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잘 산다는 게 뭘까?

조숙경 2021. 4. 1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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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신관 앞 화단 모서리에 바싹 야윈 할아버지 한 분이 앉아 있다. 축 늘어뜨린 한쪽 손에는 두툼한 약봉지가 들려 있다.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가에 병색이 완연했다.

할아버지는 고개를 숙인 채 바닥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구부정한 온몸에서 풍기는 고뇌와 시름이 나에게 그대로 전해져왔다. 난 ‘이분에게도 희망을 주세요’라고 속으로만 말하며 그를 무심히 지나쳐갔다.

작년 여름 암 수술을 했다. 두 달간의 양성자 치료를 끝내고 6개월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아야 했다. 재발률이 높은 암이라 병원에 가기 며칠 전부터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다. 그동안 내 몸을 충분히 돌보지 못했다는 자책이 들었다. 처음엔 가공식품을 멀리하고 신선한 자연식품을 섭취하며 긍정적인 생각과 함께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겠다고 굳게 다짐했었다. 그러나 그 다짐은 얼마 가지 못했다. 예전처럼 난 또 일상에 묻혀 살고 있었다.

주치의는 몇 가지 검사 후에 다 괜찮다며 6개월 후에 다시 보자고 말했다. 그 말은 마치 6개월의 생명을 담보로 세상에서 잘 살다 다시 오라는 말로 들려왔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담보받은 6개월을 또 어떻게 살아야 하나 걱정이 앞섰다.

잘 산다는 게 과연 뭘까? 생각이 많아져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걸음 따라 굳어 있던 마음과 머리가 심장 박동에 맞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길가 벚나무에서 떨어지는 수많은 꽃잎이 그림처럼 흩날렸다. 아름다웠다. 때가 되면 알아서 꽃이 피고 지는 계절의 순환이 경이로웠다. 깊게 숨을 내쉬고 숨을 들이마셨다. 어쩌면 이렇게 숨을 쉬는 이 순간, 후회로 얼룩진 과거도 불투명한 미래도 아닌 바로 지금, 나는 살아 있는 게 아닐까? 그래. 지금 이 호흡의 순간을 오롯이 느끼는 것, 그게 잘 사는 거겠지.

혹 그 할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호흡이 남아 있는 한 아직 삶은 끝나지 않은 거라고 감히 소리 내어 말씀드리고 싶어진다.

/조숙경 2021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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