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부통령 "자금동결, 韓이미지 훼손" 정총리 "해결에 협력"
경제협력점검협의체 설치·인도적 교역 확대 합의
(테헤란=뉴스1) 박주평 기자 = 에스학 자한기리 이란 제1부통령은 지난 11일(현지시간) 정세균 국무총리와의 회담 후 진행한 공동 기자회견에서 국내에 동결된 이란의 원유 수출 원화대금 70억달러(약 7조6000억원) 문제가 "항상 긍정적이고 우호적이었던 한국의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혔다"고 밝혔다.
정 총리는 "저의 테헤란 방문은 양국 간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한 대한민국의 의지 표명"이라면서 국내에 동결된 이란의 원화자금 문제 해결,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대화 진전을 위해 협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 총리와 자한기리 제1부통령은 지난 11일 오후 6시부터 7시30분(현지시간)까지 이란 테헤란 사드아바드 좀후리궁에서 단독·확대회담을 진행한 뒤 개최한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밝혔다.
자한기리 제1부통령은 이란의 7명의 부통령 중 서열 1위로, 행정부 2인자로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등 이란 정부 최고위 인사다. 양측은 이란의 원화자금 동결 등 주요 현안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자한기리 부통령은 회견문 대부분을 이란의 원유수출 대금 약 70억달러가 동결돼 발생하는 어려움을 설명하고, 우리 정부에 이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데 할애했다. 이란 정부가 지난 1월4일 '한국케미호'와 선원들을 나포해 95일간 억류했다가 지난 9일에야 풀어준 것도 동결자금 문제가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자한기리 부통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의료 장비, 의약품 구입을 위해 대규모 외화 자원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에서 한국 은행들이 이란의 외화자원을 차단했다"며 "결과적으로 이런 조치들은 이란 사람들에게 항상 긍정적이고 우호적이었던 한국의 이미지와 입지를 크게 손상시켰다"고 지적했다.
다만 "정 총리의 이란 방문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이란 정부는 한국이 효과적이고 가시적인 조치를 취한다면 한국을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정 총리가 지난 2017년 국회의장으로 이란을 방문했던 사실을 언급하면서 문제 해결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에 정 총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여러 풍랑 속에서도 이어온 한국과 이란의 우호관계는 최근 다시금 도전을 받고 있다"며 "오늘 저의 테헤란 방문은 양국 간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한 대한민국의 의지 표명임을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방문을 시작으로 양국 간 고위급 교류가 계속 이어져 양국관계 발전의 기반을 마련해나가야 한다며 "그런 의미에서 자한기리 부통령의 방한을 추천했다"고 밝혔다.
정 총리는 "최근 이란 핵 합의를 둘러싼 관계국과의 대화가 건설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만큼, 한-이란 관계 재도약을 선제적으로 준비해나가는 건 이란 국민과 한국 국민의 행복과 번영을 위해 필요하고 중요하다"면서 "우선 양국은 현재 시점에서 추진 가능한 협력 분야를 점검하고 이를 더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우선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해 협력을 더 강화하기로 했다. 정 총리는 "그간 한국과 이란이 워킹그룹을 통해 진행해온 의약품 및 의료기기 등 인도적 교역이 확대돼 이란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며 "양국은 한국과 이란 국민 간 우호증진에 많은 기여를 했으나, 지금은 중단된 학술교류사업, 직업훈련 및 의료분야 인적교류 확대 등도 다시금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제재 대상인 이란 중앙은행이 관여되더라도 인도적 물품에 한해선 거래가 가능하도록 라이선스를 주고 있다.
또 "향후 이란 핵 합의 복원과 완전한 이행 시 양국 간 협력이 신속하고 전면적으로 확대되도록 함께 준비해 나가기로 했다"며 "양국은 경제협력 모멘텀을 이어나가기 위해 '경제협력 점검 협의체'를 설치하는 데 합의했다"고 했다. 양국은 이란 핵 합의가 체결되면 즉각적으로 이전보다 더 활발한 경제교류를 할 수 있도록 협의체를 통해 가능한 사업을 검토한다는 구상이다.
정 총리는 이란과의 관계 발전을 강조하는 가운데에서도 '한국케미호' 억류 사태와 같이 우리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 재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호르무즈 해협의 안정과 평화가 항행의 안전과 에너지 안보에 결정적인 만큼, 해협 내 항행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이란의 선박 억류 문제를 따로 언급하지 않는 것으로 이번 사태를 일단락 짓는 대신, 이란 정부도 우리와 상응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요구한 셈이다.
아울러 정 총리는 "우리 정부는 이란 핵합의 관련 당사국 간 건설적 대화의 진전을 측면 지원할 용의가 있다. 이란의 원화자금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관련국과 가능한 협력을 강화해 나가려고 한다"며 "이번 방문이 양국 우호관계와 양국 국민의 오랜 우정을 이어나가는 디딤돌이 됐다"고 평가했다.
한편 정 총리와 자한기리 부통령은 기자회견 이후 오후 8시부터 1시간 동안 만찬까지 함께했다. 자한기리 부통령은 만찬하는 동안 정 총리에게 한국의 코로나19 대응 등을 질문하고, 정 총리의 답변을 주의 깊게 들었다고 한다.
이란은 지난달 8000명대 안팎을 유지하던 코로나19 일일 확진자가 이달 들어 급증해 2만명을 넘나들면서 방역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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