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남성과 40대 남성은 왜 대척점에 섰을까 [데스크픽]

김수미 2021. 4. 12.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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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냐, 진보냐가 아니라 민주당을 심판하기 위해 가장 가능성 있는 후보를 찍었다."(27세 남성)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뽑았다. '내로남불'의 원조 국민의힘을 뽑아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46세 남성)
사진=뉴스1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20대 남성과 40대 남성이 대척점에 섰다.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 20대이하 남성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에게 연령별·성별을 통틀어 최고치인 72.5%의 지지율를 보였고, 40대 남성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유일하게 과반이 넘는 51.3%의 표를 던졌다. 20대 남성은 국민의힘 승리의 주역으로 떠올랐고, 40대 남성은 문재인정부의 콘크리트 지지층임을 재확인한 것이다. 

가정에선 삼촌과 조카, 대학에선 교수와 제자, 직장에선 막내 직원과 차·부장 등 중간관리자 관계인 20대 남성과 40대 남성 사이에서 왜 이렇게 큰 괴리가 나타났을까. 전문가들은 두 세대의 시대정신과 경제적 위치가 정치적 선택을 갈랐다고 분석한다.

◆‘분노’의 20대 男 “보수가 아니다. 우리의 힘을 봐라” 

20대 남성들은 이번 선거 최대 화제이자, 내년 대선판을 뒤흔들 막강한 스윙보터로 떠올랐다. 지난해 총선까지만해도 민주당을 지지했던 이들이었는데, 국민의힘을 선택한 비율이 전통적 보수층인 60대이상(70.2%)를 넘어선 것은 실로 이례적이다. 일각에서는 극심한 취업난과 부동산 폭등 등으로 인해 20대 남성들이 보수화됐다고 평가하지만, 그들은 단호히 부정한다. 

대학생 강모(27)씨는 “20대에겐 진보냐 보수냐가 아니라 정의로운가 아닌가가 중요하다”며 “성범죄를 저지르고 당헌까지 바꿔서 후보를 내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고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오세훈 시장이 좋아서가 아니라 민주당을 심판하기 위해 가장 가능성 있는 후보를 찍은 것”이라며 “안철수가 나왔으면 안철수 찍은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치적 이념보다는 공정과 정의라는 가치가 선택의 기준이었고, 그 잣대로 민주당을 심판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마냥 웃을 수만도 없는 이유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20대는 진보, 보수를 떠나 항상 현존하는 권력에 반대해왔다. 시대를 막론하고 권력의 행태에 가장 민감한 세대”라고 설명했다.

결국 20대 남성들을 움직인 것은 공정, 정의, 젠더 이슈에서 비롯된 분노의 에너지다. 극심한 취업난 속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 입시부정 의혹과 LH 임직원 비리를 보며 현 정부가 외치던 ‘공정성’이 무너졌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태에 대한 민주당의 태도를 보며 ‘정의’가 사라졌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한 유권자가 투표를 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20대 남성의 분노에는 젠더 문제도 깊이 자리했다”면서 “페미니즘 정부를 자처하는 문재인정부가 남녀평등을 실현한다며 여성들에게만 혜택과 지원을 하고 자신들은 역차별을 당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한 20대 남성은 “남녀차별은 기성세대가 했는데 우리가 교정 대상이 된 것 같아 억울하고, 때로는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정서가 강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취업, 젠더 이슈에서 소외됐던 20대 남성들이 자신들의 힘을 깨달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A대학 에브리타임 게시판에 한 학생은 “스윙보터가 돼야 한다. 이번 투표 때 20대 남성이 확 돌아서니까 다들 주목하고 관심을 갖는다”면서 “향후 선거에도 골수 지지를 자제하고 최대한 우리를 위한 후보들에게 표를 주자”고 주장했다.

◆‘노무현 키즈’ 40대 男 “보수야당의 과거 똑똑히 기억해서 못 뽑아”

이번 선거에서 20대 여성도 박 후보에게 더 많은 표를 줬지만, 과반을 넘어선 것은 40대 남성 뿐이다. 이 때문에 ‘40대 고립론’, ‘왕따 40대’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1970∼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대학을 다닌 지금의 40대들도 90년대에는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신세대라는 의미의 ‘X세대’로 불렸다. 기성세대와 주류에 반항하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와 패션을 향유하며 청소년기를 보내고, 2002년 노무현 돌풍을 만들어 대선 승리를 직접 경험한 ‘노무현 키즈’다. 20∼40대에는 효순이 미선이 사건(2002년), 광우병 사태(2008년), 세월호 사건(2014년), 국정농단 사태(2016년)로 ‘광장 정치’와 ‘촛불 집회’의 중심에 섰다.

단 한번도 보수야당을 찍은 적이 없다는 회사원 김모(46)씨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관련 여당이 보인 행태를 보면 사실 표를 주고 싶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약자에게 가장 관심을 갖고 노력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기 때문에 남은 임기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여당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최창렬 교수는 “40대 남성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추억이 강렬하고 개혁에 대한 열망이 여전하다”면서 “20·30세대와 달리 경제적 안정을 이뤘고 문재인정부 들어 출산, 육아, 부동산 혜택 등을 일부 보기도 했지만, 경제적 혜택보다는 두 대통령에 대한 향수와 개혁에 대한 막연한 이상이 더 크다”고 분석했다. 
故 김대중 대통령(왼쪽)과 故 노무현 대통령. 세계일보 자료사진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탈권위 문화에 열광하다가 10년간 집권한 보수정부의 권위주의와 비리 사건을 경험하며 새겨진 반감도 뿌리 깊다. 회사원 강모(44)씨는 “민주당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성추문, 차떼기당, 내로남불의 원조는 국민의힘(전신)이었다. 그들이 얼마나 썩었었는지 잊어선 안된다”면서 “비리와 부패가 정부·여당만의 문제인 것처럼 얘기하는데 국민의힘이 정권을 잡으면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40대 직장인들은 취업난에 시달리거나 내 집 마련이 어려운 20·30세대, 자녀의 취업과 부동산 세금 문제로 부담이 큰 50·60세대에 비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돼 정권에 대한 불만이 덜하다는 분석도 있다. 

B대학 게시판에는 “20대 여자들은 이해가 되는데 40대 남자들은 왜 민주당만 찍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글에 “집 산 놈들이라 그렇다”는 댓글이 붙기도 했다.

신율 교수는 “5060은 집을 갖고 있지만 부동산 세금과 건보료 폭탄을 맞는데다 자식들의 취업과 집 값 걱정도 크다”며 “반면 40대 남성들은 대부분 회사의 중간관리자로 구조조정 위기에 비껴 있고, 집을 가진 사람도 있어 경제적으로 안정된 편”이라고 비교했다. 이어 “IMF 때 사회생활을 시작해 경제위기를 경험해 본 상태에서 보수당에 대한 안좋은 기억이 강하게 남아 국민의힘을 선택할 수 없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수미·구현모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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