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남성과 40대 남성은 왜 대척점에 섰을까 [데스크픽]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뽑았다. '내로남불'의 원조 국민의힘을 뽑아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46세 남성)
가정에선 삼촌과 조카, 대학에선 교수와 제자, 직장에선 막내 직원과 차·부장 등 중간관리자 관계인 20대 남성과 40대 남성 사이에서 왜 이렇게 큰 괴리가 나타났을까. 전문가들은 두 세대의 시대정신과 경제적 위치가 정치적 선택을 갈랐다고 분석한다.
◆‘분노’의 20대 男 “보수가 아니다. 우리의 힘을 봐라”
20대 남성들은 이번 선거 최대 화제이자, 내년 대선판을 뒤흔들 막강한 스윙보터로 떠올랐다. 지난해 총선까지만해도 민주당을 지지했던 이들이었는데, 국민의힘을 선택한 비율이 전통적 보수층인 60대이상(70.2%)를 넘어선 것은 실로 이례적이다. 일각에서는 극심한 취업난과 부동산 폭등 등으로 인해 20대 남성들이 보수화됐다고 평가하지만, 그들은 단호히 부정한다.
대학생 강모(27)씨는 “20대에겐 진보냐 보수냐가 아니라 정의로운가 아닌가가 중요하다”며 “성범죄를 저지르고 당헌까지 바꿔서 후보를 내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고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오세훈 시장이 좋아서가 아니라 민주당을 심판하기 위해 가장 가능성 있는 후보를 찍은 것”이라며 “안철수가 나왔으면 안철수 찍은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치적 이념보다는 공정과 정의라는 가치가 선택의 기준이었고, 그 잣대로 민주당을 심판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마냥 웃을 수만도 없는 이유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20대는 진보, 보수를 떠나 항상 현존하는 권력에 반대해왔다. 시대를 막론하고 권력의 행태에 가장 민감한 세대”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취업, 젠더 이슈에서 소외됐던 20대 남성들이 자신들의 힘을 깨달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A대학 에브리타임 게시판에 한 학생은 “스윙보터가 돼야 한다. 이번 투표 때 20대 남성이 확 돌아서니까 다들 주목하고 관심을 갖는다”면서 “향후 선거에도 골수 지지를 자제하고 최대한 우리를 위한 후보들에게 표를 주자”고 주장했다.
◆‘노무현 키즈’ 40대 男 “보수야당의 과거 똑똑히 기억해서 못 뽑아”
이번 선거에서 20대 여성도 박 후보에게 더 많은 표를 줬지만, 과반을 넘어선 것은 40대 남성 뿐이다. 이 때문에 ‘40대 고립론’, ‘왕따 40대’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1970∼8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대학을 다닌 지금의 40대들도 90년대에는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신세대라는 의미의 ‘X세대’로 불렸다. 기성세대와 주류에 반항하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와 패션을 향유하며 청소년기를 보내고, 2002년 노무현 돌풍을 만들어 대선 승리를 직접 경험한 ‘노무현 키즈’다. 20∼40대에는 효순이 미선이 사건(2002년), 광우병 사태(2008년), 세월호 사건(2014년), 국정농단 사태(2016년)로 ‘광장 정치’와 ‘촛불 집회’의 중심에 섰다.
단 한번도 보수야당을 찍은 적이 없다는 회사원 김모(46)씨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관련 여당이 보인 행태를 보면 사실 표를 주고 싶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약자에게 가장 관심을 갖고 노력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기 때문에 남은 임기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여당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40대 직장인들은 취업난에 시달리거나 내 집 마련이 어려운 20·30세대, 자녀의 취업과 부동산 세금 문제로 부담이 큰 50·60세대에 비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돼 정권에 대한 불만이 덜하다는 분석도 있다.
B대학 게시판에는 “20대 여자들은 이해가 되는데 40대 남자들은 왜 민주당만 찍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글에 “집 산 놈들이라 그렇다”는 댓글이 붙기도 했다.
신율 교수는 “5060은 집을 갖고 있지만 부동산 세금과 건보료 폭탄을 맞는데다 자식들의 취업과 집 값 걱정도 크다”며 “반면 40대 남성들은 대부분 회사의 중간관리자로 구조조정 위기에 비껴 있고, 집을 가진 사람도 있어 경제적으로 안정된 편”이라고 비교했다. 이어 “IMF 때 사회생활을 시작해 경제위기를 경험해 본 상태에서 보수당에 대한 안좋은 기억이 강하게 남아 국민의힘을 선택할 수 없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수미·구현모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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