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가 LG에 2조원 합의금.. '배터리 전쟁' 2년만에 종료

이성훈 기자 2021. 4. 12.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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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1조원+로열티 1조원 지급, 양측 10년간 추가 소송 않기로

지난 2년간 극한의 배터리 분쟁을 벌여왔던 SK와 LG가 합의금 2조원(현금 1조원+로열티 1조원)에 모든 관련 소송을 접기로 합의했다. 국내 기업 간 해외 분쟁 합의금으로는 사상 최대다. 이번 합의는 ‘SK 배터리 10년 수입·판매 금지’ 조치를 내린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결정에 대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시한(현지 시각 11일) 전날 극적으로 이뤄졌다. 양 사가 합의하면서 ITC가 SK이노베이션에 내린 미국 수입·판매 금지 조치는 무효가 됐고 SK이노베이션은 미 조지아 배터리 공장을 예정대로 건설·운용할 수 있게 됐다.

SK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기공식 - 2019년 3월 10일 미국 조지아주 잭슨카운티 커머스시에서 열린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 기공식에서 김준(왼쪽 여섯째)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 윌버 로스(왼쪽 일곱째) 당시 미 상무부 장관, 최재원(왼쪽 아홉째) SK수석부회장이 첫 삽을 뜨고 있다. 11일 LG와 SK가 배터리 분쟁 해소에 극적으로 합의하며, 올해 완공 예정인 이 공장도 차질 없이 가동될 수 있게 됐다. /SK이노베이션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은 11일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전과 관련 공동 입장문을 내고 “SK가 LG에 2조원을 지급하고 양사는 국내외 쟁송(爭訟)을 모두 취하하며 향후 10년간 추가 쟁송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 김준 사장과 LG에너지솔루션 김종현 사장은 “한·미 양국 전기차 배터리 산업의 발전을 위해 건전한 경쟁과 우호적인 협력을 하기로 했다”며 “특히 미 바이든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배터리 공급망 강화 및 이를 통한 친환경 정책에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양측의 극적 합의에는 바이든 행정부의 중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차 시장 육성을 공언해 온 바이든 정부로선 자국 내에서 배터리를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동시에 SK의 조지아 공장을 통해 일자리도 창출해야 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11일 성명을 내고 “이번 합의는 미국의 노동자와 자동차 산업을 위한 승리”라고 말했다. 이번 소송은 LG가 2019년 4월 SK를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로 ITC에 제소하면서 시작됐다. 국내 대표 기업들이 해외에서 벌인 첫 대형 소송전일 뿐 아니라 글로벌 자동차 산업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전기차 육성 공약한 美, 적극 중재… “바이든이 승자”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의 협상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최종 결정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시한(현지 시각 11일)을 앞두고 막바지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이번 합의로 SK는 LG에 1조원은 현금으로, 나머지 1조원은 로열티(기술사용료) 형태로 지급하게 된다. 또 국내외에서 진행 중인 쟁송을 취하하고, 향후 10년 동안 추가 쟁송도 하지 않기로 했다. LG는 “공정 경쟁과 상생을 지키려는 의지가 반영되었으며, 배터리 관련 지식재산권이 인정받았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SK는 “소송이 장기화될 경우의 불확실성과 한국 배터리 산업의 미래를 고려해 대승적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美 정부 적극 중재… “바이든 골칫거리 사라져”

재계에 따르면, 지난 9일까지도 협상은 물 건너가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 여부에 대해 판단을 하는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캐서린 타이 대표가 SK이노베이션 김준 사장, SK에너지솔루션 김종현 사장과 몇 차례 화상회의를 가졌지만, 그때까지도 접점을 못 찾았다. SK는 막대한 합의금을 지급할 경우, 오랜 기간 배터리 사업에서 적자를 감내해야 한다. LG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하면 더 큰 합의금을 받아낼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러자 미 정부는 SK 측에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LG 측에는 “합의가 없으면 미국 전기차 산업에 큰 부담이 된다”는 점을 거론하며 양측을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향후 미국 사업을 고려하면, 두 회사 모두 이제 막 출범한 바이든 정부의 제안을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정부가 한국 기업 간 소송 중재에 적극 나선 데는 이유가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모든 관용차를 전기차로 교체하고 2030년까지 전기차 충전소 50만개를 설치하는 등 ‘전기차 산업 육성’을 공언했다. 이를 위해서는 SK가 조지아에서 건설 중인 배터리 공장이 정상 가동되고, 전기차 배터리가 안정적으로 공급돼야 한다. 또 최근 중국을 압박하며 반도체·배터리의 공급망 구축을 강화하고 있는 바이든 정부로선 가능한 많은 배터리 업체를 미국 내에 두고 싶어했다. 안덕근 서울대 교수는 “바이든 대통령이 배터리 포함 4대 핵심산업의 공급망 위험에 대한 조사를 하라고 행정 명령까지 발동 시킨 상황에서 두 기업이 자신의 입장을 고집하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공화당 텃밭이던 조지아주에서 최근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이 탄생하면서, 민주당 소속 바이든 대통령이 SK 공장을 원하는 조지아주의 지역 민심을 외면하기도 어려웠다.

그렇다고 지식재산권을 앞세워 중국을 압박해온 미국이 영업 비밀 침해와 관련해 ITC의 결정을 뒤집고 SK의 손을 들어줄 수도 없었다. 결국 두 회사를 협상 테이블에 앉혀 합의를 보게 하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합의로 바이든 대통령의 골칫거리가 사라졌다”고 평가했다.

◇'K배터리' 위기감도

양 사가 배터리 분쟁에 극적으로 합의한 배경에는 최근 업계에서 불거지고 있는 ‘K(한국)배터리 위기설’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한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두 회사의 극단적인 대립으로 SK의 미국 공장 철수설까지 나오면서 자동차 업계에선 한국 배터리 업체에만 의존하면 전기차 생산에 차질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졌다”고 말했다.

실제 완성차 업체들은 잇따라 자체 배터리 생산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세계 최대 자동차 업체인 독일 폴크스바겐그룹은 지난달 유럽에 배터리 공장 6개를 독자 또는 합작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도 현재 미국 텍사스와 독일 베를린 공장에서 생산을 준비 중이다. 여기에 지난 2월 세계 1위 배터리 기업인 중국 CATL은 2025년까지 생산 능력을 현재의 5배 수준으로 키우겠다는 전략을 발표했다.

국내에서도 LG와 SK의 분쟁이 더 길어질 경우 한국 배터리 기업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재계 관계자는 “ESG(환경·사회적책임·지배구조) 경영을 강조하는 SK는 도덕적 이미지에 타격이, LG는 한국 배터리 산업의 미래 성장을 저해했다는 비판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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