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애 칼럼] '라떼' 대신 '진심·가치 리더십'

안경애 2021. 4. 11.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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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애 ICT과학부 부장
안경애 ICT과학부 부장

"여기가 이 건물에서 최고 명당 자리예요. 이곳이 매물로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계약했지요."

권영범 영림원소프트랩 대표는 최근 오픈한 새 사내식당을 보여주며 이같이 말했다. 대형 건물의 3층에 자리 잡은 식당 밖으로 벚나무들과 넓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권 대표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벚꽃이 절정이었답니다. 직원들이 계절마다 달라지는 경치와 하늘을 보며 밥을 먹을 수 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1993년 창업한 소프트웨어 회사를 직원 300명 규모로 키워낸 권 대표는 같은 건물에 세를 얻어 운영하던 사내식당을 옮기면서 의자 하나까지 직접 골랐다.

영림원이 최근 사내에 만든 또 하나의 공간은 '코믹스튜디오'라는 생뚱맞은 이름의 회의실이다. 회의실에 들어가려면 입구에 놓인 상자를 하나씩 골라야 한다. 안에 든 대머리 모양 가발부터 돌고래 인형, 인디언 장식물까지 우스꽝스런 것들을 쓰고 회의를 한다. 회의를 하기 전에는 코믹 영상을 함께 보며 한 바탕 웃는 게 의무다. 딱딱한 분위기와 굳은 표정 대신 열린 마음으로 각자의 의견과 생각을 마음껏 풀어내 보자는 취지다. 회의실 벽에는 '정숙하지 말고 의견 질러'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권 대표는 "회의 문화를 바꾸기 위한 시도"라면서 "직원들이 일에 치이지 않고,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분위기에서 자유롭고 재미 있게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CCO(최고문화책임자)라고 소개하는 권 대표는 직원들이 회사에서 말문을 열고 마음의 벽을 허무는 일에 공을 들이고 있다.

윤석진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원장은 국가연구소에서 점잖음과 엄숙함을 덜어내는 시도를 하고 있다. 윤 원장은 "연구원들이 여유롭게 사색하고 실패 걱정 없이 창의적 연구에 뛰어드는 두려움 없는 조직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탈권위와 수평적 소통의 문화를 만드는 게 꿈이라는 윤 원장은 최근 직원들의 아이디어로 기발한 멘토링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윤 원장과 부원장을 포함한 주요 보직자 17명이 멘토가 아닌 멘티로 참여한다. 그들에게 조언하는 멘토는 연구원 내 20~30대다. 새내기급 직원들이 멘토 풀을 구성해 자신이 도움을 주고 싶은 멘티를 고른다. 윤 원장은 "직원들이 일명 '꼰대' 17명을 멘티로 정했다. 조만간 멘토를 만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연초 IT기업을 중심으로 인센티브 항명과 연봉 불만제기가 이어지면서 속병을 앓는 기업이 늘고 있다. 같은 업종 내에서도 연봉 인상을 선언한 곳과 하지 않은 곳의 분위기는 180도 다르다. 회사가 성장과 속도를 강조하며 일방적 평가기준을 적용해 일부 고성과자에 성과를 몰아준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높다.

벤처기업이 몰려 있는 판교에서는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노동조합이 속속 설립되고 있다. 직원들의 불만 표시에 사내 평가·연봉·인사체계를 재정비하는 곳도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100% 만족스러운 보상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연봉이 높아져도 경쟁기업이 더 많이 올려주면 직원들은 또 다시 불만이 생긴다. IPO(기업공개)로 대박을 경험한 이들조차 회사에 대한 로열티보다는 또 다른 대박 기회를 꿈꾸며 이직에 나선다.

돈으로 만들어진 '머니 리더십'은 분명 힘이 세지만 유통기한이 짧고 공허하다. 돈으로 키워진 로열티 역시 모래성처럼 무너지기 십상이다. 리더는 속도와 성장, 직원은 연봉과 보상에만 집중하는 조직은 스스로의 한계에 갇힐 수밖에 없다. 조직과 직원들이 공통의 의미 있는 미션을 바라보면서, '이익'뿐 아니라 사회 공동체의 더 나은 미래를 지향할 때 한층 강한 '가치 리더십'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거기에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고 느리지만 함께 변화해 나가는 '진심 리더십'이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사회와 사람을 함께 바라보고 소통하며, 그들과 함께 가치를 만들어 내는 '진심 리더'들이 늘어나길 꿈꾼다.

안경애 ICT과학부 부장 natu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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