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292] 명태와 박치기
80년대 초반인 20대 시절에는 인생 목표가 없었다. 사회 적응에 약간 실패한 듯한 아웃사이더들하고 많이 어울렸다. 그래도 마음이 허할 때는 지리산 일대를 돌아다니곤 하였다. 뒤로는 남덕유산이요, 앞에는 지리산이 서 있는 산골 동네 함양에 가면 인산(仁山) 김일훈(金一勳, 1909~1992) 선생이 따뜻하게 맞아 주셨다. 선생은 우선 풍채가 선풍도골(仙風道骨)이었다.
한민족의 선가적(仙家的) 전통을 보존한 인물이었다. 그가 이야기한 여러 가지 ‘신약(神藥)’도 수천 년간 선가의 도사들 사이에서 이어져 오던 전통 처방의 한 줄기이다. 이북 출신 중에서 동무 이제마 선생이 ‘사상의학’을 정립했다고 한다면, 인산은 이 땅의 민초들에게 신약을 전해주고 간 업적이 있다. 어느 날인가 명태 이야기를 해 주셨다. “명태는 말이야. 독을 풀어주는 데 특효가 있어. 주독(酒毒), 농약독도 잘 풀어.” “왜 하필 명태가 그런 효과가 있는지요?” “하늘에 있는 북방 7수 가운데, 여성(女星)의 정기를 받아서 바닷물 속의 수정(水精)으로 성장하지. 북방 수(水) 기운이 명태에게 뭉쳐 있어. 북방 수 기운은 해독 작용이 강해. 그래서 술꾼에게 생태탕이 좋은 거여.”
명태는 오호츠크해에서 출발하여 일본의 서쪽을 돌아 한랭 기류를 따라 한반도의 동해안을 거슬러 올라간다. 동해안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추운 겨울인 동지 무렵에 강릉, 주문진, 속초 근방에서 잡혔다. 동지 무렵에 잡힌 명태를 바닷가 덕장에서 말린 것이 약이 되는 셈이다. 요즘에는 기후변화로 러시아산 명태를 고성, 속초 바닷가에서 말린다고 한다.
인산 이야기 가운데 또 하나 기억에 남는 대목이 바로 박치기였다. 이북의 평안도는 전통적으로 박치기가 강했다. 선생도 10대 후반에는 박치기의 고수였다. 몸을 공중으로 점프하였다가 앞으로 날아가서 상대방의 이마빡을 들이받는 무술이다. 평안도 박치기에 맞으면 대개는 꼬꾸라졌다고 한다. 왜정 때 주먹의 일인자 시라소니도 이 박치기의 고수였다. 박치기 연습은 처음에는 기둥에 새끼줄을 감아 놓고 한다.
그다음에는 새끼줄을 벗겨 내고 한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맷돌에다가 팥을 놓고 이마로 깨는 연습을 한다. 박치기로 팥을 갈아버리는 셈이다. 70년대 TV에서 레슬러 김일의 박치기를 보던 인산 왈. “저 정도 박치기해 가지고는 평안도에서 맞아 죽기 쉽다.” 평안도 박치기의 전설을 여러 번 들었던 필자는 현재 UFC에서 박치기를 허용하지 않는 룰을 아쉽게 생각한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걱정 너무 많다? 불안장애일수도...방심은 금물
- HL만도, 카카오모빌리티와 ‘자율주행 주차로봇 서비스’ 개발한다
- 이원석 총장 “검찰에 어려운 환경이지만, 옳은 일을 옳게 하라”
- ‘오후 6시 이후 재판 자제’ 법원 노사 합의, 노동청 시정명령으로 철회
- ‘AI 디바이드’ 시대, 당신은 준비됐나요
- 내·외국인 관광객용 기후동행카드 단기권 출시
- AI 활용 능력을 높이기 위해 진짜 필요한 건...
- EPL서 VAR 사라지나... 20구단 모여 ‘폐지 투표’ 한다
- 코앞 러 영토에 적 수만명 있어도… 우크라, 서방무기 못쏜다?
- 日 경제, ‘반도체 부활’ 외치지만 이것부터 해결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