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세상]선거와 승패
[경향신문]
선거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다. 하지만 당락이 진정한 승패의 기준일지 의문이다. 민주주의에서 선거가 존재하는 것은 시민을 대리하는 대표자를 뽑는 것이고, 가장 적절한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핵심이다. 최선의 선택을 위해서는 유권자의 판단에 필요한 충분한 정보 제공과 그 정보에 기초한 심사숙고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후보자에게는 당락이 중요할지 모르지만 사회로 보면 최선의 선택이 승리이고 반대는 패배이다. 우리 사회가 이번에 성공했는지 여부는 지금 당장 판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과정이 실패의 가능성을 예비하고 있음을 부정하기도 어렵다. 충분한 정보가 주어지지 않았고, 진지한 고민이 이루어졌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이번 선거에서도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한 언론은 패자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 등이 참여한 미디어감시연대가 행한 선거보도 모니터 결과를 보면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반복되는 여론 조사 중심 보도, 미약한 인물·정책 검증 보도, 유력 후보 갈등 중심 보도, 유권자 관심의 소외, 군소 후보 무시 등등. 지지·당락 가능성 중심의 여론 조사 보도는 호기심을 충족시킬 뿐 적합한 후보 선택에 필요한 정보 제공과 무관하다. 인물·정책 검증 보도는 선거 보도의 핵심이다. 하지만 이번 언론의 인물 검증 보도는 상대 후보의 공격성 폭로를 옮겨놓는 수준에 머물렀다. 후보자의 과거 정치·행정 경력을 참고하여 후보의 공약 이행을 신뢰할 수 있는지 여부를 검증하는 기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정책 관련 보도의 양도 전체 선거 보도의 일부에 불과했을 뿐만 아니라 검증보도는 더욱 적었다. 부동산 특히 LH의 부정행위는 중요한 관심사일 수는 있으나 서울 시정이 부동산만 다루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서울시장은 서울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복지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다. 호기심 충족을 위한 여론 조사를 유권자가 관심을 두는 의제를 추출하는 조사로 전환하고 이 결과를 바탕으로 후보자의 정책을 심층적으로 검증하는 보도를 했다면, 이번 선거에서 누가 당선됐든 유권자와 유권자의 판단을 도운 언론은 승자였을 것이다.
언론은 이런 비판에 이전보다 열악해진 기사 유통 구조를 내세워 변명할지 모른다. 포털을 중심으로 기사가 소비되는 환경에서 경마저널리즘에 기대지 않고, 자극적인 기사를 제공하지 않고 수용자의 클릭을 받을 수 있겠냐고. 하지만 이는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라는 논쟁의 문제가 아니다. 유통 환경이 발목을 잡는다면 이를 해결하는 것도 언론의 과제일 뿐이다. 유권자인 시민에게 그 위험성을 꾸준히 설득하는 것도 언론의 몫일 수 있다. 가치 없는 기사 생산을 합리화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 최소한 유력한 언론들이라도 바람직한 언론 수용의 사회적 가치를 강조하고, 이를 충족하는 좋은 콘텐츠를 생산해야만 한다. 물론 좋은 콘텐츠가 수용자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많이 있음을 안다. 그리고 언론은 좋은 콘텐츠를 생산해도 소비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언론은 좋은 콘텐츠가 더 많이 선택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한 노력도 해야 한다. 좋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이 경쟁력이 되려면 좋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수용자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좋은 콘텐츠를 선택하는 문화적 토양을 만들려는 언론의 노력이 필요하다.
지나간 선거 보도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내년에 서울·부산 시장보다 더 중요한 대통령 선거가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라서 언론 보도가 더 신중해지고, 충분한 정보 제공이 이루어질까? 과거를 돌아보면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오히려 더 정략적인 보도, 더 표피적이고 갈등 중심의 보도에 매몰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언론은 다시 패자가 되고, 사회도 패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좋은 콘텐츠 생산 방법을 고민하고 좋은 콘텐츠 소비 환경을 만드는 것은 앞으로 1년간 언론 앞에 놓인 과제다.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자율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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