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금 확보 전쟁' 막 올랐는데.. 한국에 미칠 영향은 '깜깜이'

손영하 2021. 4. 1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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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디지털세 부과' 논의에 미국도 참전
①매출 발생국에 과세권 부여 ②글로벌 최저세율 설정
"7월 합의한다"지만.. 국내 기업 적용 여부도 몰라
법인세 내리기 경쟁도 중단될 듯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AP 연합뉴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주도하는 글로벌 법인세 제도 개편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 그동안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던 미국 정부가 '글로벌 최저 법인세' 도입을 주장한 데 더해 "초거대 기업의 매출이 발생한 나라에 과세권을 주자"고 적극적으로 제안하면서다.

문제는 새로운 국제 조세체계가 한국 정부 세수와 기업 세 부담에 미칠 영향이 여전히 '깜깜이' 속에 있다는 점이다. 특히 개편안이 적용되는 업종, 기업 규모 등에 따라 국내 기업의 세 부담이 크게 변화할 수 있는 만큼 논의 과정에서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글로벌 법인세 개편 속도 내는 미국... "시장 있으면 세금, 법인세율 하한 설정" 주장

11일 외신과 정부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8일(현지시간) 글로벌 법인세 개편안을 담은 공문을 한국 등 140여 개국에 발송했다. 해당 공문에는 100대 다국적 기업에 대해 매출이 실제 발생한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게 하자는 제안이 담겼다.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이 지난 5일 "법인세율에 하한을 설정하기 위해 주요 20개국(G20)과 협력하고 있다"며 최저한세율로 21%를 제시한 데 이어 글로벌 법인세 개편을 서두르자고 촉구한 것이다.

이번 미국의 제안은 OECD가 ‘국가 간 소득 이전을 통한 세원 잠식’(BEPS) 대응 협의체를 통해 논의하고 있는 디지털세 도입의 연장선에 있다. OECD는 △'시장이 있는 나라'에도 세금을 내게 하는 것(접근법1) △다국적기업의 조세 회피를 방지할 '최저한세'를 도입하는 것(접근법2)을 논의하고 있는데, 미국이 두 접근법에 큰 틀에서 동의한다는 제스처를 보인 것이다. 파스칼 생타망 OECD 조세정책 총괄은 “(미국의 제안은) 협상을 재개할 수 있고, 매우 긍정적인 제안”이라고 말했다.

'접근법1'의 핵심은 과세권 배분이다. 현재 다국적 기업의 사업소득에 대한 과세권은 사업장의 '물리적 실체'가 있어야만 주어진다. 한 디지털 기업이 A 국에 서버를 두고 B 국 소비자들에게 동영상 서비스를 제공할 때 이 기업에 대한 과세권은 A 국에만 있다. OECD와 미국은 해당 기업이 일정 규모 이상일 경우 실제 매출이 발생한 B 국에서도 이 기업에 세금을 걷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접근법2'는 국제적인 최저한세율을 정해놓고, 기업이 이보다 적게 세금을 냈을 경우 본국에서 추가로 과세하자는 방안이다. 예를 들어 최저한세율이 21%인데 미국 기업이 A 국에 실효세율 15%에 해당하는 세금만 냈다면, 나머지 6%포인트는 미국이 징수할 수 있게 된다. 최저한세율이 적용되면 다국적 기업들이 저세율국을 활용해 조세를 회피하는 행위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백신·치료제 상황점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세수 줄어드나? 한국 기업 부담은 얼마나?'...깜깜이 개편

문제는 이 같은 개편안이 한국 정부나 기업에 미칠 영향을 아직도 알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10월 '디지털세 논의 경과보고서'와 관련해 "디지털세 도입 시 국내 세수 영향은 세부 변수에 관한 결론에 따라 유동적일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현 상황에서 전체 법인 세수와 기업 세 부담 등에 대한 국내 영향의 정확한 추정은 곤란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국내 영향이 클 것으로 전망되는 부분은 '접근법1'이다. '접근법1'이 적용되면 해외에서 큰 매출을 올리는 국내 기업들이 해당 국가에 세금을 납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접근법1'의 적용 대상은 애초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T) 기업에서 △가전·휴대폰 △옷·화장품·사치품 △포장 식품 △프랜차이즈 △자동차 등 소비자 대상 다국적 기업까지 확대됐고, 미국은 '업종에 상관없이 100대 기업'을 제안했다. 논의 결과에 따라 삼성·현대 등 해외에 진출한 대기업, 네이버·카카오 등의 포털 등도 적용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접근법2'는 그나마 영향이 적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법인세율은 27.5%로 미국이 제안한 최저한세율(21%)보다 이미 높기 때문이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한국은 이미 법인세율이 높은 그룹에 들어갔다"면서 "최저한세율이 적용되더라도 당장 큰 영향이 있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주요국 법인세 최고세율.jpg

그러나 정부 세수 변화 등에선 불확실성이 여전하다. 이론적으로는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최저한세율 미만의 세금을 납부할 경우 한국 국세청이 추가 징수를 할 수 있게 되지만, 최저한세율 적용 대상조차 아직 확정되지 않아서다. 기재부 관계자는 "막대한 행정비용을 고려하면 작은 기업에 대해서는 최저한세율을 적용할 수 없다"면서 "연간매출 규모 등을 기준으로 적용 대상을 정해야 하는데 아직 그 기준도 논의 쟁점"이라고 말했다.

일정조차도 확실하지 않다. 한국을 포함한 G20은 지난 8일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국제 조세체계 개선 최종 합의안을 올해 7월까지 내놓겠다는 내용의 공동합의서를 채택했다. 하지만 기재부 관계자는 "계획상으로는 올해 7월 합의가 목표지만, 미해결 쟁점이 많고 각국 세수가 걸려 있어 이해관계가 첨예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 의지 확고... 조세회피 막고 돈 걷겠다

합의가 쉽지 않지만 새로운 조세체계에 대한 국제사회의 의지는 확고하다. 구글 등 거대 기업들이 조세회피처를 활용해 합법적으로 세금을 피해왔던 관행을 뿌리 뽑자는데 선진국 간 합의가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인용한 수치에 따르면, 다국적 기업이 조세회피처를 활용해 각 정부가 거둬들이지 못하는 법인세는 매년 5,000억~6,000억 달러에 달한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로 정부 재정 지출은 늘어나는데 막대한 수익을 챙긴 기업들의 세금을 피하는 상황이 불을 붙였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자국 기업의 피해가 분명한데도 미국이 조세체계 개편에 찬성한 것도 결국 돈 때문이다. 특히 조 바이든 행정부는 2조3,000억 달러 규모 인프라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법인세율을 21%에서 28%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자국 내 법인세 인상으로 기업 투자 감소가 우려되는 상황에 글로벌 법인세율 하한선 카드로 세수 유출을 최대한 막으려고 하는 것이다.

OECD 법인세 평균치 추이.jpg

글로벌 법인세 인하 전쟁도 종식될까

일각에선 이번 조세체계 개편이 '법인세 인하 경쟁'을 종식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그동안 주요국들은 기업 투자 유치를 위해 경쟁적으로 법인세율을 낮춰왔는데, 글로벌 최저한세율이 생기면 그럴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실제 1985년 48.1%에 달했던 OECD 국가의 법인세율 평균치는 2005년 32.2%, 2020년 23.3% 등으로 급락해왔다. 최근에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투자를 이끌겠다며 2017년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내린 것이 촉매가 됐다. 프랑스는 2017년 33.3%던 법인세율을 인하해 내년에는 25%까지 낮출 계획이며, 일본도 2016년 23.4%였던 세율을 2018년 4월 1일부터 23.2%로 낮췄다.

옐런 장관은 최저한세와 관련해 "30년간 이어진 법인세 ‘바닥 경쟁’을 멈춰야 한다”면서 “각 나라 정부가 필수 공공재에 필요한 충분한 세수를 얻고, 위기에 대응할 안정적 세제 시스템을 갖추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종=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세종=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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