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 녹는 알프스 빙하..'이불 덮기'도 임시방편

이정호 기자 2021. 4. 11.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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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스위스의 ‘론 빙하’ 모습. 흰색 방수포가 태양의 열과 빛을 막기 위해 빙하 위에 덮여 있다. 스위스 연방 산림·눈·환경 연구소(WSL) 제공
독일·이탈리아 등 각국서 태양열·빛 막아주는 방수포 작업 시행
스위스 전역 빙하 표면에 덮으려면 연간 1조2000억원 비용 들어
“빙하 쇠퇴 늦출 뿐 멈추지는 못해”…온실가스 감축이 근본 처방

알프스산맥을 낀 스위스의 한 고지대 산자락에 하얀색 얼음이 넓게 깔려있다. 곱게 갈아놓은 빙수처럼 보이는 이 얼음은 높은 산에서 유지되는 낮은 기온 때문에 형성된 빙하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얼음 위에는 천막의 지붕으로 쓸 법한 하얀색 천이 덮여 있다. 스위스에선 이런 방수포를 2004년부터 해발 2250~3250m 사이 7곳을 대상으로 덮어 왔다. 태양의 열과 빛이 직접 내리꽂히지 않게 해 빙하를 보호한 것이다. 방수포 덕에 겨울에 집중적으로 내린 눈은 기온이 올라간 여름에도 보존됐고, 빙하가 두꺼워지는 효과가 나타났다.

그런데 방수포를 빙하에 덮는 현재의 대응 방식은 지속하기 어렵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달 말 스위스 연방 산림·눈·환경 연구소(WSL)와 스위스취리히연방공대, 스위스프리부르대 등의 공동 연구진은 방수포를 빙하 표면에 덮어씌우는 정책을 지속하려면 자국에서만 연간 1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는 분석을 국제학술지 ‘콜드 리전스 사이언스 앤드 테크놀로지’ 최근호에 게재했다.

■ 빙하 소멸 막는 ‘비상대책’

빙하가 없는 한국에선 생소하지만 알프스 주변 국가에선 빙하에 방수포를 덮는 일은 일상이다. 첫 테이프를 끊은 건 1993년 독일이다. 이 나라의 최고봉인 추크슈피체산에서 시작된 ‘방수포 덮기’는 이젠 이탈리아와 스위스처럼 알프스를 끼고 있는 다른 국가에서도 활발히 시행된다.

각국이 방수포 덮기에 나선 건 20세기 후반부터 가속화된 온난화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영국 애버리스트위스대 연구진은 금세기 말까지 알프스 빙하의 92%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놨다. 방수포 덮기는 이런 악조건에서 빙하를 지켜내기 위한 비상대책인 셈이다. 방수포의 재질은 천막으로 많이 사용되는 ‘타폴린’이다. 폴리에틸렌 등으로 만들어지는데, 습기에 강하고 잘 삭지 않는다. 특히 흰색 방수포는 햇빛을 잘 반사해 빙하의 소멸을 막기에 적합하다.

■ 녹는 속도 60% 감소

방수포를 가장 빈번하게 덮는 곳은 스키장이다. 빙하를 슬로프로 활용할 경우 빙하의 감소나 소멸이 이용객 감소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빙하가 만든 멋진 풍광이 홍보 요소가 되는 관광지도 비슷하다. 줄어든 빙하에 고객이 당황하거나 실망하지 않도록 꾸준히 방수포를 덮는다. 이런 개념에 따르면 녹아내리는 알프스의 모든 빙하가 방수포 포장의 잠재적인 대상이다.

방수포의 효과는 꽤 괜찮다. 연구진은 방수포를 덮은 빙하는 자연에 그대로 노출된 빙하에 비해 얼음과 눈이 60% 적게 녹았다고 분석했다. 첨단 기술이 동원되는 대응책이 아닌데도 상당한 수준으로 빙하를 방어한 것이다. 연구진은 스위스에서만 매년 최대 35만㎥(올림픽 수영장 140개) 빙하가 이 조치로 인해 살아남고 있다고 설명했다.

■ “연 1조원…근본 처방 필요”

문제는 비용이다. 연구진이 지난 10년간 스위스에서 지출된 방수포 비용을 분석했더니 빙하의 위치와 상태에 따라 1㎥당 연간 0.6~7.9스위스프랑(725~9550원)이 들었다.

스위스 전역의 빙하에 방수포를 덮는다면 연간 10억스위스프랑(약 1조2000억원)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알프스 주변의 다른 국가들까지 포함하면 비용은 훨씬 더 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연구진은 “방수포는 빙하의 쇠퇴를 멈추는 게 아니라 속도를 늦출 뿐”이라고 강조했다. 엄청난 돈이 끝을 모르고 들어가는데도, 빙하를 지키기 위한 근본 처방도 아니라는 얘기다.

연구진을 이끈 마타아스 후스 WSL 소속 박사는 “빙하의 소멸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수포 덮기는 기후변화 자체를 해결하는 방안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백민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는 “지속가능성과 경제적 이익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기술과 시스템을 개발하는 게 중요하다”며 “최근 세계 대형 석유회사들이 신재생에너지에 투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의미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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