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법인세 최저세율 환영하는 정부의 속내는?..법인세 감면 축소 가능성도
美 주도 글로벌 법인세최저세율 도입 논의 가속화
홍남기 경제부총리 "논의 적극 참여할 것"
2026년 韓 국가부채비율 GDP 70% 전망 …향후 증세카드 활용?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법인세 최저세율 도입 논의가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이 구글·페이스북 등 자국 정보통신(IT)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그간 반대해온 디지털세의 일환으로 이를 추진하며 주요 국가 간의 합의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각국이 일정 수준 이상의 법인세를 걷어 다국적 기업의 조세 회피를 막고 더 공정하게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는 논리다.
우리 정부는 국제 논의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국익을 관철하겠다는 입장이다. 한국의 법인세율이 세계 9위 수준으로 높은 편이기 때문에 외자 유출 등의 불이익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에서다. 아일랜드나 헝가리처럼 낮은 법인세율로 해외 기업 투자를 유치하는 국가와 우리나라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글로벌 법인세 최저세율 도입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국가채무에 대비하기 위한 ‘증세 카드’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가 향후 이를 핑계로 소득세 등에 비해 조세저항이 비교적 작은 법인세율을 상향할 수 있다는 것이다.
◇美 주도 글로벌 법인세 최저세율 도입 논의 가속화
지난 8일 우리나라를 포함한 G20 회원국은 글로벌 법인세 최저세율 도입과 디지털세 부과에 대한 해법을 연내 마련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간 디지털세는 구글·페이스북 등 자국 거대 정보기술(IT) 기업을 보호하려는 미국의 반대로 지지부진했지만 미국이 법인세 인하 경쟁을 막을 글로벌 법인세 최저세율 도입을 위해 입장을 선회하면서 급물살을 타게 됐다.
조 바이든 정부는 최근 2조2500억 달러(2500조 원) 규모의 인프라 개선 경기부양안을 내놓으며 재원 조성 방안으로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행 21%에서 28%로 인상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지난주 대외경제 관련 연설에서 "다국적 기업이 공정하게 경쟁하도록 해 세계 경제가 더 번창할 수 있도록 세계 최저 세율을 함께 도입할 수 있다"면서 각국 최저 법인세율을 21%로 설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자국 기업들이 법인세가 적은 해외로 이탈하는 것을 막으려는 목적으로 각국에 법인세 하한선을 도입하는 ‘국제 조세 혁명’에 나선 것이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등이 수년 전부터 논의하고 있는 디지털세 논의의 연장선이다. 구글 등 다국적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 돈을 벌어들이는 국가에 물리적 사업장을 두지 않아 세금을 물리기 어려운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다. 특히 특허권 등 무형 자산 소유권을 저세율 국가 자회사에 둬 조세를 회피하는 경우다.
'매출이 발생한 국가에서 과세해야 한다'는 논리를 중심으로 새로운 이익 배분 기준을 만드는 것이 이 논의의 핵심이다. 이것을 '필라(Pillar) 1'이라고 부른다. 이로써 해결할 수 없는 조세 회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필라 2)의 중점 사안이 '세계 최저한 세율 도입'이다. 국외 소득에 일정 수준 이상의 세율을 매기자는 것으로, 미국 행정부는 이 필라 2에서 국제적으로 논의되던 수준(12.5%)보다 높은 최저 세율을 적용하자고 나섰다. 그간 디지털세 도입을 주장해오던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 환영하고 있고, IMF도 동의 의사를 밝혔다.
◇정부 "논의 적극 참여해 국익 관철"…속내는 ‘증세’ 카드?
경제 규모 10위권인 한국도 이 같은 논의에서 빠져있지 않다. 정부는 국제 논의 과정에서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합의안에 우리 정부 이익을 최대한 관철하겠다는 입장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디지털세 과세 방안 마련과 관련한 국제 사회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한국 기업 등의 피해를 우려하고 있지만, 정부는 불이익이 더 크지는 않다는 입장이다. 우선 한국은 현행 법인세율도 높은 편에 속한다. 우선 최저한 세율이 대기업의 경우 17%(과세 표준 1000억원 초과 기준)다. 최고 세율은 27.5%로 세계 9위 수준이다. 때문에 낮은 법인세율로 해외 투자를 유치하는 아일랜드나 헝가리 같은 국가와는 달리 외자 유출을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또 글로벌 IT 기업 등 다국적 기업을 타겟으로 해 반도체나 차, 백색가전 등 제조업 위주의 산업구조인 우리가 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글로벌 법인세 최저세율 도입을 두고 정부가 이를 향후 증세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일부에서 나온다. 미국이 자국 법인세를 21%에서 28%로 올리겠다고 나선 것 처럼, 한국 역시 하한선 보다 법인세를 더 상향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우리나라의 법인세 명목세율은 25%로 높은편이지만, 지난 2019년 기준 과표구간 5000억원 초과 기업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18.5%에 불과했다. 과표구간이 더 낮은 1000억∼5000억원 기업의 실효세율은 20.6%, 500억∼1000억원 구간 기업 20.3%, 200억~500억원 구간 기업 19.5%로, 모두 5천억원 초과 기업보다 더 높았다. 투자에 따른 각종 공제나 감면 혜택에 따른 것이다. 명목 세율은 미국(21%)보다 높지만 최저한세율은 그렇지 않다.
최근 국가부채비율이 2026년 GDP 대비 70%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IMF의 전망이 나온 가운데, 기재부로서는 향후 지출구조조정뿐 아니라 증세가 필수인 상황이다. 법인세는 비교적 조세저항이 적은 편이다. 기업의 실질적인 법인세 부담을 결정하는 법인세 최저한세율을 글로벌 법인세 최저세율 올리는 방식으로 증세를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가 제공하는 세액 공제나 감면 혜택을 글로벌 최저세율을 핑계로 없앨 수 있어 실질적인 증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 기재부 "법인세 인상, 기업 경쟁력 등 감안해 신중 검토"
기재부는 글로벌 법인세최저세율 등 디지털세 논의는 다국적 기업의 조세회피를 막는 것이 본질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국내 법인세 인상과는 별개라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디지털세는 다국적 기업의 조세 회피를 막기 위한 수단으로 본질적으로 국내 법인세 인상의 수단이 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국의 제안대로 다국적 기업이 법인세를 매출 발생국에 내게 되면 국내 대기업이나 국내에 진출한 외국 대기업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국내 주요 기업의 세금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 정부는 향후 글로벌 법인세율 하한세와 관련한 대상 업종, 매출액, 소득 인정 방식 등 다양한 쟁점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또 미국의 법인세 인상 흐름에 맞춰 제시되는 국내 법인세 인상 가능성에 대해서도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억원 기재부 1차관은 지난 7일 "법인세율 인상 관련해서는 기업 경쟁력 및 투자 영향 등을 감안하여 신중히 검토할 사항이라는 원칙론적인 말씀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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