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만에 막내린 LG·SK 배터리 전쟁..中 '어부지리'

우경희 기자 2021. 4. 12.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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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극적 합의로 마무리된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 글로벌 배터리 대전은 한국 산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전쟁터가 더이상 한국이 아니다. 분쟁 결과에 따라 얼마든지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교훈을 몸소 깨우쳤다.

아직은 우리에겐 생소한 시장선도적 사업자라는 '왕관의 무게'도 여실히 느꼈다. 앞서 달리던 LG와 SK가 난타전을 벌이는 새 경쟁상대 중국 CATL이 곧바로 수혜를 입는다. 그린뉴딜 사업분야에서 각기 시장을 선도할 채비를 갖추고 있는 우리 기업들에 던지는 메시지가 크다.

수천억 소송비용에 잠재적 경쟁상대까지 탄생, 잃은것은
양사는 지난 2019년 4월 29일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시작으로 총 세 건의 영업비밀 및 특허 분쟁을 강대 강 대치 속에 벌였다. 소송 초반과 막판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제대로 된 대화 테이블조차 차려지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수천억원의 소송비용이 국내외 로펌에 지출됐고 한국 배터리산업 안정성에 대한 글로벌 시장의 불신이 커졌다. 호시탐탐 배터리 자체생산을 노리던 폭스바겐 등 완성차업체들은 LG, SK 대신 중국 기업으로 협력방향을 선회했다.

배터리는 전기차 원가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부품이다.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의 '탈 한국 독립선언'은 언제고 찾아올 예정된 미래였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앞서가도 모자랄 국내기업들이 '헛심'을 썼다. R&D(연구개발)와 생산시설에 보다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야 하는 시점에서 인력과 재원을 소송에 쏟아부었다.

이 과정에서 잠재적 경쟁상대들은 힘을 키웠다. 중국 본토에서도 LG에너지솔루션에 점유율을 뺏기며 전전긍긍하던 중국 국영기업이자 세계 최대 배터리사 CATL은 폭스바겐이라는 든든한 우군을 얻었다. 폭스바겐이 자체 투자한 유럽 배터리사 노쓰볼트도 본격적인 설비투자에 들어갔다.

양사가 막판 자체 협상을 통해 합의에 이르렀지만 이 과정에서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점도 향후 변수가 될 수 있다. 미국 언론은 이번 합의를 놓고 벌써 "바이든의 승리"라고 평가하고 있다. 한국이 투자한 수천개의 일자리가 아니라 바이든이 지켜낸 수천개의 일자리가 된 셈이다. 이 전개가 SK이노베이션이 공장을 가동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악 국면 피하고 SK미국공장 정상가동, 지킨것은
SK이노베이션 미국 조지아주 제1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사진제공=SK이노베이션
그렇다고 잃은 것만 있는건 아니다. 2년여의 쟁송 시간은 긴 시간이었지만 최악의 국면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ITC는 SK이노에 대해 10년의 수입금지 조치를 취하면서 일부 브랜드(폭스바겐 등)의 미국 내 공장에 대해서는 2년 간 일시적으로 공급을 허가했다. 이에 따라 최악의 경우 양사 간 합의 시점이 이 일시적 공급시한까지 미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소송 기간이 총 4년이 될 뻔 했다.

양 사가 이에 앞서 합의에 이르면서 SK이노베이션은 예상대로 조지아공장을 가동할 수 있게 됐다. 이는 단순한 해외 공장 가동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조지아공장의 주요 고객이 폭스바겐이기 때문이다. 폭스바겐이 한국산 배터리 사용을 줄이겠다고 선언했지만 일단 SK 조지아공장이 정상 가동되면서 폭스바겐 공급선을 지킬 수 있게 됐다.

LG에너지솔루션으로서는 SK로부터 받게 될 보상비용을 보다 생산적 투자에 투입할 수 있게 됐다. 양사는 이날 각각 이사회를 열고 합의한 보상비용을 확정할 예정이다. 국내는 물론 중국과 유럽 등에 배터리 설비 투자를 벌이고 있던 LG로서는 가뭄의 단비다. 배터리사업이 막 흑자기조를 시작한 시점이어서 소송 종료와 보상비용 확보가 더욱 반갑다.

갈등의 끝은 상처..앞으로 얻을것은

중요한 것은 앞으로다. 국내 기업 간 쟁송의 긴 역사를 딛고 미래 시장 개척에 나서야 한다. 글로벌 배터리시장은 견제보다는 상호 보완의 측면에서 함께 공략해 나가야 한다. 중국 정부와 한 몸이나 마차가지인 CATL, 폭스바겐·BMW 등을 뒤에 업은 유럽 노쓰볼트와의 경쟁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이번 소송을 통해 지식재산권 보호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인식이 한 차원 높아질 수 있다는 점도 장기적으로는 호재가 될 수 있다. 글로벌 시장서 유사한 소송을 피해 잠재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불필요한 비용 지출을 막을 수 있다. 동종업종 국내 기업 간 소송이 얼마나 소모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경각심도 높아졌다. 재발 방지를 위한 산업계의 노력이 뒤따를 것으로 기대된다.

배터리를 포함한 그린뉴딜 산업은 이제 막 '개화기'를 맞고 있다. 배터리 뿐 아니라 수소와 모빌리티 등 국내 기업들이 선도적 지위를 예약한 영역이 적잖다. 배터리 시장과 경쟁구도가 비슷하다. 한 산업계 관계자는 "이번 배터리 소송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한국 산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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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희 기자 cheerup@mt.co.kr, 김성은 기자 gttsw@mt.co.kr, 최민경 기자 eyes0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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