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국 해외봉사 재점검, 코로나19가 준 기회

김병관 | 한국국제협력단(KOICA) 처장 2021. 4. 12.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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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해외봉사활동은 다양하다. 학교와 마을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는 것도 활동의 하나이다. 환경미화와 주민 정서 함양에 도움이 된다. 그런데 한국 봉사단이 자주 찾는 동남아의 웬만한 나라에는 벽화 그릴 공간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말을 하곤 한다. 왜 그럴까.

김병관 한국국제협력단(KOICA) 처장

코로나19의 글로벌 대확산으로 해외봉사는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다. 코로나 이전 수많은 단체와 대학, 기업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봉사단원을 내보냈다. 언젠가부터 해외봉사 파견 규모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라는 자화자찬을 해왔다. 단기 봉사가 집중되는 여름방학 기간에는 항공권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였다. 그러나 코로나 대확산 이후 봉사단 파견은 거의 중단되고, 파견된 봉사단원도 철수시켰다. 사람들의 뇌리에서 해외봉사의 존재조차 시나브로 희미해지고 있다.

고육책으로 온라인(e-volunteering)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경우도 있지만 현지 봉사를 온전히 대체하기 어렵다. 지금은 역설적으로 해외봉사를 근본적으로 되짚어보기 좋은 시점이다. 코로나19가 제공한 점검과 성찰의 기회인 셈이다. 우리의 해외봉사는 그동안 양적인 성장에 비해 봉사의 본질과 가치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따라서 당장 이 상황을 벗어날 묘안을 찾는 데 골몰하기보다 평소 하지 못한 고민, 즉 해외봉사의 목적과 가치, 내용과 체계를 재정립하는 데 집중해보면 좋겠다.

봉사의 필요와 가치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바이러스 환란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부축해온 수많은 봉사의 힘을 볼 수 있다. 봉사는 무엇보다 나눔의 행위다. 나누는 자원은 소모되는 게 아니라 더 증대되고 재생산된다. 그래서 봉사를 ‘함께 풍성해지는 행위’라고도 한다. 봉사에는 또한 미시적 접근이 필요하다.

현지 주민과 작은 단위에서 함께 이루어내고 문제를 극복한 경험과 구체적 성취는 결코 가볍지 않다. 봉사의 궁극적 지향점은 당면과제 해결이나 상황 개선이 아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와 연대, 일치와 공동체성의 회복에 있다. 나아가 자발성을 토대로 한 참여와 협력의 힘이 공동체의 건강을 회복시킨다. 사회를 변화시키고 전진케 한다.

각 단체와 기관들은 상대를 도와준다는 관점에 사로잡히거나, 자기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활동하면서 자기만족에 빠질 위험성을 살펴봐야 한다. 희생이니 도움이니 하는 감상적이고 상투적인 말로 봉사자와 봉사활동을 활용하려는 유혹도 경계해야 한다. 해외봉사가 스펙을 길러주기 위한 것인 양 주객이 전도되어도 곤란하다. 파견기관의 지나친 성과주의도 성찰해야 한다. 자칫 봉사자들을 쉽게 활용할 ‘값싼 인력’으로 전락시키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동남아에 벽화를 그릴 공간이 남아있지 않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방학기간 집중되는 단기, 노력봉사의 경우 ‘벽화 그리기’ 같은 활동이 만만하기 때문이다. 해외봉사는 가치있는 일이지만, 많은 시간과 돈이 든다. 귀한 자원과 열정이 제대로 쓰이도록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

김병관 | 한국국제협력단(KOICA)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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