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낯 드러낸 공수처-법무부-청와대, 정권 수사 가능한가
(시사저널=조해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출국금지(출금)' 사건을 둘러싸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물론 청와대-법무부의 민낯이 또 한번 드러났다. 공수처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황제 조사'를 통해 정치적 중립·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근본 가치를 스스로 무너뜨렸다. 김 전 차관의 성범죄 재조사가 이광철 민정비서관을 중심으로 한 '청와대발 기획사정'이라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법무부는 검찰 수사가 청와대로 향하자 '피의사실 공표 금지'를 또다시 꺼내들었다.
"이 법(공수처법)은 명백히 '문재인 처벌 방지법'이다. 검찰 개혁이 그렇게 역사적 소명이라고 외치더니 결국 속내는 퇴임 후 (문재인 정권의) 안전판이었다. 권력자 마음대로 입맛에 맞는 사람을 공수처장에 임명하고, 공수처를 권력자의 친위조직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해 말 공수처를 비판하며 한 말이다. 이와 관련해 야당 관계자는 "반대 진영 탄압을 위한 '표적수사'보다 더욱 위험한 것은 자기 진영에 대한 '봐주기 수사'"라면서 "공수처는 살아 있는 권력에 면죄부를 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성윤은 검사 이전에 정권 실세"
공수처는 검찰 비리를 검찰이 수사-기소하면서 나타날 수 있는 '제 식구 감싸기'를 막기 위해 탄생했다. 그러나 김진욱 공수처장은 이성윤 지검장에게 말 그대로 '황제 조사'를 베풀었다. 김 처장은 3월7일, 김학의 불법 출금 및 수사 무마 외압 의혹의 피의자인 이 지검장을 조사하면서 CCTV 녹화는 물론 면담 조서도 남기지 않았다. 김학의 불법 출금 사건 공익신고자는 김 처장을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로 고발했다.
'황제 조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김 처장이 공수처 관용차를 이용해 이 지검장을 에스코트한 모습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당시 이 지검장은 이 사건을 맡고 있는 수원지검의 4차례 소환조사를 모두 거부한 상태였다.
김 처장이 이 지검장에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호의'를 베푼 이유는 무엇일까. 이성윤 지검장은 가장 대표적인 친(親)정부 검사다. 윤석열 전 총장을 대신할 차기 검찰총장에 가장 유력한 후보다. 익명을 요구한 검찰 관계자는 "공수처는 검사를 수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라면서 "그러나 이성윤(지검장)은 '검사' 이전에 '정권 실세'다. 김진욱(공수처장)이 감히 정권을 향해 칼을 들이댈 수 있겠는가. 만약 내년에 정권 교체가 이뤄지면 김진욱의 스탠스가 또 어떻게 달라질지 기대된다"고 비꼬았다.
공수처는 독립된 기관이다. 대통령도 관여할 수 없다. 공수처법 제3조3항은 '대통령, 대통령비서실의 공무원은 수사처의 사무에 관하여 업무보고나 자료제출 요구, 지시, 의견제시, 협의, 그 밖에 직무수행에 관여하는 일체의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공수처장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다. 정웅석 서경대 교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신설에 관한 비판적 고찰'에서 "공수처장을 선거직으로 하지 않는 이상 임명권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면서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은) 최종적으로는 '대통령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김성원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독립성이 보장된 검찰총장을 핍박하는 정권이, 공수처를 어떻게 운영할지 불 보듯 뻔하다"고 비판했다.
공수처 설립을 줄기차게 주장해 왔던 참여연대 역시 "공수처장이 수사 대상자이자 고위 검찰 관료인 이 지검장을 비공개로 면담하고 편의를 봐준 것은 적절하다 할 수 없다"면서 "공정성과 독립성에 대한 우려를 야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공수처에 거는 시민의 기대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밝혔다.
공수처의 중립성·독립성이 흔들리고 있지만, 김진욱 처장은 '공소권 유보부 이첩(공소권 행사를 유보한다는 조건하에 사건을 이첩)' 방침을 사건사무규칙에 명문화했다. 검찰이 판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 사건을 수사했을지라도 공소 여부는 공수처가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검찰은 "공수처법에 해당 규정이 없고, 이는 사건사무규칙이 아닌 법률로 정해야 할 사안"이라며 즉각 반대 의사를 밝혔다. 실제로 검찰은 김학의 불법 출금과 관련해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과 이규원 검사를 자체 기소했다. 결국 법원의 판단에 따라 공수처-검찰의 기소권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전가의 보도된 '피의사실 공표 금지'
김학의 불법 출금 의혹 사건은 청와대로 비화했다. 그 중심에 이광철 민정비서관이 있다. 차규근 본부장은 김학의 출국금지 요청서를 조작한 당사자인 이규원 검사를 이광철 비서관이 소개했다고 진술했다. 만약 이 비서관이 이 검사에게 사건번호 조작 등을 지시했다면 공범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검사는 2019년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활동할 때 허위 내용이 기재된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데, 이 비서관은 여기에도 연루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허위 보고서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 이 검사 등에게 5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곽상도 국민의힘 의원은 "가장 큰 문제는 이 검사가 어떻게 과거사진상조사단에 합류했는지 문재인 정부 누구도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면서 "이 검사는 이 비서관과 사법연수원 동기(36기)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법률사무소 정평에서 함께 근무했다. 이런 인연으로 이 비서관이 이 검사를 과거사진상조사단에 추천했다는 말도 나온다. 즉, 이 검사가 이 비서관을 통해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청와대발 기획사정을 수행했다는 의혹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 수사가 '청와대발 기획사정'으로 향하자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검찰이 수사 내용을 언론에 흘렸다"며 연일 검찰을 압박했다. 이에 따라 대검찰청은 4월7일 서울중앙지검과 수원지검에 진상 확인을 지시했다. 검찰의 정권 수사와 이에 따른 법무부의 압박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데자뷔'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박 장관은 "검찰이 수사 기법에서 떳떳하면 외압으로 느낄 이유가 없다"면서 "수사를 못 하게 발언하거나 인사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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