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국을 위한 '착한기술' 코로나백신 나오나

곽노필 2021. 4. 12. 10:1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세계 대유행]달걀 배양으로 만드는 새 백신 후보 개발
베트남, 타이, 브라질 3개국서 임상시험 돌입
기존 독감백신 생산 시설 활용해 양산 가능



타이에서 임상시험에 쓰고 있는 백신 `NDV-HXP-S’. 오스틴텍사스대 제공

코로나19에서 처음으로 적정기술 개념이 적용된 백신이 개발되고 있다. 동물 실험에서 좋은 효과를 보인 데 이어 최근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적정기술이란 고도의 첨단 기술을 적용할 여건이 안되는 지역과 사회의 여건에 맞춰 개발된 기술을 말한다. 주로 소외계층이나 저소득층, 개발도상국 주민을 겨냥했다고 해서 '착한 기술'이란 별칭으로도 불린다.

‘NDV-HXP-S’이라는 이름의 이 백신 후보는 미국의 오스틴 텍사스대와 마운트시나이 아이칸의대 연구진의 합작품이다. 이들은 적정기술을 지원하는 단체의 주선으로 개발도상국가인 베트남과 타이, 브라질에 이 백신 기술을 이전했다. 타이와 베트남에서 임상시험을 시작했으며 브라질에선 곧 임상시험에 들어간다.

현재 접종 중이거나 개발중인 백신들은 주로 코로나 바이러스 표면에 있는 돌기 단백질(스파이크 단백질)을 항원으로 사용한다. 돌기 단백질은 바이러스가 인체 세포에 침투할 때 핵심 도구로 사용하는 물질이다. 이 돌기 단백질 또는 관련 유전자를 인체에 주입하면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바이러스가 침입한 것으로 인식해 항체를 생성한다. 화이자와 모더나의 백신은 돌기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물질에 지질 입자를 씌운 것(RNA백신)이고, 아스트라제네카와 존슨앤드존슨 백신은 유전물질을 다른 바이러스에 집어넣은 것(바이러스벡터백신)이다. 이번에 임상시험에 들어가는 백신은 후자에 속한다.

이번에 3개국에서 임상시험에 들어가는 백신은 앞서 나온 백신들보다 제조와 보관이 훨씬 쉽다. 화이자, 모더나 같은 백신처럼 특수 생산, 보관 시설이 필요 없다. 독감 백신과 똑같이 달걀을 이용해 백신을 만들기 때문이다. 자국에 있는 기존 독감 백신 생산 시설을 그대로 이용하면 된다. 임상시험만 통과한다면 별다른 추가 투자비용과 시간을 들이지 않고 연간 10억회 이상의 백신 제조가 가능하다. 보관 온도도 2~8도로 일반 냉장보관시설만 있으면 충분하다. 듀크대 세계보건혁신센터 안드레아 테일라 부소장은 이런 점을 들어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는 백신"이라고 평가했다.

이들 3개국이 국내 시설로 이 백신을 제조할 수 있도록 주선한 단체는 미국 시애틀의 비영리단체 보건적정기술프로그램(패스, PATH)이다. 1977년에 설립된 이 단체는 70여개국에 약 1600명의 직원을 두고 제약업체들의 백신 개발과 개발도상국의 백신 도입을 지원하고 있다.

코로나19 백신의 핵심 성분인 ‘헥사프로’를 설계한 제이슨 맥렐란 교수. 오스틴텍사스대 제공

한 분자생물학자의 헌신적 연구와 태도가 결정적 역할

이 백신이 최초의 적정기술 백신 후보로 주목받까지는 미국 오스틴텍사스대 제이슨 맥렐란 교수(분자생물학)의 탁월한 연구 성과와 헌신적 태도가 큰 역할을 했다.

맥렐란 교수가 처음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 개발에 뛰어든 것은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유행했을 때다. 메르스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호흡기 감염 질환이다.

그는 연구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세포에 융합할 때 돌기 단백질의 모양이 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평소엔 튤립처럼 뭉툭한 모양이었다가 세포 융합 과정에선 창처럼 뾰족한 모양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모양이 변하기 전의 단백질에 대항해 만들어진 항체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잘 방어했지만, 창 모양으로 변한 단백질에 대한 항체는 방어력이 약했다. 백신이 효과를 내려면 모양이 변하기 전의 형태를 유지해줘야 했다.

그는 모양을 고정시키는 방법을 찾던 끝에 돌기 단백질의 1273개 아미노산 중 2개를 프롤린으로 바꾸면 모양이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아냈다. 그는 이 변형 단백질을 `2P' 단백질로 명명했다. 이어 이를 생쥐에 주입한 결과 항체의 반응이 이전에 비해 훨씬 활발해졌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메르스가 사그라들면서 연구는 더는 진행되지 못했다.

맥렐란 교수는 2019년 말 코로나19가 발생하자 백신 연구를 재개했다. 메르스때 개발한 변형 돌기 단백질(2P)을 코로나19용으로 재설계했고, 모더나는 며칠 뒤 이를 이용해 백신을 설계했다. 화이자, 존슨앤드존슨, 노바백스와 프랑스 사노피의 백신도 맥렐란의 2P 단백질 설계도를 이용했다. 앞서 그는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와 협력해 2020년 초 원자 수준의 돌기 단백질 입체구조도를 처음 완성해 발표하기도 했다.

맥렐란 교수가 변형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돌기 단백질 `헥사프로\

개도국에 기존 백신보다 더 안정적인 단백질 설계도 무료 제공

아미노산 2개를 바꿔 백신의 능력이 향상됐다면 더 많이 바꾸면 더 좋아지지 않을까?

이런 의문을 품은 그는 이후 같은 대학의 다른 두 교수와 함께 100여가지의 새로운 변형 돌기 단백질을 만들어 시험했다. 그 결과 4개의 프롤린을 더 추가하면 돌기 단백질이 훨씬 더 안정적이고 열과 화학물질에도 강해진다는 걸 발견했다. 그는 프롤린이 6개 있다는 뜻에서 이 변형 돌기 단백질을 `헥사프로'(HexaPro)라고 명명하고, 실험 결과를 지난해 5월 사전출판논문집 `바이오아카이브'에 처음 공개했다. 오스틴텍사스대 일리야 핀켈스타인 교수(분자생물학)는 "헥사프로는 세포 배양 실험에서 기존 1세대 변형 돌기단백질 백신보다 수율이 10배 이상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 수율이 유지된다면 백신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한걸음 더 다가갈 것"이라고 말했다.

맥렐란 교수는 백신 혜택에서 소외된 개발도상국들이 이 헥사프로를 이용해 백신을 개발할 수 있기를 바랬다. 이에 따라 대학 쪽은 80개 개발도상국의 연구기관들이 특허 사용료를 내지 않고 이 단백질을 백신 개발에 사용할 수 있도록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맥렐란 교수는 대학 보도자료에서 "우리의 희망은 백신이 안전하고 효능이 좋고 저렴해서 더 많은 세계인이 코로나19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헥사프로 단백질을 사용한 백신도 대부분의 백신처럼 2회 접종한다. 오스틴텍사스대 제공

적정기술 단체 의뢰로 달걀 배양 백신 제조법 개발

텍사스 연구진이 개발도상국에 독자적 백신 개발을 위한 핵심 도구를 제공했다면, 뉴욕의 마운트시나이 아이칸의대 연구진은 백신을 대량 생산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인 제조 비용과 보관 문제를 해결했다.

많은 개발도상국에는 독감 백신을 생산하는 공장이 있다. 독감 백신은 유정란에 독감 바이러스를 집어넣은 뒤 배양해 만든다. 이 기술을 이용할 수 있다면 개도국도 쉽게 백신을 생산할 수 있다. 비영리단체 패스(PATH)팀은 아이칸의대 연구진에게 맥렐란 교수의 헥사프로를 이용해 계란 배양 방식의 코로나19 백신 제조법을 개발해 줄 것을 의뢰했다. 아이칸의대 연구진은 당시 인간에게 무해한 뉴캐슬병 바이러스를 이용해 에볼라 백신을 만들어, 이를 계란 배양 방식으로 양산하는 방법을 개발한 상태였다. 뉴캐슬병 바이러스는 조류 바이러스여서 달걀에서 빠르게 증식하는 반면, 인간에겐 감염되지 않는다. 연구진은 에볼라 단백질 유전자 대신 ‘헥사프로’ 유전자를 뉴캐슬병 바이러스에 집어넣어 코로나19 백신(NDV-HXP-S)을 만들었다.

패스팀은 지난해 10월 베트남의 독감 백신 공장에서 실험용 백신 수천회분을 생산해 생쥐와 햄스터에 주입한 결과 강력한 효과를 확인했다.

이 백신엔 또 하나의 장점이 있다. 달걀 1개로 생산할 수 있는 백신의 양이 독감 백신은 1~2회분에 불과하지만, 코로나 백신은 5~10회분이나 됐다. 이는 향후 백신 값을 낮출 수 있는 토대가 된다.

타이의 한 병원에서 임상시험을 위한 백신 주사를 놓고 있다. 오스틴텍사스대 제공

임상시험 통과하면 개도국 자체 생산-접종 가능

패스는 오스틴텍사스대 및 마운트시나이아이칸의대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어 베트남, 타이, 브라질 3개국이 독자적으로 백신을 제조하고 임상시험을 진행할 수 있도록 기술 이전을 성사시켰다. 이에 따라 맨먼저 베트남 백신의학생물학연구소(IVAC)가 지난달 15일 백신 임상시험 계획을 밝혔다. 7월까지 임상1상을 끝내고 올해 안에 백신 승인을 받는다는 일정을 잡고 있다.

1주일 후엔 타이 정부제약기구(GPO)가 460명을 대상으로 임상 1~2상에 들어갔다. 타이도 올해 말까지 임상시험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내년 중 승인되면 독감백신 생산 시설을 이용해 연간 최대 5천만회 분량의 백신을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이어 3월26일엔 브라질 부탄탄연구소가 임상시험 계획을 내놨다. 마운트시나이 아이칸의대는 멕시코의 백신제조업체 아비멕스에도 코 분사 방식의 코로나19 백신 제조 기술을 이전했다.

새 백신도 기존 백신들처럼 2회 접종한다. 첫 주사를 맞은 뒤 28일 후에 두번째 주사를 맞는다. 문제는 백신 생산 시기다. 임상시험이 순조롭게 진행되더라도 올해 안에는 접종을 시작하기가 어렵다. 조지타운대 법률센터의 지적재산권 연구원 마드하비 순데르(Madhavi Sunder)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이 백신이 브라질처럼 현재 코로나와 씨름하는 국가에 당장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이라며 "대신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다른 전염병에 대비한 장기 백신 생산 전략면에서 매우 유망해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대학 당국으로부터 부교수에서 정교수로 승진했다는 통보를 받은 맥렐란 박사는 현재 헥사프로보다 훨씬 더 나은 3세대 변형 돌기 단백질을 찾고 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