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민의 탈인간] 아낌없이 죽는 바다

한겨레 2021. 4. 11.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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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민의 탈인간]

김한민 ㅣ 작가·시셰퍼드 활동가

다큐 <씨스피라시>가 화제다. 바다의 위기를 다룬 다큐는 많았지만, 터부시된 주제를 이렇게 파고들어 과감한 결론까지 제시한 작품은 없었다. 그 주제는 어업, 결론은 어류 소비 보이콧이다. 이 보이콧은 다른 선택지가 없는 소규모 생존형 어업이 아닌, 바다를 ‘거덜 낸’ 선발국의 대규모 수산업을 겨냥한다. 가령, 아프리카 연안의 어업 환경을 파괴한 국제 원양산업이 대표적 사례인데, 알다시피 여기엔 한국도 한몫했다. 거대 기계화된 어선은 규모부터 다르다. 참치 연승선의 낚싯줄은 수십∼수백 킬로미터에 이르고, 선망선 한척이 하루 잡는 양은 수십톤 이상이다. 저층 트롤선은 심해를 초토화시키는 불도저다. 이들의 남획·혼획으로 전세계 어획량과 해양생물 개체수가 감소하고, 특히 상어 같은 상위 포식자의 팔할이 사라지며 생태계 균형이 깨졌다. 또, 어마어마한 양의 폐그물, 양식업의 오염 및 사료 문제, 이주 어선원의 비참한 현실 등… 책 한권을 써도 모자란다. 무한히 주기만 하던 바다 같은 건, 이제 없다.

‘반대편’ 말도 들어봐야 한다고? 물론 업계와 정부, 이들과 ‘친한’ 전문가들은 생각이 다를 것이다. ‘위험한 선동 다큐다, 바다 걱정 하느니 수산업 걱정이나 해라, 규제가 너무 심해 죽겠다, 환경보호? 알아서 잘하고 있으니 안심하고 많이 드시라, 지속가능한 수산물을!’ 나도 한때 “지속가능하고, 윤리적이고, 합법적인 수산”을 위한 캠페인을 했었다. 그 의미는 해양생태계의 균형을 깨뜨리지 않고, 가장 취약한 어업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며, 불법어업 없이 바다 생물을 잡는 것. 하지만 막상 누가 그런 수산물이 뭐냐고 물으면,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몇몇 해조류 정도? 왜 그런가?

상기한 문제들이 먼바다에서 일어나지 않는 걸 확인하려면, 투명하고 신뢰할 만한 정보가 특히나 중요하다. 그런데 대개의 정보는 부족·불투명하거나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않다. 담당처인 해양수산부부터 수산업 발전을 존재이유로 여기니, 해양 생태나 노동자 보호는 한참 후순위이다. 광물 같은 ‘자원’으로 취급되는 어류 개체수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경쟁국과의 어업협상 또는 업계 보호 때문에, 말 그대로 0마리(명태처럼)가 되기 전까진 투명하게 공개도 안 된다. 한 다리 건너면 지인, 동기, 동종 업계 종사자인 수산 분야에선 관련 연구도 산업 보호의 관점에서, 관·업계에 의존적인 구조에서 수행되니 연구자는 불리한 내용을 피하고 수위를 조절하기 쉽다. 일반인이 유일하게 접근 가능한 수산물 이력제는 도입 십여년째 유명무실하다. 한마디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판매자와 그 지원자(정부) 말만 믿어야 하고, 그들이 괜찮다면 괜찮은 구조다. 어선원 인권도 마찬가지다. 극히 드물게 정부가 노동 현장 조사를 하면 노동자에게 할 질문을 선장에게 하거나, 선장 보는 앞에서 하는 식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당연히 비영리 분야에서 나오는 독립적인 연구나 조사, 증언에 신뢰가 갈 수밖에 없는데, 이런 정보원들은 하나같이 상업 어업의 문제적인 현실을 보여준다.

영화의 결론처럼 수산물을 안 먹으면 바다를 살릴 수 있을까? 대규모 보이콧 운동으로 업계를 압박해 “노-테이크”(조업 금지) 해양보호구역 지정이나 강력한 보호 정책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힘들겠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시작이다. 바다 생물을 보는 관점을 바꿔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도 어류의 고통을 부정하는 시각 속에, 산낙지의 살육 과정을 보며 입맛 다시는 걸 ‘존중’하는 문화 속에, 신비로 가득한 ‘물살이’의 세계를 ‘물(의)고기’로 축소하는 언어 속에 갇혀 있다. 과거의 지혜가 “물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잡는 법을 가르쳐주라”였다면, 이 시대엔 물살이 안 잡고 사는 지혜가 절실하다. 낚시 프로그램 따위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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