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 앞장서고 IMF 강력 권고..한국은 잠잠한 증세 움직임

이정훈 입력 2021. 4. 12. 05:06 수정 2021. 4. 12.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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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소득세·법인세 증세 이어 부유세도 만지작
한국은 '재난연대세' 등 발의에도 논의 사라져

최근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뿐 아니라 아르헨티나 등 많은 나라에서 코로나19 대응과 경기부양과 관련해 증세 논의가 활발하다. 여기에 국제통화기금(IMF)마저 각국이 재정건전성을 보완하고 양극화 완화를 위해선 증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오랜 기간 감세 쪽으로 기울었던 각국의 세제정책 무게중심이 증세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데다, 이런 움직임이 특정 나라만이 아닌 글로벌 차원에서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증세 논의가 사실상 실종된 우리나라의 상황과는 크게 대비된다.

■ 바이든 정부, 전 세계 증세 바람 일으켜

11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는 소득세와 법인세 최고세율을 올리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한 상황이다. 연 소득 40만달러(약 4억5천만원) 이상 소득에 대한 소득세 세율은 37%에서 39.6%로, 법인세는 21%에서 28%로 세율을 인상할 계획이다. 여기에다 100만달러 이상 자산을 소유한 사람들에겐 추가 세금도 물릴 계획이다. 이는 바이든 대통령 취임 직후 발표한 1조9천억달러 경기부양책과 2조달러 인프라 투자계획의 재원을 마련하려는 목적이 크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는 최근 다국적기업에 대한 ‘글로벌 최저한세’(Global Minimum Tax) 도입을 주장하면서, 전 세계에 증세 바람을 앞장서 일으키고 있다.

다른 나라들의 움직임도 비슷하다. 영국은 2023년 4월부터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행 19%에서 25%로 인상하는 것은 물론, 자본소득 과세 강화도 검토 중이다. 앞서 영국 런던정경대 등 학자들로 구성된 ‘부유세위원회’는 지난해 말 일회성으로 5% 재산세 부과를 주장했다. 이웃한 독일 역시 사회민주당을 중심으로 부유세 부활 목소리가 높다. 남미의 일부 국가들에선 이미 부유세가 도입됐다. 아르헨티나는 전체 납세자의 0.8%인 최상위 부자 1만2천명에게 일회성 세금을 부과해 30억달러(약 3조3600억원)를 코로나19 대응에 쓰기로 했다.

■ IMF “불평등 완화 위해 세금 인상 필요”

이런 움직임은 각국이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지난해 재정지출을 확대하면서 재정이 나빠진 영향이 크다. 국제통화기금은 최근 펴낸 ‘재정점검보고서’(Fiscal Monitor)에서 지난해 선진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이 11.7%에 이르러, 2019년 2.9%에 견줘 네 배 가까이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올해 비율은 10.4%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일반정부 기준 국가채무비율의 경우, 선진국은 지난해 120.1%로 2019년(103.8%)보다 16.3%포인트 늘어났다.

비토르 가스파르 국제통화기금 재정담당 국장은 “코로나19는 불평등을 악화시켰고, 이는 사회적·정치적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며 “불평등 완화를 위해 교육, 의료, 사회 안전망 등을 강화해나가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세금 인상과 공공지출의 효율성 향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증세의 해법으론 소득세와 법인세의 누진율 강화는 물론, 한시적으로 사회적 연대를 위한 부유세 도입 등이 꼽혔다.

사정이 이런데도 우리나라에선 증세를 위한 논의가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말 정의당의 장혜영 의원이 코로나19에도 소득이 늘어나거나 높은 소득이 있는 기업이나 개인에게 한시적으로 추가 과세할 수 있도록 하는 ‘특별재난연대세’를 발의했고, 올 들어 더불어민주당의 이상민 의원이나 이용우·유동수 의원 등이 고소득자에게 사회연대특별세를 부과하거나 사회연대기금 마련을 위한 법안 발의를 준비한 바 있다. 같은 당 윤후덕 의원은 지난 2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증세하지 않고 위기극복 재원을 다 마련한다는 것은 지금 방식으로는 불가능”이라며 “재정 당국에서도 증세방안을 공론화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주무부서인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국민적 공감대가 우선”이라는 말로, 여전히 한걸음 물러난 행보를 보일 뿐이다. 사실상 증세에 부정적인 견해를 되풀이한 셈이다.

■ “우리도 증세 논의 이제 시작해야”

이런 가운데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국내 재정상황은 더욱 나빠질 수밖에 없는 터라, 더 이상 증세 논의를 미룰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다. 올 들어 한차례 추가경정예산안이 실시된 데 이어 하반기에도 다시 한번 실시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내년에도 한국판 뉴딜에 20조원 이상이 들어가고, 영아수당 도입이나 전국민고용보험 추진 등으로 복지지출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은 최근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일반정부 기준)이 2020년 48.7%에서 2026년 69.7%로 늘어날 것이라 전망한 바 있다. 선진국 35개국 가운데 증가 폭이 두번째로 높다.

이태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양극화와 성장둔화 등 향후 재정 소요가 많아 증세 필요성은 점점 커져가고 있는데, 증세 논의는 거의 없는 상황”이라며 “미국은 장기 플랜을 갖고 재정지출과 그 효과를 분석해 증세 필요성을 강조하는데, 우리도 재정운용계획을 세우면서 재정지출 효과 분석을 통해 국민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병구 인하대 교수(경제학)도 “미국과 영국 등 주요국에서 증세를 추진 중인데, 우리 역시 코로나 이후에도 재정의 역할이 중요하고 재정건전성도 강화할 필요가 있어 증세 논의를 이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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