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뤽 아우프'..지금도 귓가에 선명한 이국땅 막장의 기억
(전주=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 "글뤽 아우프(Gluck Auf)"
탄광에 들어갈 때면 모두가 하는 인사가 있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 속에 '행운을 갖고 위로 올라오라'는 뜻이었다. (중략) 탄광에서 일하면 석탄과 돌가루, 먼지가 몸속 모든 곳으로 들어온다. 코담배로 석탄 가루는 뺄 수 있지만, 돌가루는 절대 빠지지 않는다. 지금도 진폐증과 규폐증을 앓으며 사경을 헤매는 사람도 있고, 그중에는 사망한 동료도 많다. - 권이종 교수. '파독 광부, 꿈을 캐는 교수로' 中-
배곯던 유년 시절…독일 광산행을 결심하다
일제 강점기 말기 전북 장수의 산골에서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난 소년의 삶은 고달팠다. 2남 2녀 중 막내였던 그의 보금자리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기울어졌고, 제대로 닫히는 문조차 없었다.
산에서 벗겨온 소나무 껍질과 겨우 얻은 쌀겨로 만든 죽이 유일한 끼니였다. 그마저도 하루에 한 번을 제대로 먹기 어려워 늘 배를 곯았다.
지독했던 가난은 부지런을 채찍질했다. 초등학교를 어렵사리 마친 뒤에도 장작 패기와 신문 배달로 학비를 벌어 전주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아들을 가엾게 여긴 어머니는 부잣집 앞에 무릎 꿇고 쌀을 꿔줄 것을 읍소하기도 했다.
교사를 꿈꿨던 소년은 졸업 이후 냉혹한 현실 앞에 절망했다. 잠을 줄여가며 일해도 대학교 학비는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거대했다. 그는 고민 끝에 진학을 포기하고 서울의 공사장으로 향했다.
남들보다 먹지 못해 왜소했던 그는 사장에게 사정해 겨우 철근을 자르는 허드렛일을 맡았다. 잘 곳도 없어서 길거리와 흙바닥에서 2년 넘게 새우잠을 잤다.
여느 때와 같이 공사장에 나선 그에게 동료가 신문을 보여줬다. 말단 공무원 월급의 10배를 벌 수 있다는 솔깃한 말과 함께였다. 신문 한쪽에 쓰인 기사 제목은 그에게 운명으로 다가왔다.
'파독 광부 모집'
생사를 넘나드는 막장에서…학문의 싹을 틔우다
파독 광부가 되기까지 과정은 격동의 현대사를 그린 영화 '국제시장'에 잘 묘사돼 있다. 60㎏이 넘는 쌀가마니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깐깐한 체력 검사를 넘어, 영어와 국사 등 기본적 학력 테스트도 통과해야 했다.
1964년 10월 5일 김포공항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꼭 많은 돈을 벌어서 우리 집안을 살리겠다'며 연신 옷깃으로 눈가를 훔쳤다.
독일 공항에 도착한 그는 아헨에 있는 메르크슈타인(Merkstein) 아돌프 광산으로 향했다. 빛을 삼킨 지하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타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막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계화된 독일 탄광에서 그와 동료들은 '슈펠템(쇠기둥)'을 세우는 작업을 했다. 채탄 기계가 석탄층을 파고들 때마다 한 개에 40∼60㎏이 넘는 기둥을 60∼80개씩 세우는 게 일과였다.
광산 일을 마치면 상처 난 피부에 석탄 가루가 들어와 늘 박혔다. 꼭 문신한 것처럼 피가 나도록 박박 긁어도 절대 빠지지 않고 까맣게 변해갔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것은 동료들의 죽음이었다. 가스 폭발과 붕괴, 매몰 등 생사를 가르는 사고가 막장 곳곳에 도사렸다. 눈앞에서 동료들의 죽음을 볼 때마다 공포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쳤다.
3년의 광부 생활을 마칠 때쯤 양어머니로 섬기던 독일인 부인은 손에서 책을 놓지 않던 그에게 '이왕 독일까지 왔으니 대학에 가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오랜 고민 끝에 고국행을 접은 그는 이국땅에서 만난 부부와 교수의 도움으로 외국인 최초로 아헨교원 대학교에 입학했다.
파독 광부가 교수로…이제는 나눔의 길로
'나는 힘들고 우울하고 배고플 때마다 학교 화장실에서 혼자 시간을 보냈다. 나를 볼 사람이 없었고, 한국에서 볼 수 없던 수세식이라 앉아있기 편했다. (중략) 독일에서 공부하기가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죽고 싶은 생각도 여러 번 가졌다. 그럴 때마다 푀겔러 교수님을 찾아갔다. 교수님은 "권 군은 호수 한가운데 있으니 그대로 빠져 죽을 것인지, 헤엄쳐 나올 것인지 스스로 판단하라"는 독일 격언을 말씀하며 용기를 주셨다.-저서 中-'
탄광에서 랜턴에 불을 밝혀가며 배웠던 초급 독일어와 대학 공부는 차원이 달랐다. 이를 악물고 공부한 끝에 스터디 모임에도 참여하게 됐고, 한국에 관심이 많은 독일인 친구도 사귀게 됐다.
친구의 소개로 만난 한국 여성과 교제하며, 미래에 대한 꿈을 키웠다. 1970년 5월 아헨 지역신문에는 얼마 전까지 광부였던 그와 유학생 신분인 배우자의 결혼 소식이 실렸다.
그는 생활이 안정된 이후로도 배움에 대한 열정을 불살랐다. 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데 이어 1979년 2월에는 한국인 최초로 '독일 순수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파독 광부가 박사가 된 역사적 순간이었다.
그는 귀국해서도 우리나라 청소년과 평생 교육을 위해 몸 바쳤다.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와 파독근로자 기념관장, 한국청소년정책개발원장 등을 역임했다. 지금은 ADRF(아프리카·아시아 난민교육 후원회) 회장으로 나눔의 길을 걷고 있다.
"절망 속에 사는 젊은이에게 꿈과 희망 주고 싶다"
12일 연합뉴스 전북본부 사무실에서 영화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 '파독 광부, 꿈을 캐는 교수로' 저자 권이종(81) ADRF 회장을 만났다.
권 회장은 "가난을 극복한 우리 세대뿐만 아니라 절망 속에 사는 젊은이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어서 책을 썼다"고 밝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어느 때보다 어려운 삶을 사는 청년들이 '이런 세상에 산 사람도 있었구나', '나도 해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품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권 회장은 책에서 풀지 못한 파독 광부 시절 이야기도 하나 꺼내놨다.
그는 "인류 사회에서 가장 기피된 직업 중 하나가 광부일 것"이라며 "깜깜한 탄광에서 사고로 죽을 가능성이 크고, 살아난다고 해도 진폐증에 걸리거나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일찍 죽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탄광 일한 지 일주일도 안 돼서 아침에 인사했던 동료가 시체로 나오는 것을 봤고, 사지가 떨어져 불구가 된 이들도 목격했다"며 "나도 왼손이 바위에 맞아 완전히 으깨져서 지금도 물건을 잘 들지 못한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권 회장은 청년들에게 거듭 용기와 위로의 말을 전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우리가 살았던 예전의 삶을 알리거나 눈부신 경제 발전을 자랑하는 게 아니"라며 "'그때 우리가 열심히 살아서 지금이 있는 것'이라는 말보다 '지금 많이 힘들지?', '힘내서 잘해보자'라는 위로와 배려가 이 시대를 사는 청년들에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jay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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