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 외면 해경 지휘선에서 추모식 하라니.." 세월호 유족 분통

김용희 2021. 4. 1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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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가족협, 11일 참사 해역 방문 취소
유족 "구조 외면한 선박 탑승 못 해"
해경 "중국어선 단속으로 불가피"
11일 전남 목포시 죽교동 목포해경 전용부두에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참사 당시 지휘선으로 쓰였던 3009함정을 바라보고 있다.

진도 맹골수도 사고 해역에서 진행하려던 세월호 참사 7주기 선상 추모식이 무산됐다. 해경이 참사 당시 구조에 소홀했던 3009함 지휘선에서 추모식을 열려 하자 유족들이 강하게 반발하며 불참했기 때문이다. 유족들은 참사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해경이 피해자 가족을 우롱했다고 비판했다.

11일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협의회), 세월호 일반인희생자유가족대책위원회 등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 52명은 이날 아침 4·16재단 주최로 진도 맹골수도 사고 해역에서 열려던 ‘참사 7주기 선상 추모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진도 맹골수도 사고 해역으로 유족들을 태워 선상 추모식을 진행하는 선박이 2014년 4월16일 구조 지휘선 3009함(3000t급)이었기 때문이다.

참사 당시 3009함에는 김석균 전 해경청장과 김수현 전 서해해경청장, 김문홍 전 목포해경서장 등 해경 수뇌부가 타고 있었다. 수난구호법의 현장지휘자였던 김문홍 목포서장은 오전 8시55분께 최초 신고 접수 때 헬기를 타고 직접 현장으로 이동해 구조 지휘를 해야 했지만 3009함에 머무르며 오전 9시49분까지 아무런 지시도 하지 않았다. 이미 세월호는 60도 이상 기울어져 침몰한 상태였다.

사고 당일 오후 5시24분께 해경은 맥박이 뛰고 있던 단원고 2학년 임경빈군을 바다에서 발견해 6분 뒤 3009함으로 옮겼지만 헬기 이송 대신 원격의료 시스템을 가동했다. 3009함의 헬기는 김수현 서해청장이 사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참사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이준석 전 선장도 같은 날 오후 5시40분께 3009함에 승선해 선내 구조를 설명했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유족들은 트라우마를 호소하며 지난해 선상 추모식에 사용된 3015함이 왜 올해는 배정되지 않았는지 물었지만 해경은 “알아보고 있다”는 대답만 할 뿐 사유를 밝히지 않았다.

협의회는 회의 끝에 3009함에 탑승할 수 없다고 결정하고 발길을 돌렸다. 이들은 대신 목포신항 세월호 선체 앞에서 추모식을 진행했다. 이어 진도 팽목항, 백동 무궁화동산 ‘세월호 기억의 숲’ 등을 방문하며 자녀들에 대한 그리움을 달랜 뒤 오후 2시께 경기도 안산으로 돌아갔다.

11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 세월호 기억관을 방문한 단원고 희생자 부모들이 졸업사진 속 자녀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협의회 운영위원장을 맡은 단원고 수진양의 아빠 김종기씨는 “희생자 부모들은 3009함을 보는 순간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분노 때문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추모식에 이 배를 사용하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생존 학생 아버지 장동원 협의회 총괄팀장은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 청장 등 해경 수뇌부 10명이 1심에서 무죄를 받은 지 두달 만에 유족에게 3009함을 타라는 게 말이 되느냐. 해경이 3009함에 대한 유족의 트라우마를 몰랐다면 배려가 없는 것이고 알았다면 무책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11일 전남 진도군 백동 무궁화동산 ‘세월호 기억의 숲’을 방문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추모 문구를 살펴보고 있다. 은행나무 300여그루가 심어진 ‘세월호 기억의 숲’은 영국 배우 오드리 헵번의 아들 숀 헵번 페러가 유가족과 함께 2015년 4월 조성했다.

참사로 아들 안주현군을 잃은 김정해씨는 “선상 추모식을 하지 못해 아쉽다. 팽목항 기억관에 걸린 졸업사진 속 웃고 있는 아들을 보며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을 위해 끝까지 싸워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말했다.

해경은 사전에 유족들과 소통하지 못해 유감이라는 입장을 냈다. 박정일 서해해경 홍보계장은 “목포해경에는 3000t급 경비함이 3009함, 3015함 등 두척뿐이다. 유족들이 3000t급 함정을 요청했는데 3015함은 현재 중국 어선 단속을 나가 3009함을 지원한 것”이라며 “추모행사 때문에 3015함을 복귀시키는 것은 예산 낭비와 해상 경계 공백이 우려돼 쉽지 않은 상황이다. 16일 행사에는 3015함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16일에도 4·16재단 주최로 0416단원고가족협의회 소속 피해자 가족 22명이 사고 해역에서 선상 추모식을 할 예정이다.

글·사진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11일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선체 앞에서 세월호 피해자 가족이 묵념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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