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워치]배출권 리스크 확대, 대비하고 계신가요?
배출권 규제 강화 추세..K-RE100 참여로 부담 완화 가능
올해부터 각 기업의 재무제표를 볼 때 유심히 살펴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온실가스 배출권입니다. 우리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도를 도입한 시기는 2015년 1월입니다. 5년이나 지난 2021년에 배출권을 특별히 주의해야 할 이유가 뭘까요.
올해부터 기업들이 돈을 주고 사야 할 배출권의 규모가 크게 늘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으로 기업을 평가하는 기준은 실적입니다. '돈 잘 벌자'가 기업의 가장 큰 관심사입니다. 매출과 영업이익, 당기순익 3박자가 최고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기업의 경영환경은 크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당장의 수익을 다소 포기하더라도 기후변화를 막아야 한다는 데에 전 세계 정부와 기업들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기후변화의 가장 큰 주범은 온실가스입니다. 온실가스의 무분별한 배출을 막기 위해 각국이 온실가스 배출권을 도입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는 결국 일종의 규제입니다. 거래제를 이용해 큰돈을 버는 기업도 있지만 지출이 발생하는 기업이 더 많습니다. 올해는 돈을 더 내야 할 기업들이 크게 늘 전망입니다. 이제 온실가스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실적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는 시대입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온실가스 배출권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겠죠?
# 할당량보다 남으면 팔고 모자라면 산다
온실가스면 온실가스지 여기에 덧붙인 '배출권'은 뭘까요. 온실가스에 배출권이란 개념이 생기기 위해선 우선 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정부가 각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 한도를 정해주는 것입니다.
한도를 정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각 기업이 그동안 얼마나 온실가스를 배출해 왔는지를 살펴보고 그에 따라 정하는 방법(기준인정방식)도 있고, 한 국가가 배출할 수 있는 배출권 량을 국제적인 기구에서 정하고 이를 그 나라 기업이 할당받는 방식(총량제한방식)도 있습니다. 우리는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 제46조에 따라 총량제한방식을 도입했습니다.
국가의 전체 목표 배출량을 정한 정부는 각 기업에 배출을 허용하는 상한을 각각 배정합니다. 이게 바로 배출권입니다. 정부가 정해준 상한만큼은 배출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긴 겁니다.
만약 정부의 상한보다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면 배출권이 남습니다. 만약 상한보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면 배출권이 부족합니다. 이렇게 수요와 공급이 생깁니다. 시장이 필요하겠네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도가 이렇게 생겼습니다.
# 할당은 공짜가 아냐…할당 자체도 점차 줄여
그렇다면 배출권 제도가 올해부터 특히 중요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처음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한 것은 지난 2015년입니다. 이때부터 2017년까지는 제1차 계획기간으로 배출권을 무상으로 할당했습니다. 덕분에 온실가스를 할당받은 만큼만 배출하는 기업들은 비용이 들지 않았습니다.
이후 2018~2020년 제2차 계획기간에는 업종에 따라 배출권의 3%는 유상으로 할당했습니다. 유상할당은 기업 간의 거래가 아니라 정부를 통한 경매로 이뤄집니다.
예를 들어 100 만큼 배출권을 할당받으면 배출량에서 3만큼 줄여서 전체 배출권에서 상계하거나 3만큼 배출권을 경매를 통해 사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올해부터는 제3차 계획기간입니다. 올해부터 2023년까지 정부가 할당한 배출권은 총 5조8900만톤입니다. 이 가운데 10%를 유상으로 할당합니다. 유상할당업종도 확대됐습니다. 고무제품 제조업과 자동차용 엔진 및 자동차 제조업, 자동차 신품 부품 제조업, 담배 제조업, 증기 냉온수 및 공기조절 공급업, 의약품 제조업 등이 올해부터 유상할당업종으로 추가됐습니다. 게다가 2024년부터는 총 할당량을 5조6700만톤으로 줄입니다.
할당량도 줄고 줄어든 할당량조차 돈을 주고 사와야 하는 비중이 높아졌습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점차 줄이겠다는 제도의 도입목적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조치지만 하지만 기업입장에서는 부담입니다.
# 현대제철·쌍용차 등 배출부채가 실적 짓눌러
부담 수준이 얼마나 될까요?
대표적인 온실가스 배출업체 중 하나인 현대제철을 살펴봤습니다. 지난해 사업보고서를 보니 충당부채 세부내역에 1571억원의 '배출부채'가 있습니다. 풀어 쓰면 '온실가스배출 충당부채'입니다. 온실가스 배출권이 부족해서 사야 할 부분을 회계에 미리 반영(충당부채)한 것입니다.
현대제철의 지난해 영업이익 규모는 730억원입니다. 온실가스 배출권 구입을 위해 지출해야 할 비용이 영업이익의 두 배가 넘습니다. 올해부터는 유상할당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배출부채를 줄이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최근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갈림길에 선 쌍용자동차를 볼까요.
쌍용차 평택공장의 지난해 가동률 평균은 66%로 전년 84%보다 18%포인트나 줄었습니다. 공장을 덜 돌렸다는 얘기입니다. 그 결과 영업손실 규모가 4493억원으로 전년보다 1600억원이나 증가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쌍용차는 지난해 684억원 규모의 배출부채를 인식했습니다. 공장을 덜 돌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였을 테지만 배출부채 규모가 상당합니다. 올해부터 유상할당규모가 커지면 배출부채 규모도 더 커집니다. '우는 아이 뺨을 친다'는 속담이 떠오릅니다.
이처럼 배출권의 유상할당 확대는 기업 입장에서 부담이 큽니다. 유상할당이 3%일 때도 배출권을 확보하지 못해 충당부채가 생기는 기업이 있는데, 10%로 늘어나면 숨 막히는 기업이 많겠지요.
# 배출권 규제는 강화 추세…"더 자세하게 공시하라"
하지만 각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권 내용을 파악하기는 사실 쉽지 않습니다. 예로 든 기업은 재무제표에 '배출부채'가 제대로 공시된 경우입니다. 상당수의 기업들은 온실가스 관련 내용을 제대로 공시하지 않습니다.
상장법인은 국제회계기준(IFRS)에 따라 기업의 회계를 처리합니다. 하지만 국제회계처리기준에는 배출권을 어떻게 회계처리하는지 기준이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기업은 일반회계는 국제회계기준을 쓰더라도 배출권 내용은 일반기업회계기준(K-GAAP)를 씁니다.
일반기업회계기준은 배출권에 대해 ①정부로부터 무상할당받은 배출권 수량 ②기업이 보유한 배출권 수량의 증감내역 ③배출권 자산‧부채금액의 증감내역 ④배출량 추정치 등 총 네 가지 주석사항을 쓰라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주석을 제대로 기재하지 않았습니다. 금감원에 따르면 주석사항을 모두 작성한 곳은 배출권 상위 30개사 중 6곳에 불과합니다. 주석사항은 요구사항이긴 하지만 강제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동안 배출권 무상할당 비중이 높아 실적에 주는 영향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유상할당이 늘어나면서 배출권 정보의 중요성은 점차 커질 전망입니다. 금감원도 배출권 관련 공시의 모범사례를 만들어 기업이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에 나설 예정입니다.
# 배출량 줄이거나 K-RE100 참여하거나
배출권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기업들은 골치가 아픕니다. 더 많은 배출권을 사들여야 하고 이를 더 자세하게 공시해야 합니다. 실적에는 악영향을 주는 데 당국은 규제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배출권 유상할당 확대는 필요합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은 사실 정책적으로 의도한 것입니다. 배출권에 대한 부담이 없다면 온실가스를 줄이려는 기업도 없습니다.
실제로 유상할당이 늘더라도 온실가스 배출량을 잘 줄인 기업이라면 부담이 크지 않습니다. 오히려 남는 배출권을 더 좋은 가격에 팔 확률이 커집니다.
배출권 확보에 숨통이 트일만한 정책도 있습니다. 바로 한국형 RE100(K-RE100)입니다.
RE100이란 사용하는 전기의 100%를 재생에너지를 통해 조달하자는 국제적인 캠페인입니다. RE100에 참여하는 기업을 위해 정부는 K-RE100 제도를 통해 RE100 인증을 받을 수 있는 다섯 가지 이행수단을 만들었습니다. 이 중 '녹색 프리미엄'을 제외한 네 가지 이행수단은 온실가스 감축과 연계해 운영합니다. 돈 주고 배출권을 사 오지 않더라도 K-RE100에 참여하면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인 것으로 인정해준다는 뜻입니다.
우선 한국전력의 중개를 통해 재생에너지 사업자와 전기계약을 맺어 재생에너지 전기를 직접 받는 '제3자 PPA(전력거래계약)'이 있습니다. 재생에너지 발전업체에 지분투자를 해도 온실가스를 줄였다고 인정합니다. 사업장에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를 직접 설치해 재생에너지 전기를 만들어 사용해도 됩니다. 재생에너지 발전업체가 판매하는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정서(REC)를 구입하는 것도 온실가스 감축실적으로 인정합니다.
기존에는 배출권이 필요하면 배출권 거래소를 통해 배출권을 사거나 온실가스 배출량을 직접 줄이는 방법 외에는 없었지만, 이제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로 이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채찍은 아프지만 잘 보니 옆에 당근도 놓여 있습니다. 멈춰있을 수는 없습니다. 채찍질만 맞고 아파하며 달려 나갈지, 당근도 먹고 힘을 내볼지는 기업의 선택입니다.
강현창 (khc@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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