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정치의 바람결이 달라졌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2021. 4. 12.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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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에 등 돌린 2030의 선택 젊은 세대의 아픔과 고통을 권력자들이 이해하지 못한 탓
민심의 변화 깨닫는 데는 바람에 날리는 꽃잎 한 장 물가의 개구리 소리면 충분
서울시장 보궐선거일인 2021년 4월 7일 서울 서초구의 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기표소에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 있다. / 오종찬 기자

보궐선거가 야당의 승리로 끝이 났다. 서울과 부산에 한정된 ‘보궐’선거였다고 해도 선거 결과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아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은 서울에서 18.3%, 부산에서 28.3%라는 큰 득표 차이로 졌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서울의 25구, 부산의 16구에서 모두 패배했다. 그저 한 번의 보궐선거 패배라고 민주당이 스스로 위로하기에는 패배의 ‘질(質)’이 매우 나쁘다. 이와 같은 선거 결과는 우리 사회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정치적 변화의 흐름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2016년 촛불 집회 이후 최근까지의 정국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었다. 그 여파로 더불어민주당은 정치적으로 지배적 입장에 놓일 수 있었고 야당은 지리멸렬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의 잇단 승리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보궐선거 결과는 탄핵 정국의 여파가 일단 마무리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부터는 국민의힘도 노력하기에 따라서 다시 유권자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번 보궐선거에서 가장 눈길을 끈 건 2030세대의 선택이었다. 이들은 보수 정당 후보에게 더 많은 표를 주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들은 국민의힘을 선택했다기보다 민주당에 등을 돌렸다. 젊은 세대 유권자들이 민주당을 외면한 건 문재인 정부나 586 집권층의 단순한 정책 실수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권력자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천적으로 자기 당 소속 단체장들의 성 범죄로 인해 실시하게 된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은 정치적 계산 속에 그에 대한 미안함이나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했다. 특히 박원순 시장 사건과 관련한 민주당의 ‘둔감함’은 이들이 시대적 문제에 대한 공감 능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런 둔감함은 이들이 권력에 도취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민주당의 지도층인 586 집단의 세대적 한계와 관련이 깊어 보인다. 비단 젠더 이슈뿐만 아니라 주거 문제, 부동산, 세금, 대북 정책 등 곳곳에서 이제 이들의 인식의 한계, 역량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이에 더해 권력의 오만과 독선, 그리고 집단적 폐쇄성 속에 이들은 세상 변화에 눈멀어져 갔던 것이다.

사실 80년대의 운동권 논리가 2020년대를 사는 우리 사회에 맞을 리가 없고, 그래서 이들이 내세운 구호는 요란하지만 정책적 성과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더 나아가 요즘 들어서는 도대체 이들이 내세운 언필칭 ‘진보’라는 게 무엇이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변화와 개혁을 통해 기존의 사회적 문제와 모순을 해결하고 보다 나은 상태로 이끌겠다는 게 진보라면 이들의 모습은 더 이상 진보적이지 않다.

조국 전 장관을 둘러싼 ‘맞는다, 아니다’의 논란이 상징하듯, 그들은 ‘진보의 내용’을 잊어버렸다. 내용은 사라져 버린 채 그저 진보를 지칭하는 정권의 ‘우리 편’만 챙길 뿐이다. 그들이 내건 진보는 권력을 잡고 그걸 통해 자신들이 기득권 세력이 되려고 하는 정치적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알맹이 빠진 정치적 명분을 내걸고 실제로 그들은 이제 지위상으로나 세대적으로 그저 또 다른 기득권이 되어 버렸다.

2002년, 2004년 선거를 거치면서 한때 새 바람의 주역이었던 586세대는 이제 정치적 명분에서도 한계를 보였고, 또 우리 사회가 직면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 낼 수 있는 역량의 부족도 드러냈다. 이제 이들이 떠나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2030세대의 반란은 세상 변화에 둔감해진 586 집권층 대신, 젊고 참신한 이들이 새롭게 정치를 이끌어야 한다는 정치적 세대교체의 요구를 거세게 표출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 보궐선거의 결과는 단순한 여야 간 승패의 문제를 넘어서 정치 변화를 위한 ‘미묘한, 그러나 의미심장한’ 민심의 흐름을 보여 주었다. 이런 지적에 대해 누군가는 한 번의 보궐선거 결과를 가지고 너무 요란을 떨고 있다고 비판할지도 모르겠다. 한비자는 천길 높이의 큰 둑도 작아 보이는 개미 구멍으로 인해 무너질 수 있다고 했다. 이번 선거 결과의 충격은 개미 구멍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커 보인다. 더욱이 겨울이 지나가고 있다는 걸 알기 위해 굳이 복잡한 기구와 요란한 방법을 이용할 필요는 없다. 그저 바람에 날리는 꽃잎 한 장, 물가의 개구리 소리면 계절의 변화를 깨닫는 데 충분하다. 정치의 바람결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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