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채식주의자 될 수 있어요"..불완전 비건 '비덩주의'

심영주 2021. 4. 12.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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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 열풍 확산에 헐렁한 채식 '비덩주의' 눈길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 '한국식 비건'
비건, 여전히 진입장벽 높아..비덩주의로 시작
비덩주의가 가져온 긍정적 변화多

“한 명의 완벽한 비건보다 열 명의 비건 지향인이 더 큰 변화를 만든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래서 전 완벽하지 않은 채식이라도 지속할 생각입니다.”

동물권에 관심이 많은 이윤지(28·여)씨는 두 달 째 불완전 채식을 이어가고 있다.

소위 ‘고기성애자’였던 이씨는 그간 동물권 보호를 외치면서도 선뜻 고기를 끊지 못했다. 그런 스스로의 모순적인 모습 때문에 이씨는 종종 자괴감을 느꼈다. 그러다 비건 지향인의 영향력에 대한 글을 접한 이후로 불완전 채식에 도전하게 됐다.

최근 동물권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아지고 기후위기 등의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채식 열풍이 확산하고 있다. 실제로 군대와 학교 등에서도 채식 식단이 제공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조금은 느슨하게 실천할 수 있는 채식 '비덩주의'가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완벽한 채식 어렵다면 비덩주의로 출발

‘비덩주의’(非 덩어리 주의)는 고기를 덩어리째 먹지 않는 채식 방법이다. 소위 한국식 채식주의를 말한다.

국물 요리가 많은 한식 특성상 고기를 온전히 식단에서 끊어내기란 쉽지 않다. 비덩주의는 육안으로 구별 가능한 고기는 거부하되 고기 육수로 우려낸 국물이나 양념은 섭취하는 채식주의를 일컫는다.

지속가능한 채식 방법으로 비덩주의를 실천 중인 환경단체 활동가이자 작가인 김가영(36·여)씨는 “비덩주의는 다른 엄격한 채식보다 식단 선택의 폭이 넓은 편이라 비건을 도전하는 것보다는 쉽다”며 “육안으로 구별 가능한 고기는 최대한 먹지 않고 김밥이나 비빔밥처럼 육류를 뺄 수 있는 요리는 미리 빼달라고 요청한다. 다만 너무 잘게 다져 있는 고기는 그냥 먹는 편”이라고 전했다.

정진영(37·남)씨도 5개월째 비덩주의를 실천 중이다.

정씨는 고기 육수를 이용한 국물요리는 채소 건더기만 먹고 국물도 최대한 먹지 않는다. 그는 “가령 김밥은 계란과 맛살, 햄은 빼고 시금치랑 우엉 등을 더 넣어달라 요청한다”며 “국수류도 고기를 제거해도 먹을 수 있는 메뉴로만 먹는다”고 설명했다.

"연예인 따라해? 식물은 생명 아냐?" 선입견이 높인 진입장벽

정씨는 '맥두걸 박사의 자연식물식'이란 책을 읽고 채식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며 채식을 지속하는 게 어려웠다. 그는 비덩주의를 통해 직장생활과 비건 사이 타협점을 찾았다.

정씨는 “사내 식당에 메뉴가 10가지가 넘는데 놀라울 정도로 거의 모든 메뉴에 동물성 식재료가 포함되어 있다”며 “그래서 처음엔 샐러드와 과일, 고구마 등만 먹었는데 힘들더라. 그러다 다른 책을 통해 비덩주의를 알게 돼 실천하게 됐다”고 전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실제로 육식이 만연한 식문화는 채식주의의 진입 장벽을 높이는 가장 대표적인 요인이다. 여기에 완벽한 채식을 해야 한다는 강박 또한 채식을 어렵게 만든다.

필명 ‘김옹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브런치 작가 김현지(31·여)씨는 실제로 채식주의를 고백했다가 “너도 이효리 따라하려고 하는거냐”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김씨는 “친구들과 약속을 잡으면 거의 100% 육식이 포함된 식당에 가는 경우가 많은데 나 때문에 메뉴 선택지를 줄여야하는게 부담스러워 모임이 생기면 늘 난감했다”며 “우리나라에서는 비건이라고 하면 그냥 인정해주는 경우보다는 '왜 비건을 하냐', '생선은 먹냐, 그럼 완벽한 비건이 아니지 않냐' 등의 질문을 계속 들어야 해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씁쓸해했다.

오해와 편견에 마주하는 건 이씨도 마찬가지다.

이씨는 "채식을 한다고 하면 식물도 소중한 생명인데 왜 먹냐고 하는 이들이 있다"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한숨만 나온다"고 전했다. 이어 "고기 1kg을 생산하려면 몇 배의 곡식을 사용해야 해 식물을 보호하려면 더더욱 채식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정씨는 나름의 노하우까지 생겼다. 정씨는 “간혹 고기를 먹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굳이 비건이라 밝히지 않고 소화가 잘되지 않아 고기를 안 먹기 시작했다고 답한다”며 “그럼 힘이 없지 않냐는 질문이 따라붙는데 그런 건 전혀 모르겠다고 했더니 더 이상 질문하지 않더라”고 전했다.

"고기가 죽은 동물의 몸덩이라는 것 인식하게 돼"

비덩주의를 실천하는 이들은 외적인 변화는 물론 내적인 변화도 크게 겪는다. 정씨는 “혈압 수치가 내려가고 고지혈증이 사라졌다"며 "예전에는 소화제를 달고 살았는데 지금은 소화가 너무 잘 돼 소화제도 다 버렸다. 몸의 변화를 느끼고 있어 질병에 대한 공포가 사라졌다”고 언급했다.

이어 "스스로 건강한 식단을 먹는다는 생각에 자존감도 높아졌다"며 "환경과 동물보호에도 관심이 생겨 일상 속에서 작은 실천들을 하고 있다. 비덩주의를 그만둬야 할 이유를 못 느껴 앞으로도 지속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김현지 씨도 동물복지에 관심이 크게 늘었다.

그는 “비건에 대해 공부하고 나니 내 앞에 있는 고기가 처음부터 저 상태 그대로 만들어져 나온 식품이 아니라 어느 동물의 목숨을 빼앗아 얻은 동물의 몸덩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됐다"며 "비덩주의를 하며 가장 좋은 점은 생명에 대한 폭력에 가담하지 않고 죄책감 없이 식사를 한다는 만족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저렴한 가격을 우선시했는데 지금은 비싸더라도 동물복지마크가 붙어있는 제품으로 구매한다”며 “아직 유제품이나 계란을 완전히 끊지는 못하고 섭취량을 평소의 반 이상으로 줄였다. 앞으로는 동물성 제품을 최대한 먹지 않는 게 목표”라고 전했다.

이씨 또한 비덩주의를 지속하며 완전한 비건을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이씨는 “최근 상품성을 이유로 수퇘지가 마취 없이 거세를 당하고 병아리들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분쇄기에서 갈려 죽는다는 뉴스를 보고 채식 필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절감했다”며 “단시간 내에 고기를 완벽히 끊는 것은 어렵겠지만 꾸준히 노력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스냅타임 심영주 기자

심영주 (szuu@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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