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플라스틱 인간'이 되지 않으려면

입력 2021. 4. 12. 00:33 수정 2021. 4. 12.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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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1인당 소비 세계 1위
환경 오염시키고 건강도 위협
인류 공동 대응할 국제규범 필요
기업·정부·개인 다함께 나서야
홍윤희 세계자연기금(WWF) 한국본부 사무총장

“당신은 지난 일주일 동안 신용카드 한장을 먹었다.” 의아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이다. 세계자연기금(WWF)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1인당 매주 평균 5g의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하고 있다. 지구에서 가장 깊은 해구에서 발견된 심해 갑각류의 몸속에서도 플라스틱 성분이 발견됐다. 이 생물 종에는 플라스틱을 뜻하는 ‘플라스티쿠스(Plasticus)’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제 우리도 ‘플라스틱 인간’으로 불리는 게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다.

기존의 소재에 비해 뛰어난 물성과 저렴한 가격으로 플라스틱은 지난 세기 동안 가장 사랑받는 자원이었다.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1950년 이후 약 200배 이상 증가했다. 우리나라는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이 2017년 기준 127.5kg이나 될 정도로 플라스틱을 많이 쓴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짧은 기간 폭발적으로 늘어난 플라스틱은 이제 환경 오염은 물론 인류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다.

플라스틱 문제가 더욱 심각한 이유는 피해 범위가 모든 지구촌이기 때문이다. WWF의 글로벌 이니셔티브 ‘No Plastic in Nature’는 3가지 측면에서 플라스틱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우선 플라스틱을 둘러싼 비즈니스 생태계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기업을 중심으로 플라스틱 제품의 설계·생산·유통·소비·폐기·재활용 등 전 과정에 걸친 변화가 필요하다.

기업은 불필요한 플라스틱 생산을 줄이는 디자인을 개발하고, 대체 원료를 개발해야 한다. 또한 재활용과 재사용이 가능한 디자인 결정과 플라스틱 제품 회수율도 고려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자연으로 유출되는 플라스틱 쓰레기양을 최소화하고, 플라스틱 산업 구조를 지속가능한 모델로 전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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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정책 변화도 필요하다.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자원의 순환경제 정책을 적극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2018년 ‘제1차 자원순환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제품의 설계 및 생산공정의 중요성과 새로운 경제 체제로의 전환을 강조하는 유럽에 비해 우리나라는 주로 폐기물의 감량·처리·재활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렇듯 개별 국가의 대응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인류 전체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국제 규범이 필요하다. 아직은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한 제한·관리·처리에 대한 국제적 기준과 합의가 없다. 몇 년째 플라스틱으로 인한 해양 오염을 막는 유엔 국제 조약을 맺자는 움직임이 있지만 국가별 이해관계로 인해 진전이 없다.

플라스틱 쓰레기 유출이 특히 집중된 중국·인도네시아·필리핀·베트남 등 아시아 5개 지역에서 집중적인 대응을 병행해야 한다. 플라스틱은 전 세계에서 사용하지만, 지역별 관리체계 및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이들 지역에서 특히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전 세계는 바다로 연결돼 있다. 아시아 5개국 밖에 사는 사람들도 플라스틱 오염 피해를 본다. 전 세계 정부와 기업·시민이 책임감을 갖고 협력해야 하는 이유다.

기업과 정부, 국제사회가 공통으로 지향해야 하는 목표가 있다. 플라스틱의 원료는 자연자원이다. 자원의 한계를 고려하지 않은 채 지금처럼 물 쓰듯 쓴다면 미래 세대가 사용할 자원이 남지 않을 것이다. 자원 절약과 재활용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극대화하는 순환경제로 전환하는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가속하려면 소비자인 우리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 플라스틱 제품 사용을 줄이고 분리 배출을 실천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이에 앞서 내가 산 물건이 환경에 최소한의 영향을 주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도록 기업에 요구해야 한다. 정부의 정책 변화를 촉구해야 한다. ‘플라스틱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선 기업·정부·지역사회, 그리고 개인의 역할이 절실히 필요하다.

홍윤희 세계자연기금(WWF) 한국본부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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