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현·조주빈·손정우..90년대생 범죄자들의 3가지 특징
‘노원구 세 모녀’를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9일 검찰에 넘겨진 김태현(25)은 ‘리그 오브 레전드(롤)’란 온라인 게임에 심취한 1996년생이었다. 그는 취재진 앞에서 준비된 원고 읽듯 차분하게 “숨 쉬고 있는 것도 죄책감이 든다”며 무릎을 꿇더니, 스스로 마스크를 벗어 보이기도 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지금껏 보지 못한 특이한 패턴의 범죄자”란 분석이 나왔다.
아동·청소년 등 여성 70여 명의 성 착취 영상을 만들고 비밀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해 유포한 소위 ‘박사방’ 사건의 주범 조주빈(26)은 1995년생이다. 1심에서 징역 45년을 선고받고, 국내 성범죄자 중 최초로 신상도 공개됐다.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인 손정우(25)는 1996년생이다. 손은 특수 프로그램으로만 접속 가능한 인터넷 ‘다크웹’을 통해 전 세계에 영·유아 등 아동 포르노를 판매하다 붙잡혔다.
최근 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킨 이 범죄자들은 모두 1990년대 중반에 태어난 소위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세대다. 날 때부터 인터넷과 디지털 기기를 접했다. 이들은 우락부락한 인상에 칼 쓰고, 주먹 휘두르는 기존의 흉악범들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①현실-사이버 오가는 초연결 범죄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범죄는 ‘오프라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현실과 온라인을 수시로 오가며 범행 대상을 찾고, 둘을 조합해 상대를 압박한다. 김태현은 온라인 게임에서 알게 된 A(25)씨가 만나주지 않자 결국 현실에서 살해했고, 조주빈 역시 카카오톡 익명 대화방이나 텔레그램을 통해 만난 일면식도 없던 여성 70여 명을 성 착취 대상으로 삼았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성폭력을 저지르기 위해 물리적 공간에 여성을 납치하거나 가둬야 했지만, 지금은 신상 정보를 온라인에 유포하겠다는 협박만으로도 여성이 자신의 방에서 자해하게 만들 수 있다”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초연결성을 이용해 범죄가 고도화한 것”이라고 했다. 경계를 수시로 오가며 범죄 동기도 높아진다. 이상훈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는 “손가락 끝으로 만드는 사이버 공간은, 부모와 친구가 사는 세상과는 다른 세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며 “현실에서 배운 사회 규범이 무감각해지고 범죄 의식도 흐려진다”고 했다.
②인터넷서 ‘범행 수법' 빠르게 습득
이들에겐 인터넷이 ‘범행 수법 창고’였다. 김태현은 스마트폰으로 ‘사람 빨리 죽이는 법’ 등을 검색한 뒤, 흉기로 경동맥(頸動脈)이 지나는 목 부위를 공격해 세 모녀를 연달아 살해했다. 살인 전과가 없었지만 온라인을 통해 프로 수준의 범죄자가 된 것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는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많아 범죄 지능이 뛰어나고 범행 수법도 빠르게 배운다”고 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자퇴한 손정우는 만 19세 때 일반인은 알기 어려운 비밀 웹사이트 ‘다크웹’에서 한 사이트를 사들였고, 이게 ‘아동 포르노’ 판매의 시발점이 됐다. 이상훈 대전대 교수는 “부모가 보기에는 스마트폰, 컴퓨터를 하며 조용히 성장한 아이들이 사이버 공간에선 상상도 하지 못 할 터널을 파고 있을 수 있다”며 “스마트폰이 사이버 공간으로 통하는 통로인 동시에 손에 쥐어진 범죄 도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③'즉각 해결' 온라인 규범이 현실로
현실에선 불법도 온라인 세계에선 게임이다. 문제가 생기면 즉각 해결하는 것이 왕도(王道)인 곳이다. 이웅혁 교수는 “김태현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3명(세 모녀)이나 빠르게 살해한 것은 온라인의 즉각적 반응이 범행으로 구현된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디지털 세대는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훨씬 길다”며 “가족 해체로 가정 내에서 친사회적 규범을 익히기 어려운 이들이 온라인 세계에서 잘못된 규범을 배우며 자란 것”이라고 했다.
조주빈과 손정우는 성 착취 영상 판매로 가상 화폐 등 돈을 벌어들였다. 윤김지영 교수는 “기성세대가 어린 남성들의 ‘디지털 성범죄’를 성적 호기심 정도로 가볍게 여기는 사이 이들에겐 사이버 범죄가 놀이이자 방 안에서 즉각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블루오션이 됐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 범죄는 기존의 경찰차 타고 순찰하는 식을 넘어선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상훈 교수는 “범죄의 국면이 전환됐다”며 “눈앞에서 피가 뚝뚝 떨어져야 심각한 사건이란 고정관념을 버리고, 사이버 범죄에 대한 구체적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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