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편지 감성 호소에 뇌물까지 등장..'리뷰 전쟁터' 된 배달앱
리뷰가 매출 좌우하며 총력전
고객 유치 위한 리뷰 이벤트에
블랙커슈머·조작단까지 활개
자영업자 시름 "악플 악몽까지"
서울 동작구에 사는 직장인 이성현(30)씨는 최근 1인용 로제떡볶이 세트를 배달시켰다 업체 사장에게 예상치 못한 사과 전화를 받았다. 배달 앱(애플리케이션)상 예상 시간보다 음식이 30분 늦게 도착해 '맛은 있는데 배달이 늦었네요'라며 별 5개 만점에 3점을 준 게 발단이 됐다.
리뷰 작성 1시간이 안 돼 전화를 건 떡볶이 가게 사장은 "음식 도착이 늦어 죄송하다"며 "다음에 서비스를 더 줄 테니 리뷰를 수정해달라"고 하소연했다. 대학생 때부터 10년 가까이 자취를 하며 삼시 세끼의 대부분을 배달음식으로 해 온 이씨는 11일 "최근 들어 '리뷰를 작성해달라'든가 '안 좋은 리뷰를 삭제해달라'는 전화를 자주 받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리뷰 부탁드려요" 손편지 감성 호소에 과자·초콜릿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외식 업체 간 '리뷰(이용 후기) 전쟁'이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배달 주문 비중이 커진 상황에서, 리뷰가 매출을 좌우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 때문이다. 업체들은 '리뷰이벤트' 등을 통해 당장의 수익을 포기하면서까지 고객 모시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기존의 배달 시장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감성 마케팅'까지 등장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의 한 분식업체 사장은 "주문하는 모든 고객들에게 '초코볼 과자'를 함께 드리고 있다"며 "사소한 것에 감동해 리뷰를 달아주시는 고객들도 많다"고 전했다.
정성을 담은 손편지를 보내는 업주들도 있다. 파스타전문점 사장 김모(35)씨는 "2년 전 처음 가게 문을 열었을 때부터 감사의 의미를 담아 직접 쪽지를 하나하나 써서 고객님들께 보내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 치킨 배달전문점 사장 B(47)씨는 "배달이 하루에 수십 건인데 하나하나 편지를 쓰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인쇄업체에 의뢰한 손글씨 포스트잇을 대안으로 사용 중"이라고 전했다.
고객들이 작성한 리뷰에 일일이 답글을 다는 업체도 적지 않다. B씨는 "리뷰에 답글을 일일이 단다"며 "음식을 만드는 것만도 힘든데, 또 답을 '복붙'(복사 붙여넣기의 줄임말, 같은 문구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해서 달면 성의 없어 보일 것 같아 고민이 많다"고 털어놨다.
'리뷰이벤트'에 목매는 외식 업체... '악플' 악몽도 꾼다
자영업자들이 리뷰에 목을 매는 건 배달 시장이 사실상 무한 경쟁 체제가 된 영향이 적지 않다. 배달 시장 자체가 커지면서 참여 업체 수가 크게 늘어난 데다 배달 주문이 가능한 거리 또한 예전보다 넓어졌다. 소수 배달업체가 배달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면서 배달 앱에서 특정 음식을 검색하면 비슷한 경쟁 업체가 수십 개씩 쏟아져 나온다. 최소한의 매출을 보장하는 장치 역할을 해왔던 상권 개념이 무너진 셈이다.
물론 코로나19 사태 이후 반복되는 영업시간 제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들에게 커지고 있는 배달 시장은 생명줄이 돼 주는 측면이 있다. 리뷰 제도가 소비자의 선택권을 강화하는 긍정적 효과 또한 적지 않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자영업자와 소비자 간 분쟁까지 생겨나면서 또 다른 사회적 문제가 되는 모양새다.
당장 공짜 서비스를 노리고 악성 리뷰를 남기는 '블랙컨슈머'나 의도적으로 긍정 평가를 남기는 '리뷰조작단' 등은 자영업자의 시름을 더 깊게 하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리뷰를 작성하기로 약속하고 무료 서비스만 받는 '먹튀' 고객이 적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자영업자 A(41)씨는 "리뷰이벤트를 하면 10명 중 3명만 약속대로 리뷰를 작성한다"며 "나머지 7명은 직접 전화를 드리는 방식으로 확인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의 한 분식업체 사장은 "음식이 맵다고 미리 주의를 드렸는데, 매워서 아이들이 음식을 다 남겼다며 별점 1개를 준 경우도 있었다"며 "리뷰 걱정에 악몽을 꾼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앱 이용자 중 허위 리뷰로 특정 식당을 깎아내리거나, 박한 리뷰에 식당 주인들이 감정적으로 대응했다가 별점 테러를 당하는 일 또한 비일비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달의민족은 지난해 3월 돈을 받고 가짜 리뷰를 조직적으로 작성한 리뷰 조작 업체를 경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리뷰의 본래 취지가 훼손되면서 리뷰 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정수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사무총장은 "소비자들이 제공받는 정보는 주로 가격, 평점, 후기, 음식 사진자료 등 판매 중심의 기능적인 정보"라며 "반면 위생 상태나 원재료 함량, 영양성분같이 소비자에게 유리한 정보들은 거의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고 현행 리뷰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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