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 대체할 형벌 논의, 어디까지 왔을까
실질적 사형 폐지국 한국서 채택될 수 있을까
“입법부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 형태의 무기징역 제도를 조속히 입법해 주시길 바랍니다.”
지난 7일, 광주고법 전주재판부 형사1부 김성주 부장판사는 최아무개(32)씨의 항소심에서 이렇게 말했다. 최씨는 지난해 4월 아내의 지인을 성폭행하고 현금을 빼앗은 뒤 살해하는 등, 여성 두 명을 잔혹하게 살해·유기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김 부장판사는 “피고인의 성폭력 범죄 성향과 준법의식 결여, 공동체 구성원에 대한 존중 결여 등을 참작하면 피고인에게 무기징역보다 가벼운 형을 선고할 수는 없다”며 “입법부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입법해, 사실상 사형제 폐지 국가로 분류되는 대한민국에서 국민을 안전하게 지켜달라”고 말했다.
재판부가 흉악범에 대해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언급한 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9년 11월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은 모텔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투숙객을 살해하고 주검을 훼손해 한강에 유기한 혐의로 기소된 장아무개(41)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며 “실질적인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된 우리나라에서 극악무도한 범죄의 재발을 막는 유일한 방안은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이라고 밝혔다. 2014년 9월 대구지법 서부지원은 배관공으로 가장해 전 여자친구의 집에 들어가 부모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장아무개(31)씨에게 사형을 선고하며 “현행법상 가석방이나 사면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절대적 종신형’이 없기 때문”이라고 양형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 “무기징역은 사형제 대체 못 해”
종신형은 가석방이 가능한 ‘상대적 종신형’과 수형자가 사망할 때까지 가석방이 불가능한 ‘절대적 종신형’ 두 가지로 나뉜다. 한국은 일종의 상대적 종신형을 채택하고 있다. 형법 제72조에는 ‘무기수는 20년, 유기수는 형기의 3분의 1을 경과한 후 가석방할 수 있다’고 돼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무기수의 가석방 조건인 ‘20년 이상 복역’은 최소한의 요건일 뿐이다.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을 보면, 법에서 정한 기한을 채운 수형자 중 ‘교정성적이 우수하고 뉘우치는 빛이 뚜렷하여 재범의 위험성이 없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한해 가석방 적격심사신청 대상자가 되고, 가석방심사위원회는 이들의 나이, 범죄 동기, 죄명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가석방 여부를 결정한다.
2019년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통계자료를 보면, 2016년엔 2명, 2017년엔 11명, 2018년엔 40명의 무기수가 가석방됐다. 법무부는 한국의 가석방 출소율(2018년 기준 28.5%)을 근거로 일본(57%)이나 캐나다(37%) 등에 견줘 가석방이 엄격하게 운영되는 편이라고 밝혔다. 법조계 전문가들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이어지는 것은 실질적 사형제 폐지국가인 한국에서 사형을 대체할 형벌로써 ‘절대적 종신형’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흉악범에 대한 가석방이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는 해도 제도적으로는 가능하기 때문에 국민적 불안을 고려해 수형자가 숨질 때까지 가석방하지 않는 종신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승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은 실질적 사형제 폐지국가지만 사형제 폐지에 대한 다수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다”며 “가석방이 가능한 현행 무기징역은 사형을 대체할만하지 않다는 의견이 있는 상황에서 국민의 불안감과 염려를 고려해 절대적 종신형이 대체형벌로 언급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1997년 12월30일 사형수 23명에 대해 사형집행을 한 이후 한 건의 사형집행도 이뤄지지 않아 국제적으로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대법원의 사형 확정판결도 2016년 2월이 마지막이었다. 육군 일반전초(GOP)에서 총기를 난사해 동료 5명을 살해한 임아무개(29)씨 사건이었다.
■ 두 번의 위헌 판단, 여덟 번의 입법…이번엔 어떨까
일부 재판부가 실질적 사형폐지국인 현실에 발맞춰 절대적 종신형 도입을 요구하고 있지만, 상황은 더디게 진행 중이다. 1973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유인태 의원 등 175명이 2004년 사형제를 폐지하는 대신 가석방 없는 종신형으로 대체하자는 특별법을 발의하는 등, 1999년부터 2019년까지 총 8건의 사형제 폐지법안이 발의됐으나 모두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21대 국회에선 발의된 관련법도 없다.
사형제의 위헌 여부를 가릴 헌법재판소도 2019년 2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가 제기한 사형제 폐지 관련 헌법소원을 두고 고심 중이다. 헌재는 1996년,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사형제를 합헌으로 판단했는데, 마지막 합헌 결정으로부터 상당 시간이 흐르고 재판관 구성이 바뀐 만큼 헌재의 판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만약 헌재가 사형제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면 가석방 없는 종신형 등 대체형벌 도입 논의에 속도가 붙게 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월 헌재에 사형제 폐지 의견서를 내어 “사형 대신 정책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대체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헌재의 위헌 결정을 촉구했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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