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아의 날씨와 얼굴]이토록 구체적인 가축 동물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2021. 4. 1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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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동물이 무엇인지 배우며 살아가고 있다. 오랫동안 나에게 동물은 강아지나 고양이나 길가의 비둘기였다. 혹은 영상 속 사자나 돌고래였다. 한편 치킨과 삼겹살과 사골 국밥이 동물이라는 것은 잘 실감할 수 없었다. 그것들은 제품에 가깝게 느껴졌다. 양념된 닭다리살을 뜯을 때 닭의 구체적인 생애가 상상되지는 않았다. 불판 위에서 익어가는 삼겹살을 볼 때 구체적인 돼지가 그려지지도 않았다. 사골 국물을 마시며 구체적인 소를 떠올리기란 더욱 어려웠다.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고기가 동물임을 실감하게 된 건 전염병 때문이었다. 코로나보다 더 먼저, 더 자주, 더 거대한 규모로 축산업을 휩쓴 전염병들이 있었다. 조류독감, 구제역, 아프리카돼지열병 등이었다. 전염병이란 어마어마하게 많은 동물의 살처분을 의미했다. 살처분이라는 단어가 기사에 적혀 있을 때에는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날마다 언론을 채우는 숱한 난리 중 하나 같았다.

하지만 살처분 현장의 이미지를 보는 것은 아주 다른 경험이었다. 사진과 영상 속에서 여러 대의 포클레인이 아주 커다란 구덩이를 판다. 한 마리라도 감염이 확인되었을 경우 그 축사의 모든 동물을 죽이는 경우가 허다하므로 구덩이는 죽음의 규모만큼 거대해진다. 셀 수 없이 많은 소, 돼지, 닭이 구덩이로 밀어넣어진다. 그들 중 누군가는 이미 죽어 있고 누군가는 살아 있다. 고통 없이 죽이기 위한 시간과 비용을 충분히 들이지 않아서다. 살아 있는 동물은 어마어마하게 겁에 질려 있고 안간힘을 다해 도망치려 한다. 본능적인 도망이다. 그 본능은 나에게도 있다. 달아나는 동물의 얼굴에서 내가 느끼는 것은 유사성이다. 그들과 나는 다른 점보다 비슷한 점이 훨씬 많다. 그곳에서라면 우리들 중 누구라도 도망을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살처분은 신속하게 진행되고 대개의 동물은 달아나지 못하며 이런 일은 무참하게 반복된다.

돼지는 태어난 후 이빨 제거
수평아리는 바로 ‘가스실’로
인간 위해 착취당하는 동물들
이런 구조를 바꿀 수 있는 건
사람의 ‘비건 지향 생활’이다

전염병과 살처분은 공장식 축산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다. 전염병이 돌지 않기가 더 어려울 정도로 끔찍한 환경에서 동물들이 태어나고 키워지고 죽임을 당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먹는 고기의 99% 이상이 공장식 축산에서 생산된다. 현대에서의 육식은 고통스러운 밀집 사육 현장의 생산물을 구매해 입에 넣고 씹고 소화하는 행위다. 우리들 중 대다수는 공장식 축산을 발명하지도 않았고 운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일조하고 있기는 하다. 치킨이나 햄이나 탕수육 등 육가공품을 먹을 때마다 축산업은 계속해서 공고해진다. 축산업이 지속되는 한 살처분도 계속될 것이다. 살처분은 육식의 결과이자 과정이다.

살처분이 유독 끔찍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공장식 축산의 일상에 비하면 말이다. 고기로 만들어지기 위해 강제로 번식되어 탄생한 수많은 새끼 돼지는 태어나자마자 마취 없이 강제로 이빨이 뽑히고 꼬리가 잘린다. 비좁은 축사에서 받는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해 다른 돼지의 꼬리를 물어뜯을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수퇘지의 경우는 고기 잡내 제거를 목적으로 마취 없이 거세를 당하기도 한다. 병아리들은 태어나자마자 암수로 감별되어 나뉘고, 그중 수평아리들은 상품성이 없다는 이유로 그라인더에 갈리거나 가스사를 당한다.

살아남은 암평아리의 삶도 죽음보다 낫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몸이 망가질 만큼 밤낮없이 알을 낳도록 강제당하거나, 스스로 뼈마디가 골절될 만큼 살찌워진다. 닭가슴살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해서인데 스스로 체중을 버티지 못할 정도로 괴로운 신체가 된다. 암소들은 우유 과잉 생산으로 유방염을 앓고 다리를 전다. 그들 종의 모습은 원래 이렇지 않았다. 공장식 축산이 품종을 개량해온 결과다. 품종 개량은 동물 신체를 손상시키며 불구로 만든다. 이것은 가축화된 동물의 구체적인 모습 중 아주 일부일 뿐이다.

가공되거나 요리된 고기에서 동물은 매우 추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고기는 아주 구체적으로 고통스러웠던 동물의 결과다. 이제 나는 치킨과 삼겹살과 사골 국물 등이 동물임을 실감한다. 그들을 추상적으로 가리고 싶지 않아서 이 글을 쓴다.

가축 동물은 나처럼 고통을 느끼는 존재이며, 고기와 유제품은 고통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물 중 하나인 우리는 그 고통을 헤아릴 줄 안다. 이 상상의 능력은 아름다운 우유 크림 케이크에서도 가축의 고통을 보게 한다. 공장식 축산과 낙농업이라는, 거대하고 광범위한 착취의 시스템을 어떻게 해체할 수 있는가? 비건 지향 생활은 결정적인 대답 중 하나다. 동물을 착취해서 얻은 식품과 제품을 최대한 소비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이 세계의 고통의 총량을 확실하게 줄인다. 구체적인 가축 동물을 배움으로써 시작되는 일들이다. 마찬가지로 동물인 우리 자신에 대한 공부이기도 하다.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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