 진도개들을 이곳에서 사육하고 있다.

특히 진돗개들이 입마개를 한 채 맹렬히 달리는 홍보 사진에 반려인들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진돗개는 입마개 착용이 의무가 아님에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주 오해를 받고 시비의 대상이 되는 견종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청원이 올라오고 열흘 뒤인 3월13일 토요일 진도개테마파크를 찾았다. 문제의 진돗개 경주는 채 5분이 되지 않는 짧은 프로그램이었다. 주말 공연의 하이라이트인 듯 마지막 순서였다. 공연 좌석에 앉아있던 관람객들도 경주장 울타리에 모여들었다.

경주가 시작되자 플라스틱 입마개를 한 네 마리의 개들이 한 조가 되어 달려 나갔다. 트랙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 목표물이 움직이면 개들은 사냥감을 쫓듯 뒤를 쫓았다. 눈 앞을 스치듯 달려가는 개들의 외모를 자세히 볼 틈도 없었다. 그런 중에도 누군가는 중얼거렸다. “진짜 입마개를 했네.”

청원글을 올린 ㄱ씨는 애니멀피플과의 통화에서 “개 경주 사진에 많이 놀랐다. 요즘엔 경마나 돌고래 체험도 동물학대 지적이 많은데, 진도군이 진돗개를 홍보한다면서 이런 사진을 올리는 게 터무니 없었다”고 말했다.

천연기념물 53호, 영리하고 용맹한 토종개이지만 유기견 보호소, 개농장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개, 진돗개. 한국사회에서 진돗개는 가장 사랑받으면서도 가장 학대받는 개다. 게티이미지뱅크

청원인을 비롯한 진돗개 보호자들은 입마개뿐만 아니라 테마파크 곳곳에서 진돗개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강화하는 프로그램들이 진행중이라고 지적한다. 진돗개 반려인 ‘태산이 누나’ 박시연씨는 “진도개 홍보관에 악력체험이라는 게 있다. 손을 집어 넣고 진돗개가 무는 힘이 얼마나 강한지 체험해 보는 것이다. 과연 이 체험이 관람객들에게 어떤 생각을 심어줄까. 진돗개는 입질이 있고 사납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고착화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들은 모두 지인의 마당개가 낳은 강아지를 입양한 보호자들이었다.

  사납다 오해받고… 시설 이용 거부 당하고…

10년 전부터 이어온 테마파크 프로그램이 유독 올해 큰 논란으로 이어진 데는 공교로운 시점도 한 몫했다. 2월 초 한 반려동물용품 업체 대표의 견종 차별 발언이 인스타그램에서 뜨거운 논란으로 떠올랐다. 해당 업체는 반려인들 사이에서 프리미엄 브랜드로 사랑받던 업체다. “숙소에 (있는지) 몰랐던 진도개가 있었다. 사나운지 물었는데 ‘우리개는 안 문다’고 하더라. 그래도 진도개는 진도개다”라는 말이 문제가 됐다.

방사장에는 진도개 강아지들도 살고 있었다. 코로나19 여파로 먹이주기 체험은 중단된 상태지만, 관람객이 방사장에 다가가자 반기고 있다.

‘진돗개는 무는 개’라는 선입견이 담긴 그의 발언에 진도믹스를 비롯한 진돗개 반려인들은 반발했다. 개 물림 사고가 나면 미디어는 진돗개라는 견종을 부각시키고, 맹견은 아님에도 입마개 착용을 강요받던 터였다. 그런 중에 진돗개에 대한 오해를 부를 수 있는 진도개테마파크의 홍보물이 공개되자 분노는 커졌다. “진돗개를 반려하는 많은 분들이 견종 차별을 버텨오고 있다. 진돗개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짓밟지 말아달라”는 내용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포함된 맥락이다.

진돗개들이 주말 공연에서 링을 통과하는 묘기를 선보이고 있다. 진도개공연단 제공

진도개테마파크 쪽은 학대라는 지적에 화들짝 놀랐다. 홍선호 진도개공연단 단장은 “우린 개를 학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항변했다. 어질리티(보호자와 반려견이 한 팀이 되어 장애물 코스를 빠르고 정확하게 완주하는 스포츠)와 공연에 출연하는 11마리 진돗개들은 실제 반려인들과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평일엔 각자 집에서 10~20분 연습을 하고, 주말 공연 전에 함께 동작을 맞춘다고 했다. 공연에 출연하는 개들의 평균 경력이 7~8년이고, 공연단원들도 50~60대 주부나 퇴직자들이라 “그저 개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무리한 훈련은 절대 없다”고 했다.

홍 단장은 현재 논란이 되는 동물학대 지적에 “전혀 공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쇼를) 억지로 시키는 게 아니라 훈련을 통해 사회화하고 반려인과 교감을 나누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연 장비나 여건을 보완하고 개선할 생각은 있지만 쇼의 내용을 바꿀 생각은 없다”고 했다.

  진도믹스 유기견은 왜 넘쳐나나

진도의 개테마파크에 원망과 비판이 쏟아진 데는 사실 그곳이 모든 ‘진돗개들의 고향’인 탓도 있다. 유기견 11만마리 시대,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진돗개는 가장 흔한 견종 중 하나다.

경기도 파주시 카라 더봄센터에서 지내고 있는 진돗개들.

11일 국내 동물단체 2곳의 유기견 현황을 살핀 결과, 보호소 입소견 가운데 절반 가량이 진도믹스였다. 동물권행동 카라의 더봄센터엔 120 마리 중 57마리가 진돗개였고, 동물자유연대의 온센터도 280마리 중 140여 마리가 진도믹스나 진돗개라고 밝혔다.

전국 지자체 보호소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 동물보호관리시스템(APMS)에 등록된 유기견 9만4000여마리 가운데 진돗개는 3천200여마리로 유기견종 상위 5위에 포함됐다. 유기견 통계 중 가장 많은 견종을 차지한 믹스견(6만4000여마리) 중에도 진도믹스가 상당수 있다. 이를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늘어난다.

88서울올림픽 당시 개막식에서는 진돗개 퍼레이드를 벌이기도 했다. 국가기록원 제공

유행했던 견종이 몇 년 뒤 유기견으로 급증하는 악순환은 진돗개도 마찬가지였다. 과거 1980~90년대 중산층을 중심으로 애견문화가 자리잡으면서 진돗개 열풍이 불었다. 진돗개는 88올림픽 개막식에서 행진하고, 대통령들의 퍼스트 독으로 소개됐다. 서울 충무로 애견 거리에도 ‘순종 진돗개’ 수요가 증가했고, 마리 당 20만~30만원에 팔리던 개들은 쉽게 거래됐고 쉽게 버려졌다.(▶관련기사: ‘국견’ 추앙받던 진돗개는 왜 유기견이 되었나)

  ‘진도개’가 되지 못한 ‘진돗개’

동물단체들는 1967년 만들어진 ‘한국진도개보호육성법’(이하 진도개 보호법)을 비극의 또다른 요인으로 본다. 토종 진돗개를 보전·보호하려고 만든 법이었지만 ‘천연기념물 제53호’로 관리되는 개들 이외에는 철저히 외면됐기 때문이다.

진도에 살고 있는 진돗개들은 생후 6개월이 되면 혈통과 표준체형 심사를 받는다. 일종의 ‘족보’를 갖게 되는 것인데, 부모견이 확인되고 표준체형을 갖추었다고 판정된 개는 등록증을 발급받아 보호·육성된다. 그러나 심사에 불합격 할 경우, 진도개 보호법 8조에 따라 ‘거세 또는 도태하거나 보호지구 밖으로 반출’해야 한다.

진도군 진돗개 농장에서 종견으로 사육되고 있는 진도개.

진도군 자료를 보면, 현재 진도에 사는 개는 약 1만마리다. 새로 태어나는 개는 해마다 3000~4000마리 수준. 최근 5년간 진도개 심사에서 불합격한 개체는 118마리였다. 2016년에는 불합격견이 1마리도 없는 반면, 2017년부터 매년 평균 30마리 이상의 개들이 ‘진도개가 아닌 진돗개’가 되고 있었다.(진도군은 천연기념물로 관리받는 진돗개를 ‘진도개’로 구분해 쓰고 있다)

한해 30여마리는 많은 수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최근 관련 산업이 많이 축소된 상태임을 감안하더라도, 이를 1960년대 이후 약 50년으로 소급해 계산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많은 진돗개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한때 이런 개들이 많을 때는 육지에서 들어온 트럭이 섬을 돌며 개들을 싣고 갔다고 한다. 탈락견들은 마당견으로 팔려 집 지키는 개가 되거나 대개 식용견이 됐다.

“진도군에서는 반출하라고만 하지 어떻게 하라는 말이 없어요. 중성화만 하면 키워도 된다고 하지만, 가는 데는 정해져 있는데 마치 모르는 척.” 진도에서 만난 한 농장주는 “불합격견을 반려견으로 사회화하고 입양 보내려면 현실적인 수요와 시장 조사, 지원이 필요한데 지자체는 그런 데는 관심이 없다”고 비판했다.

  “진돗개 보호법이 아니라 학대법”

그동안 많은 학대견을 구조해온 카라 전진경 대표는 진돗개를 “가장 사랑받으면서도 가장 학대 받는 개”라고 평가했다. “진도개보호육성법은 개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놓고 진돗개들을 가장 학대 받는 개들로 만들어버렸어요.”

진돗개는 개농장, 개도살장 그리고 유기견 보호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견종이다. 카라 제공

1970년대 중반부터 진도에서 진돗개 농장을 운영해 온 임아무개씨도 안타까움을 표했다. “진돗개는 포지션이 참 애매해요. 육지에서 진도로 개를 사러 와. 그러면 상상하는 게 호랑이와 싸우는 개, 공격성이 보이는 머리 큰 개를 찾아요. 그러면서 사회성도 좀 있었으면 좋겠고, 산책도 잘하고 애견 카페도 갔으면 좋겠고….” 인간의 바람이 이중적이란 지적이었다.

책 <우리 진돗개> <한국의 토종개>를 지은 임인학 작가는 사람들이 진돗개에 대해 모순된 환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진돗개에 대한 환상이 있어요. 한 주인만 섬기고, 지능이 좋고, 독립성이 강해. 개는 개일 뿐인데 천연기념물이고, 문화재고. 곁에 두고는 싶은데 길들이기 쉽지 않고 환상이 크니 실망하기도 쉽죠.”

개는 최소 1만2000년 전 자연을 버리고 인간의 세계로 들어왔다. 사냥을 포기하고 인간에게 먹이를 의지하며 사람과 교감하도록 진화했다. 오랜 세월 인간의 감정을 살피며 교류해 온 개에게 사람이 없는 환경은 쓸쓸하다. 우수성 홍보를 위해 달리기, 묘기를 선보이는 진돗개들의 뒤편으로는 버려지고 방치되고 먹히고 학대 당하는 개들이 있다.

진도/글·사진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2회에서는 진돗개 전문가 임인학 작가가 ‘각별한 애견가들’이라고 평한 진돗개(진도믹스) 반려인들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단지 진돗개라서 일상에서 겪는 오해와 차별, 이를 헤쳐나가는 지혜 등을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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