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전 "부동산 규제완화" 내세운 오세훈, 취임 뒤 속도조절?

박태우 2021. 4. 11.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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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안 재건축 규제완화"→"서두르다 집값 자극 안돼"
공약, 중앙정부 권한 또는 시의회 동의 필수..여론전에 무게
오세훈 서울시장(오른쪽)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국민의힘·서울시 부동산정책협의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은 주호영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오세훈 서울시장이 간판 공약으로 내세운 부동산 정책에 관련한 발언을 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선 뒤 발언은 “취임 일주일 안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를 공언했던 선거운동 기간의 호언에 비해 신중한 톤으로 바뀌었다. 오 시장이 공언한 부동산 관련 공약은 국토교통부 소관이거나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인 국회·서울시의회의 동의가 필수적인 탓이다. 오 시장이 자신의 발언에 실행력을 담보하지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 시장은 11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서울시 부동산정책협의회에서 “주택 관련 세금 등 난제들이 산적해 있는데 서울시 혼자만의 힘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며 소속당인 국민의힘에 도움을 호소했다.

오 시장은 선거 기간 동안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강하게 추궁했다. 그의 압승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정으로 인한 반사 효과가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오 시장은 서울 지역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지난해에 견줘 19% 올라 보유세 부담이 커지자, “시장이 되면 정부와 협의해 공시가격을 올해 수준으로 동결하자고 하겠다”고 공언했다.

오 시장의 목소리는 당선 뒤 톤이 약해졌다. 오 시장은 전날에는 기자들과 만나 “(정부와) 협의를 해봐야겠지만, 지나치게 세금 부담을 늘리는 것은 정말 바람직하지 않다”며 “제대로 된 재조사를 바탕으로 근거를 갖고 건의하면 중앙정부도 끝까지 거절할 수는 없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재조사를 통해 중앙정부에 건의하고 중앙정부가 이를 수용하기를 바란다’는 수준의 발언에 머문 것이다.

재개발·재건축을 활성화해 서울에 18만5천호의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오세훈표 부동산 정책’도 걸림돌이 많다. 그는 선거 유세에서 “서울시장 시절 주택 공급을 많이 하려고 뉴타운과 재건축·재개발을 약 700개 하려 했는데 박원순 전 시장이 절반을 날렸다”고 말하며 신속한 주택 공급 의지를 표시했다. 하지만 오 시장은 당선 뒤 이 부분에도 속도 조절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지난 8일 <에스비에스>(SBS)와의 인터뷰에서 “너무 서두르다가, 또 동시다발적으로 많이 하다가 주변 집값을 자극해서 오히려 시민 여러분께 누를 끼칠 가능성도 있다”며 “신중하지만 신속하게 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오 시장의 공약은 자신이 지닌 권한만으로 추진하기 어렵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와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등 기준 완화 권한은 중앙정부에 있고, 용적률 완화 등도 서울시 조례 개정 사안으로 시의회의 의결이 필수다. 하지만 시의회는 110명의 의원 가운데 101명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오 시장도 이날 당과의 정책협의회에서 “한강변 35층 높이 규제나 용적률 완화는 시의회 조례 개정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 있고, 국토부 등 중앙정부와 협의해야 할 일이 있다”고 했다.

아울러 서울의 아파트 시장이 실거주 수요보다는 투기 수요 위주로 왜곡된 상태에서 규제를 무분별하게 완화하면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재건축 규제 완화는 고급 아파트를 필요로 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으로 필연적으로 주택 가격 상승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 시장의 부동산 정책 관련 발언들은 여론전에 초점을 맞췄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행력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57.5%라는 자신의 득표율과 국민의힘의 재보선 압승에 기대어 부동산 실정을 부각하면서 지지층 중심으로 여론을 모아 정부의 협조를 압박하겠다는 셈법이라는 것이다. 이날 오 시장과 국민의힘이 부동산 관련 당정협의를 연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은영 휴먼앤데이터 소장은 “오 시장의 발언은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중도층의 민심을 달래는 효과가 있다”며 “오 시장이 당장 할 수 없더라도 의제를 띄워서 정부를 압박하고 1년 뒤 대선 국면에서도 활용할 목적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박태우 진명선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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