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패권 경쟁 속 한국 "초월적 외교"..현실성 있을까
전문가 "초월적 외교, 韓 '단일 행위자'로서는 불가능"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한국이 미중패권 경쟁의 심화를 막는 '중재역'을 하며 국익을 챙기는 이른바 '초월적 외교'가 실현 가능할지 여부를 놓고 관심이 집중된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을 지낸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이 '초월적 외교' 주장과 함께 한국의 미국 편들기에 대해 경계심을 드러내면서 외교가의 관심을 끌었다.
문 이사장은 전날인 11일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중 대립이 격화될수록 한국의 선택지는 제한되기 때문에 대립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며 "나는 이것을 초월적 외교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문 이사장은 또한 미중 사이 어느 진영에 속하는 것이 아닌 "다자 협력과 지역 통합의 새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며 이것이 미중 충돌을 막고 우리 외교의 운신의 폭을 확보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미국 편에 서게 되면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담보하기 어렵게 된다"고 전망하며 북중 밀월 심화와 러시아라는 변수도 추가돼 '북중러 동맹'이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재인 정부는 미중패권 경쟁 속 '전략적 모호성'을 취하고 있다. 이는 지난 2월까지 문 대통령의 외교·안보특보 직을 지낸 문 이사장의 목소리가 상당부분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 이사장의 초월적 외교는 사실상 지금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과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미중 양자택일이 아닌 국익에 기반을 두고 상황에 따른 대처를 하겠다는 것인데, 이를 두고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외교가의 지적이 많다.
대표적으로 바이든 행정부의 대(對) 중국 견제 전선 구축에 있어 핵심 고리 역할을 하고 있는 '쿼드'(Quad.미국 일본 인도 호주 참여 협의체)를 놓고 미국의 참여요구가 거센 상황이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11일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 2일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에서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서훈 국가안보실장에게 한국의 쿼드 참여를 강하게 요구했지만 이에 대해 서 실장은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만 우리 입장도 이해해 달라"며 호소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서 실장은 당시 회의에서 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간 정상회담 일정 확정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 미국 측은 "검토하고 있다"고 말하는 데 그쳤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는 "사실이 아닌바 유감을 표명한다"며 "(요미우리 신문의 소식통) 인용은 전혀 부정확하며 기사는 협의 내용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반박했다.
정부는 쿼드에 대한 참여국들의 공식참여 요구는 받은 적이 없다며 투명성·개방성·포용성·국제규범 준수 등의 조건이 부합될 경우 "어떤 협의체와도 협력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최근에는 쿼드 참여국들과 기후변화 대응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등의 분야에서 협력할 수 있다며 조금 더 '유연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기후변화와 코로나19 대응은 바이든 행정부도 중국과 힘겨루기보다는 글로벌 차원에서 협력하겠다는 입장. 우리 정부가 반대할 사안도 아닌 이슈로 쿼드 국가들과의 조건부 협력은 가능하다는 정도로는 '초월적 외교'를 펼친다고 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미중 사이에서 우리 정부의 모호한 태도가 '한미동맹 불협화음'으로 확대 될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초월적 외교와 관련해 "한국이 '단일 행위자'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초월적 외교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한국뿐만 아니라 많은 국가들이 우리와 같은 입장을 가지고 함께 독자적인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미중 사이에서 양측을 대결보다는 협력의 구도로 끌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그러면서 "이는 미국, 중국과 비견될 만한 세력이 있어야 가능한 것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며 "오히려 그러한 역할을 할 만한 국가들 대부분은 미국과 같이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이어 "초월적 외교에서 간과된 부분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질서"라며 "미중 사이에서 단순히 국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라면 국익의 기본 개념은 무엇인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정체성은 어디갔는가라고 되물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n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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