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 “적폐청산 1년 내 끝냈어야, 피로한 국민 ‘보복’으로 느껴”

정우상 정치부장 2021. 4. 1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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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상이 만난 사람] 퇴임 후 첫 언론 인터뷰, 문희상 전 국회의장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지난 9일 서울 종로구의 한 사무실에서 이번 재보궐선거와 민주당 그리고 청와대에 대해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60분 인터뷰 중 30분이 지났을 때, 음료수가 도착했다. 대통령 빼곤 권력의 모든 것을 경험했고, 모든 권력자가 가까이 두려 했던 76세 노(老)정객은 커피도 인삼차도 아닌 ‘바나나 맛 우유’에 빨대를 꽂았다. 문재인 대통령, 오만과 무능, 개헌 그리고 동서고금의 정치철학에 대해 종횡무진 이야기하던 문희상 전 국회의장과 바나나 맛 우유. 부조화 같았는데 의외로 잘 어울렸다.

작년 5월 국회의장 퇴임 이후 첫 언론 인터뷰였다. 그는 인터뷰를 사양한 이유를 묻자 “별로 좋은 말이 안 나올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민주당 그 자체다. 김대중 대통령 때 청와대 정무수석, 노무현 대통령 때 청와대 비서실장과 당 대표, 문 대통령 때 국회의장을 지냈다. 친노, 친문이었고 비주류였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야당과 비주류는 소통 갈증을 느낄 때마다 그를 찾았다. 비판보다는 조언을 해달라고 설득해 만든 인터뷰 자리였다.

-서울, 부산시장 선거 결과를 보면서 참담했을 것 같다.

“민심의 폭발, 민심의 쓰나미였지. 이럴 때는 백약이 무효야. 전략도, 정책도 아무것도 필요가 없어. 밀려오는 민심의 쓰나미로 그냥 초토화되는 거야. 거기에 이의 제기를 하는 건 의미가 없어. 현상을, 현장을 직시하는 수밖에 없다.”

-오만이다 무능이다, 부동산 때문이다 여러 진단이 나오고 있다.

“한마디로 신뢰를 잃은 거야. 무신불립(無信不立), 신뢰를 잃으면 무슨 말을 해도 믿지를 않아. 내곡동이다 뭐다 저놈이 나쁜 놈이라고 말해도 ‘너희 말은 못 믿겠다’는 거지. 신뢰를 잃으면 국가와 공동체 의식이 없어지고, 지도자가 역할을 할 수가 없어. 지금은 신뢰를 회복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어.”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동아시아문화센터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작년까지 대통령과 여당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던 민심이 차갑게 돌아섰다.

“오만과 독선 때문이다. 이 두 가지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그 바탕에는 이분법적 대결 정치가 있는 거야.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한 쪽이 패배한 쪽을 보듬어야 하는데 그걸 안 한 것이 오만과 독선이지. "

그는 민주당을 떠난 금태섭 전 의원 이야기를 꺼냈다. “바른말을 하는 사람을 내쫓은 거야. 당이 큰 실수를 한 것”이라며 “그렇다고 당을 버리고 나가는 것에 대해선 난 비판적”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친문 일색이고, 국회 상임위도 독식했다. 소수파와 야당이 설 자리가 없었다.

“민주 정당은 반대 목소리를 포용해야 해. 그리고 야당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고. 그건 대통령도 마찬가지야. 다른 목소리를 듣되 국가적 일에는 화합하는 것이 협치 아닌가. 그런데 지금은 경쟁하는 라이벌은 없고 타도해야 할 적(enemy)만 있어. 정권 잡으면 나머지를 몰살하고 적폐 청산을 한다며 보복하고, 당한 사람들은 다음에 복수하겠다고 다시 권력을 쟁취하려 하고. 악순환이다. 승자가 패자를 포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적폐 청산 말이 나와 다시 물어봤다.

“적폐 청산은 1년 안에 끝냈어야 해. 100일의 마스터플랜을 갖고 1년 안에 끝내야지. 전광석화처럼. 그런 다음 개혁과 혁신으로 가야 하는데 적폐 청산에 몰두하나 보니 국민들이 ‘보복’이라 느끼고 지루함을 느낀 거야. 그러니까 국민적 지지를 잃는 거지.”

-그걸 알면서도 최근까지도 ‘검찰 개혁’이다 윤석열이다, 추미애다 하지 않았나.

“그게 실력의 문제야. 그래서 무능하다는 말을 듣게 돼.”

-문 대통령은 통합을 말하면서 분열을 야기했다.

“이번 선거는 그 모든 것에 대한 심판이었지. 그 모든 것에 대한…. 모든 걸 다 정치화해서 싸운 거야. 더불어 사는 상생이 아니라 서로를 죽이는 공멸의 정치에 몰두했어. 거기에는 우리 책임도 있지만 야당도 언론도 책임이 있어. 시시비비를 가려야지 어느 편을 들려고 한 거야. "

-청와대, 국회, 행정부 모든 것을 가졌고, 모든 것을 ‘이니 맘대로’ ‘민주당 맘대로’ 하지 않았나.

“국민들이 불신이 커진 이유는 오만과 비효율성(무능) 때문이야. 국가 경영에서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어.”

그는 무능이라는 말 대신 ‘비효율성’이라는 말을 쓰다가 결국에는 ‘무능’이라는 말로 돌아왔다.

2018년 8월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오찬을 하고 있는 문희상 전 국회의장. /연합뉴스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좀 하지 그랬나.

“대통령 덕을 본 사람이 대통령을 비판한다… 그건 도리가 아니지. 만나면 별로 좋은 말도 안 나올 것 같고.”

문 의장은 2018년 12월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에게 “혼밥하십니까?”라고 물었고, 대통령은 웃으며 답을 피했다. 문 의장에게는 친문들의 댓글 폭탄이 이어졌다. 그는 “친문들한테 욕 잔뜩 먹었다”고 했다.

-국회의장 퇴임 이후 문 대통령을 만났나.

“혼밥 발언 때문인지 그 이후로 한 번도 안 부르시더라고. 내가 혼밥하슈?라고 물은 건 다양한 사람들을 자주 만나라는 취지였다. 대통령에겐 식사 한 번이지만 대통령과 식사한 사람들에게는 평생 못 잊는 추억이거든. 1시간이 되면 되는 건데, 이런 자리를 자주 하시라고 한 건데…”

-임기 1년 남았는데 이제라도 소통이 가능할까.

“그런데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도 임기 1년 남으니까 그런 밥 자리를 안 하려고 하더라고. 의욕이 없을 때는 사람 만나는 것도 재미가 없거든….”

-성공한 대통령, 실패한 대통령을 다 보지 않았나. 문 대통령이 임기 1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의외의 답이 나왔다. “사실 성공한 대통령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도.” 그는 “성찰과 혁신은 기본”이라며 “그러나 무리하거나 쇼나 이벤트를 하려고 해선 안 된다. 국민 신뢰를 회복하려면 민생의 문제에서 차곡차곡 점수를 따야 한다”고 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선 가급적 말을 아꼈다.

“휴머니스트야. 사람이 먼저다 이거지. 따뜻하지. 그러나 정치 리더로서 부족한 것이 결단력과 배짱이야. 결단력 있게 잘라 낼 때는 잘라내야 하거든. 예를 들어 추미애, 윤석열 사태, 조국 임명. 대통령 심정은 이해하지만 잘못한 거야. 위기에 처할 때는 과감하게 결단력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걸 못 했어.”

문 대통령에 대한 쓴소리를 힘들어하는 것 같아 화제를 민주당으로 옮겨야 했다.

-도종환 비대위가 들어섰는데, 또 친문이다. 새지도부에도 친문들이 줄 서 있다. 장관도 친문 일색이다.

“위험 신호야. 특정 계파가 독점하면 절대 안 돼. 그것은 망하는 정당이지 민주 정당이 아니야. 소수든 한 사람이든 작은 목소리를 들어야 해. 민주주의는 다양성이 생명이야. 잡탕당이라는 말을 들어도 민주적 절차만 지켜지면 돼. 그런 걸 못 해서 심판받은 것 아니냐. 한 계파가 당의 모든 의사 결정을 독점하고 당직 운영, 공천권을 독점하는 것이 오만의 극치라는 거야. 그런 사람들이 설치는 게 오만이야. 자기들끼리 멋대로 해먹겠다는 건데 그건 안 돼.”

-민주당에 기회가 있을까.

“이번 보궐선거는 여당에는 불행 중 다행이야. 대선 1년 전에 백신을 맞은 거지. 하늘이 준 기회야. 1년 안에 민생을 챙기며 신뢰를 회복하면 기회는 있다.”

-이해찬 대표처럼 김어준 방송 한번 나가보지 그랬나.

“안 나가, 안 나가….”

-민주당이 성찰과 혁신을 잘할 것으로 보나.

“집단 지성에 의해 저절로 바뀔 거라고 봐. 그것밖에 없거든. 전당대회를 통해 어느 정도 문제점이 걸러질 것으로 봐. 되는 집은 그렇게 걸러지고 안 되려면 별일이 다 생기는 거고.”

문희상은 예전부터 개헌을 주장해왔다. 승자 독식 구조 때문에 현재의 적대적 정치 구조가 만들어졌고, 이를 위해선 분권형 개헌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인터뷰에서도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문 대통령이 개헌에 적극 나서지 않은 것을 아쉬워했다. 그는 “싹쓸이라는 게 좋은 게 아니야”라고 했다. 하지만 현재 정치 구도는 개헌보다는 다음 대통령 선거로 모든 것이 쏠리고 있고, 국민들도 개헌을 크게 반기지 않는다.

그는 현역 시절 위트가 넘치는 정치인이었다. 유머에는 남을 비하하는 것과 자기를 낮추는 것이 있는데 그는 후자였다. 아프리카 돼지열병 때는 돼지 모자를 쓰고 나와 “돼지는 돼지가 살려야 한다. 동족을 살려달라”고 했다. 과체중 때문인지 계단 오르는 것도 마다했던 그였다. 그랬던 문희상이 퇴임 1년 만에 10㎏ 이상 체중이 줄었다고 한다. “요즘 아내와 매일 30분씩 걸어. 필라테스라는 것도 하고 말이지. 내가 이렇게 몸과 마음이 편해도 되는지 모르겠어.”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동아시아문화센터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문희상

작년 5월 국회의장을 끝으로 정치 현역에서 물러났다. 1945년 경기 의정부에서 태어나 경복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87년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연합청년동지회(연청) 초대 회장을 맡았고, 1992년 14대 총선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때 모두 청와대에서 일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일할 때 문재인 대통령이 민정수석이었다. 열린우리당 당의장을 지냈고, 민주당에서 여러 번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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