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닉에 빠진 미얀마, 은행 신남방 전략 '올스톱'

이남의 기자 2021. 4. 12. 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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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점포 비상상황 매뉴얼 가동, 전산 마비 대응
미얀마 양곤의 한 거리에서 시민들이 반쿠데타 시위를 벌이는 모습. /사진=로이터
신남방 전략 전초기지로 불리던 미얀마가 쿠데타 사태로 충격에 빠졌다. 미얀마 엑소더스(대탈출)가 현실화되면서 국내 은행의 신남방 정책 손질도 불가피해졌다.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 등 5대 은행은 미얀마 현지 영업이 사실상 정지됐다. 사업 확장은 답보상태다. 이들은 미얀마 현지 직원들에게 재택근무를 지시했고 일부는 주재원 철수를 검토하고 있다.



411명 교민 탈출, 미얀마 영업 중단


미얀마는 지난 2월1일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후 교민 중 ▲2월 75명 ▲3월 293명 ▲4월 43명 등 총 411명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 가운데 271명은 지난달 15일 양곤 일부 지역에 계엄령이 선포된 후 미얀마를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외교부는 지난 3일 미얀마 모든 지역의 여행경보를 3단계(철수권고)로 상향 조정했다. 미얀마로 여행을 취소·연기하고 체류 중이라도 긴요한 일이 아닌 한 철수할 것을 권고했다. 정부의 여행 경보는 남색경보(여행유의)-황색경보(여행자제)-적색경보(철수권고)-흑색경보(여행금지) 등 4단계로 운영된다.
금융권은 외교부의 정책에 따라 비상상황 매뉴얼을 가동하고 최소 운용인력을 제외한 모든 직원을 재택근무로 전환했다. 또 영업시간을 단축해 운영하는 등 미얀마 진출 기업 지원을 위한 최소한의 업무만 진행하고 있다.

현재 미얀마에 진출한 국내 금융회사는 ▲은행 9곳 ▲소액대출(MFI) 15곳 ▲카드 2곳 ▲보험 2곳 등 총 28개사다.
미얀마 진출이 가장 활발한 KB금융그룹은 모두 24개 법인·지점·사무소 등을 두고 있다.

KB국민은행은 현지 은행법인과 소액대출회사(MFI)인 ‘KB미얀마마이크로파이낸스’ 및 양곤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KB카드 사무소 한 곳도 양곤에 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미얀마 직원과 비상연락망을 통해 수시로 안전을 점검하고 미얀마 현지와 핫라인을 구축해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며 “본국 직원 철수 여부는 외교부의 방침에 따라 결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신한금융그룹은 신한은행 양곤 지점 1개를 2016년부터 운영하며 신한카드의 25개 지점도 영업 중이다. 양곤 지점에는 한국인 3명과 현지인 36명, 신한카드 25개 지점에 한국인 2명과 현지인 425명이 일하고 있다. 우리금융지주는 2015년 미얀마에 우리은행이 지분 100%를 가진 ‘우리 파이낸스 미얀마’ 법인을 세워 운영하고 있다. 현재 MFI 법인 41개 점포에서 한국인 4명과 현지인 502명이 근무하고 있다.

하나금융그룹 계열의 하나캐피탈도 미얀마에 소액대출회사 ‘하나마이크로파이낸스’를 운영하고 있다. 직원 수는 한국인 2명과 현지인 1519명 등 1521명에 이른다. 농협은행의 양곤 사무소(현지 직원 1명)와 소액대출회사(한국인 3명·현지인 369명)도 현재 미얀마에서 영업 중이다.

보험업계에서는 DB손해보험이 현지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직원 1명의 일시 귀국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1월 양곤에 사무소를 연 교보생명은 이미 앞서 지난달 말 사무소장을 불러들였다. 금융권 관계자는 “미얀마 점포 폐쇄나 철수를 검토하지 않지만 상황이 엄중한 만큼 세부적 대응계획을 마련하고 있다”며 “대사관 철수 권고 등에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떠나면 못 돌아와… 미얀마 철수 딜레마


은행권은 대안 찾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미얀마 군부가 통신망마저 통제하면서 금융회사의 해외진출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현지에 진출한 금융회사는 일부 직원만 교대로 영업점에 출근하는 등 정상적인 영업이 불가능한 상태다.

KB국민은행은 KB미얀마마이크로파이낸스 법인의 신규 지점 오픈도 무기한 연기됐다. 올 1분기 에야와디와 바고 지역에 MFI 지점을 새로 열 계획이었으나 무산됐다.

MFI는 저신용·저담보로 은행 대출이 어려운 금융소비자에 소액대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사업이다. 국민 소득이 낮은 국가에서 민간경제 활성화와 빈민구제 수단으로 활용돼 동남아시장 진출 전략으로 꼽힌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미얀마 정국을 면밀히 살피고 현지 정책에 대응하며 큰 전략 방향은 유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국내 금융사가 미얀마 철수를 결정할 경우 재진입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현지 금융당국으로부터 허가를 얻거나 유지해야 하는 금융업 특성상 점포 폐쇄나 직원 철수는 사업상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지난해 미얀마 정부는 KDB산업은행·기업은행·KB국민은행 등 3곳에 지점 설립 예비인가를 해줬으나 미국이나 유럽계 은행은 예비인가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미얀마 정부가 전 군사 정권과 연계를 맺지 않은 국가의 금융기관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현재 유럽연합(EU)를 비롯해 미국·영국·캐나다 등 서방 국가는 미얀마 군부에 대한 제재를 확대하며 사태 해결을 적극 촉구하고 있다.

미얀마 중앙은행의 입김도 거세다. 국내 금융기관은 군부 쿠데타가 터진 직후 영업을 중단했지만 미얀마 중앙은행의 정상 근무 지시에 따라 최소 인력으로 영업을 이어왔다. 미얀마 중앙은행의 무리한 영업방침이 신한은행 현지인 직원 사망 사태의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미얀마에 진출한 한 금융사 관계자는 “쿠데타가 터진 후 영업을 중단하려고 했으나 중앙은행의 정상 영업 방침에 피해가 커졌다”며 “은행 직원들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중앙은행에 협조를 요청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미얀마에 진출한 금융사가 직접 철수를 결정하는 대신 금융당국이 안전을 위해 ‘직접 철수’를 명령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미얀마 금융당국이 재진입이 어려울 수 있다며 금융회사를 압박하는 것에 대비해 금융회사가 요청하면 ‘한국 당국의 명령에 의해 철수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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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의 기자 namy85@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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