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넷플릭스영화 '낙원의 밤', '푸른 낙원' 제주에서 펼쳐진 감성 누아르

서정원 2021. 4. 11.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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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작품을 영화관에서 볼 수 없다는 건 코로나19 암흑기의 비극이다. 이 풍광을, 이 연기를, 그리고 이 사운드를 담아내기엔 넷플릭스는 너무 좁았다. 코로나 탓에 개봉이 미뤄지다 넷플릭스 덕분에 관객 앞에 나설 수 있게 된 영화 '낙원의 밤'은 역설적으로 '넷플릭스 시대'에 극장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웅변한다.

조폭들의 전쟁 속에서 소중한 이들을 잃고 살아가는 남녀, 태구(엄태구)와 재연(전여빈)의 얘기를 영화는 들려준다. 태구는 대형 폭력 조직 '북성'에서 불을 켜고 영입하려는 인재이지만 자기 자신은 정작 가족조차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차 사고로 위장된 음모에 누나와 조카를 잃었다. 배후로 추정되는 북성의 두목을 습격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역으로 쫓기는 신세로 제주도에 있는 재연의 집에 잠시 몸을 의탁한다.

폭력배들에 의해 부모를 여읜 재연은 무기 판매 일을 하는 삼촌 쿠토와 같이 살고 있다. 주먹들 다툼에 자기 가족까지 휘말리게 만든 쿠토를 원망하면서도, 불치병에 걸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을 위해 지극정성인 그를 사랑한다. 북성이 마지막 남은 가족인 쿠토마저 앗아가 버리면서 재연은 참혹한 복수를 다짐한다. 공동의 적을 둔 태구와 연대해 북성에 맞선다.

전형적인 누아르 문법의 영화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건 공간적 배경인 제주도다. 긴박하고 살벌한 상황과 대조적으로 제주의 풍광은 시리도록 아름답게 묘사된다. 반짝이는 푸른 바다, 시원하게 쭉 뻗은 해안도로를 비추다가도 흐리고 을씨년스러운 날씨, 고적하고 불길한 밤 풍경 또한 그리며 작품은 제주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를 위해 제작팀은 시간대와 광량까지 세밀하게 고려해 촬영했다. 박훈정 감독은 "제주도는 이 영화의 주인공 중 하나"라며 "아름다운 섬에서 세상의 끝에 내몰려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주요 장면들마다 연주되는 음악들도 꼭 맞게 어우러진다. 쓸쓸하고 호소력 짙은 피아노 선율이 특히 귓가에 남는다.

제목인 '낙원의 밤'도 작품 속에서 변주되는 대비를 담아낸다. 제주는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낙원'이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건 끔찍하고 잔인한 밤의 모습이다. 어릴 때 만화를 즐겨봤던 사람들은 명작 '베르세르크'의 대사 한 구절을 떠올릴 법하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있을 수 없는 거야. 도착한 곳, 그 곳에 있는 건, 역시 전장뿐이다."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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