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SK 배터리 분쟁의 최종 승자는 '바이든 대통령'

김현우 2021. 4. 1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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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거부권 최종시한 앞두고 합의 도출 
"미국 산업과 일자리 보호 등 모든 실리 챙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의 스테이트 다이닝 룸에서 '3월 고용보고'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11일 극적으로 타결된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 배터리 분쟁의 최종 승자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란 분석이 나온다. 2년 가까이 양사의 벼랑 끝 대치 속에 접점을 찾았지만 정작 명분과 실리는 모두 바이든 대통령에게 돌아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과정은 험난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합의금을 둘러싼 양사 간 이견은 컸고 미 국제무역위원회(ITC) 결정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최종 거부권 행사 여부로 승패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까지 흘렀다.

하지만 어느 쪽을 택하든 바이든 대통령에겐 손해였다. LG에너지솔루션의 손을 들어주면 SK이노베이션의 미국 사업 철수로 자국 산업 피해와 일자리 손실이 우려됐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을 구제할 경우엔 지적재산권 침해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란 전례 없는 선택으로 돌아올 역풍도 고려해야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상황 속에 거부권 행사 최종 시한인 이날 양사의 중재를 유도, 합의까지 도출해 냈다. 결국, 바이든 대통령은 묘수 찾기에 성공하면서 자국 내에 미칠 현실적인 피해와 정치적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미 외신들 "바이든 대통령의 승리"...USTR 대표가 협상 관여

미 언론들도 이날 이뤄진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분쟁에 대한 합의를 놓고 “바이든 대통령의 승리”라고 한 목소리로 평가했다. 미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는 “SK이노베이션이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26억 달러 규모의 배터리 공장 건설이 계속돼 올해 연말까지 1,000명을 고용할 것”이라며 “일자리 창출과 미국 기반의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 구축을 원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LG와 SK 합의는 미국 노동자와 자동차 업계의 승리”라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외신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대통령 거부권 행사시한을 앞두고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합의에 도달하도록 압박을 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캐서린 타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양사 간 합의를 위한 협상 과정에 직접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ITC 결정은 수입제한 조치라는 통상 사안이어서 주무 부처가 USTR”이라며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 협상에 주무부처 장관까지 배석시킨 건 그만큼 합의를 도출해내라는 뜻을 강하게 전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배터리 수요 전망

LG와 SK 중 한쪽 이기면 미국 손해..."합의 도출로 모든 실리 챙겨"

미국이 이처럼 적극 중재에 나선 데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 ‘치킨게임’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영국 패러데이 연구소에 따르면 2025년까지 전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필요한 배터리 용량은 지금보다 약 6배 급증할 전망이다. 하지만 배터리 공급량 부족으로 미국에선 이르면 2022년부터 배터리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배터리 대란’이 우려되고 있다.

ITC 결정으로 SK이노베이션이 미국 사업을 철수하게 되면 대대적인 전기차 확대 정책을 펼치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는 심각한 배터리 수급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SK이노베이션의 빈자리를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메울 수 있겠지만,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를 낮추려는 바이든 대통령에겐 반가운 대안이 아니다.

더욱이 미 조지아주 주지사가 최근 ITC 결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사용을 3번이나 요청하는 등 자국 내 여론도 감안해야 했다. 조지아주는 SK이노베이션이 현지 사업을 중단할 경우 2,600여 개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등 타격이 크다. 전통적으로 공화당 지지기반이었지만 지난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손을 들어준 조지아주의 요청을 뿌리치긴 어려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은 어떤 식으로든 SK이노베이션을 구제해야 했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을 구제하기 위해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 역시 큰 부담이었다. 지난 1916년 ITC가 설립된 이후 미 대통령의 거부권은 단 6건만 행사됐는데, 영업비밀 침해 사건에 대해선 단 1건도 없었다. 지식재산권 침해는 미국에서 매우 민감한 사안이어서 대통령조차 직접 개입하긴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언뜻 해법이 없어 보였던 LG-SK 배터리 분쟁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양사 간 합의를 이끌어내 돌파구를 만들어냈다"며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서도 미국 전기차 산업과 일자리 보호, 조지아주의 요청 수용까지 모든 실리를 얻어낸 최고의 수였다"고 말했다.

김현우 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정상원 특파원 orn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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