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 “그의 빈자리 너무 커” 교황 “미래세대 위해 헌신”

파리/손진석 특파원 입력 2021. 4. 12. 03:01 수정 2024. 1. 5.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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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필립공 추모 물결
10일 왕실을 대표해 추모 메시지를 발표하는 찰스 왕세자/AP 연합뉴스

10일 정오(현지 시각) 런던 템스강변에서 왕실 포병대가 41발의 조포(弔砲)를 1분 간격으로 쏘았다. 전날 만 99세로 별세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편 필립공을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왕실 포병대는 1947년 여왕과 필립공이 결혼할 때와 1952년 여왕이 국왕으로 즉위하던 때 축포를 쐈던 바로 그 대포들을 다시 꺼내 사용했다. 같은 시각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지브롤터에서도 추모의 대포를 동시에 발사했다. 전날 웨스트민스터사원은 조종(弔鐘)을 99차례 울렸다.

고인의 장남 찰스 왕세자는 10일 왕실을 대표해 1분 30초짜리 영상 메시지를 발표했다. 그는 침통한 표정으로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는 지난 70년간 여왕, 가족, 국가, 영연방 전체에 놀라울 만큼 헌신적인 봉사를 해왔다”고 했다. 그는 감정에 북받친 듯 “나의 가족과 나는 아버지가 몹시 그립다”며 “마이 디어 파파(my dear papa)는 특별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99세 아버지를 떠나보낸 72세 아들의 애틋한 감정이 묻어났다.

영국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필립공은 지난 2월 중순부터 심장 이상 등으로 한 달간 입원했을 때 자주 아들 찰스를 불러 자신이 죽고 나면 여왕을 어떻게 보필해야 하며, 앞으로 왕실을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일간 더타임스는 왕실 소식통을 인용해 “필립공이 (지난 2월) 입원한 이후 부자(父子)가 거의 매일 연락을 했다”고 전했다. 필립공은 3월 초 심장 수술을 받은 뒤 서둘러 퇴원하기를 원했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하고 런던 근교 윈저성의 자신의 침대에서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동안 왕실 안팎에서는 필립공과 찰스 간의 부자지간은 부각되지 않았다. 왕위를 물려받는 사이인 모자지간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게다가 찰스는 다이애나와 이혼하고 20대 시절 원래 연인이었던 카밀라 파커 볼스와 재혼하는 과정에서 필립공의 속을 썩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간 데일리메일은 “부자지간이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필립공이 자신의 마지막 1년 동안은 찰스와 끈끈하게 지냈다”고 전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필립공이 별세한 뒤 “그의 죽음은 나의 인생에 큰 상실감을 남겼다”고 말했다고 여왕의 차남인 앤드루 왕자가 11일 언론에 전했다. 왕실 인스타그램은 부부의 사진과 함께 여왕이 1997년 금혼식(결혼 50주년)에서 “그는 나의 힘이 되어주었고 내 곁에 있었다”며 “나와 가족, 그리고 영국은 그에게 많은 것을 빚졌다”고 말한 연설 내용을 띄워 여왕의 심정을 간접적으로 전했다. 필립공은 여왕을 애칭으로 “양배추”라고 부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어에서 연인끼리 ‘자기야’라고 부를 때 양배추(chou)란 표현이 들어간 데서 유래한다.

헌화하는 어린이 -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남편 필립(99) 공이 별세한 9일(현지 시각) 왕실 거처인 런던 버킹엄궁 앞에서 한 어린이가 필립 공을 추모하는 꽃다발을 놓고 있다. 왼쪽 작은 사진은 10일 필립 공의 장남 찰스 왕세자가 사저인 하이그로브 앞에서 왕실을 대표해 영상 메시지를 발표하는 모습. 그는 “마이 디어 파파(my dear papa)는 특별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AFP·AP 연합뉴스

필립공과 여왕은 대체로 화목했지만 갈등이 없지는 않았다. 특히 필립공은 1952년 여왕이 즉위했을 때 자신의 성 마운트배튼을 가족의 성(姓)으로 사용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여왕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왕실의 원래 성인 ‘윈저’를 계속 쓰기로 결정하면서 부부간 사이가 한동안 서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필립공은 금혼식 당시 “결혼의 필수 요소 중 하나는 인내”라며 “내가 할 일은 첫째도 둘째도 그리고 마지막도 결코 여왕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만 94세인 여왕이 남편 별세를 계기로 왕위를 물려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확률이 낮다고 영국 언론들은 보도했다. 이미 내년 즉위 70주년 행사가 예고됐고 여왕이 여전히 건강하기 때문이다. 다만, 공식 업무 중 일부를 찰스 왕세자 등 왕실 일원에게 나눠줄 가능성은 남아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필립공의 귀족 작위인 에든버러 공작 지위는 그의 4남매 중 막내인 에드워드 왕자에게 물려주게 된다. 에드워드 왕자가 1999년 결혼할 당시 여왕과 왕실이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세계 각국 주요 지도자들은 필립공의 별세를 추모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족에 대한 헌신과 미래 세대의 교육과 발전을 위해 몸을 바친 분”이라고 했고,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그가 고양한 가치 있는 큰 뜻과 그가 영감을 준 젊은이들에게서 그가 미친 영향이 분명히 나타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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