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이 아이 사회성 발달 돕지만, 입양은 신중히 결정해야"
#1. 서울 송파구에서 초 1·3학년 두 딸을 키우는 전향미씨는 두 달 전, 분양숍에서 수컷 포메라니안(5개월) 한 마리를 데려왔다. 처음엔 부담이 앞섰지만, 아이들이 이타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가족으로 여기고 있다. 전씨는 “예전엔 아이들이 장난감 가게나 키즈카페에 가자고 졸랐는데, 반려견을 데려온 다음부턴 뭘 사달라, 놀러 가잔 얘기가 쏙 들어갔다”며 “보살핌, 양보, 이타적 사고 등 사회성을 키울 시기에 반려동물을 데려온 건 너무나 잘한 선택 같다”고 귀띔했다.
#2. 경기 고양의 워킹맘 A씨는 여섯 살 딸이 강아지를 키우자고 졸라대는 통에 덜컥 입양부터 했다가 모녀와 강아지 모두 마음의 상처를 안았다. 주 6일 근무 탓에 집안에 강아지가 홀로 남은 시간이 늘어 방치된 채 커버렸다. A씨는 강아지에게 자주 짜증을 냈고, 그런 모습을 본 아이도 강아지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딸은 어느 날 “엄마, 다른 강아지 키울까”라며 속마음을 털어놨다. A씨는 충격을 받고 파양하면서 다시는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반려인 1500만 시대’ 국내 반려동물 양육가구 비율은 26.4%(591만 가구)로, 4가구 중 1가구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다. 더구나 초중등 자녀가 있는 가정이라면 한 번쯤 ‘반려동물을 키워볼까’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 특히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와 집합금지 규정이 강화되면서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은 날로 커지는 추세다.
하지만 반려동물도 사람과 똑같은 생명이고 한가족이기에 선뜻 데려다 키우기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자칫하면 A씨 사례처럼 가족은 물론 반려동물까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반려동물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최근 반려동물이 아동·청소년기 자녀에게 교육적으로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에게 기대할 수 있는 자녀 교육 효과는 어떤 게 있을까. 현재까지 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연구결과는 ‘언어·인지능력 발달’이다. 반려동물과 아동정서의 상관성에 관한 전 세계 22개 논문(1960~2018년)을 분석한 ‘반려동물이 아동·청소년 발달에 미치는 영향(허영태 외)’은 시사적이다. 반려동물과 아동은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아동은 평소보다 더 많이 표현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의사를 전달하려 하는 한편, 반려동물은 부모와 달리 참을성 있게 소리나 표현을 받아들여서 ‘언어자극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반려동물이 아동·청소년기 자녀의 언어와 인지 발달을 촉진한다는 연구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일부 유럽국가에서는 일찍부터 초중등 교육에 반려동물을 활용하고 있다. 미국의 동물매개 독서프로그램 ‘리드(R.E.A.D)’는 대표적이다. 1999년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공공도서관에서 4~11세 아동을 대상으로 시범운영한 독서 프로그램인 리드는 책읽기를 주저하거나 자신 없어 하는 초등생이 독서훈련견에게 15분간 소리 내 책을 읽는 게 전부다. 얼핏 단순해 보이는 이 독서 프로그램은 독일·이탈리아·프랑스 등 전 세계 25국에서도 초등과정에 도입하고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 자란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타인이나 주변 상황을 인지하는 ‘친사회적인 경향’을 보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반려견과 함께하는 동물매개교육이 초등학생의 생명존중 인식과 친사회성에 미치는 효과(임소영 외)’에 따르면, 성비 구성에 불만을 품고 남학생들과 어울리지 않고 개별과제를 하겠다는 여학생이 있었는데, 교실에 반려견을 넣어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참여하고 자발적으로 자신의 일을 찾아갔다. 이 외에도 교실 뒷자리에 반려견을 두었을 뿐인데, 학생들은 수업 틈틈이 반려견에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거나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자리를 깔아주는 등 배려와 나눔의 친사회적 행동을 했다. 동물과 상호작용할 때 편안한 감정과 친밀감을 높이는 호르몬인 옥시토신 분비가 활성화돼 공감·참여의 감정과 잠재력이 커진다는 게 신경생물학계의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반려동물이 가정이란 울타리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기에 분양 전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식사, 배변, 목욕뿐 아니라 각종 질병을 그때그때 진단하면서 돌봐야 하는데, 가족이라 여기지 않는 이상 평생을 책임지기 어렵다. 이 때문에 중고거래 사이트를 통해 ‘파양’하는 일은 끊이지 않는다. 실제로 지난달 한 유명 중고거래 사이트에 두 살 남짓 된 고양이를 25만원에 분양한다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게시자는 일상을 담은 사진과 함께 “중성화 완료했다” “머리가 똑똑해 ‘손 주세요’ 하면 손을 준다”고 홍보했다. 또 다른 게시자는 고양이를 무료 분양한다면서 설명란에 ‘사용감 있음’이라고 올리기도 했다. 이 사이트엔 개와 고양이 외에도 도마뱀, 잉꼬새 등 다양한 반려동물이 ‘중고’로 거래되고 있다.
반려동물은 아동·청소년기 자녀에게 언어·인지능력 외에도 정서 함양, 생명윤리와 가치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전문가들은 가족처럼 키우던 반려동물이 느닷없이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팔리는 모습을 본 아이들은 씻을 수 없는 충격에 빠진다고 지적한다. 김옥진 원광대 반려동물산업학과 교수는 “동물과 사람을 명확히 구별하는 어른과 달리 아이들은 반려동물을 친구나 형제로 생각한다”며 “가족과 생명을 언제든 돈을 받고 되팔 수 있다는 데 정신적 충격이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족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자존감이 무너져, 키우지 않은 것만 못한 역효과만 일으키는 행동”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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