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하는 천자문 - 김근 [한성봉의 내 인생의 책 ①]
[경향신문]
출판인들은 항상 ‘지금 여기’ 사람들이 생각하고 소통하는 문화의 코드로서 책을 생각한다. 수천 년을 지탱하는 고전이 널려 있음에도 지금 끊임없이 새로운 책이 나오는 이유다.
<천자문>은 중국 고전에서 핵심을 추려 시적 언어로 쓴 위대한 책이다. 양나라 때 주흥사가 만들었다 하나 많은 사람들이 편집했을 것이고, 네 글자를 한 구로, 모두 250구에 우주·역사·정치·인륜·생활·처세·학문·예악 등이 망라된 동아시아 지역의 공통된 문화 텍스트다.
그러나 천자문은 이미 천 년 이전에 바라본 세상이며 가치였으므로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변화를 꾀하는 인류에게 옛날 생각일 수도 있다. 사극에서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초당을 짓고 ‘삼년상’을 지내는 모습을 지금 젊은이들이 공감할 수 없는 것처럼.
동양학자 김근 교수가 ‘지금 여기’에서 천자문을 다시 읽고 해석한 책이 <욕망하는 천자문>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효가 인륜의 근본이지만 도를 지나쳐 형식이 내용에 앞서 온 것을 비판한다. 맞다. 일방적 효를 강조하는 한국식 유교 가족주의에서 아이는 판단력이 없다고 치부되고 부모는 모든 일에 전권을 갖는다.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체벌이 심지어 ‘사랑의 매’라 포장되거나 ‘내가 맞을 짓을 했다’고 자책하게 만들기도 한다. <천자문>에서 ‘신체발부’가 부모의 은혜이니 감히 헐고 다칠 수 없다는 것은 명철보신(明哲保身) 혹은 무사안일, 복지부동이라 지적하고, 조심하면서도 창의력과 모험심을 갖춘 적극적인 자세를 갖도록 권면한다. 아울러 천자문에 숨어 있는 가족 이기주의와 봉건 이데올로기, 중화주의를 해체적으로 제시한다.
이로써 <천자문>이 부활한다. 토대와 양식은 훌륭하나 겉모습이 낡아서 흉물스럽던 유산이,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리모델링을 통해 21세기에도 통하는 우리 정신의 근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한성봉 | 동아시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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