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당시 고립된 광주시민에 또박또박 눌러쓴 글씨로 항쟁 소식 전달..'박용준 투사회보체 글꼴' 41년 만에 부활
총에 맞아 숨진 박 열사 기려
[경향신문]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외부와 고립된 광주 시민들은 ‘투사회보’를 통해 항쟁 소식을 접했다. 또박또박 눌러 쓴 투사회보 글씨의 주인공은 박용준 열사(당시 25세·사진)였다. 그는 계엄군의 마지막 진압작전이 있었던 5월27일 새벽 옛 전남도청 인근 YWCA 건물에서 숨졌다.
5·18민주화운동 41주년을 앞두고 박 열사의 투사회보 글씨가 시민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글꼴’로 만들어진다.
광주YWCA와 들불열사기념사업회, (사)지역공공정책플랫폼 광주로는 11일 “5·18 당시 투사회보 제작에 참여한 박 열사의 희생을 기억하기 위해 ‘박용준 투사회보체 글꼴’을 제작한다”고 밝혔다. 시민 모금을 통해 제작되는 글꼴은 투사회보 첫 발행일인 오는 5월21일 공개된다.
5·18 기간 신문 등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광주 시민들은 ‘시민신문’인 투사회보를 통해 항쟁 소식을 접했다.
16절지에 양면으로 제작된 투사회보는 시민들이 알아야 할 홍보사항과 행동강령, 대중집회 홍보 등의 내용을 담아 매회 7000∼8000부 발행됐다.
투사회보 제작에는 들불야학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20여명이 투입됐다. 고아였던 박 열사는 야간고등학교 등을 나온 뒤 YWCA신협에 근무하면서 들불야학에 강학으로도 나갔다. 글씨체가 좋았던 박 열사는 전달받은 원고를 등사원지에 철필로 옮겨 적는 일을 했다. 100여장을 등사기로 복사하고 나면 새로 적어야 하는 일을 그는 종일 반복했다.
박 열사는 계엄군이 전남도청 등을 유혈진압한 5월27일 도청 인근 YWCA에서 마지막 투사회보를 제작하다 총에 맞아 사망했다. 지역공공정책플랫폼 광주로는 “‘박용준 글꼴’을 통해 고아로 태어나 꿋꿋하게 살아갔던 그의 삶을 재조명하고 5·18에 대한 시민 참여와 동행의 의미를 담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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