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회복한 단색화, 시장 견인.. 재테크 수단화 우려 목소리 [S스토리]

김예진 2021. 4. 11.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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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기 벗고 기지개 켜는 미술시장
미술품 경매장 치열한 경합
김창열 '물방울' 나오자 응찰 잇따라
1200만원서 시작해 8200만원 낙찰
박서보作 1억500만원 신기록 세워
갤러리측 "10년 전 호황 다시 보는 듯"
청년층 컬렉터 '큰손' 부상
취향 뽐내는 투자 수단으로 큰 인기
온라인 경매·아트페어서 거래 급증
전문가 "시각의 폭 너무 협소 염려
미술사 공부가 뒷받침돼야" 조언도
“지금부터 스프링세일 경매 시작합니다. 박서보 묘법, 2600만원에서 시작합니다. 200만원씩 올라갑니다.…300만원씩 올라갑니다.…5200 받았습니다.”

지난달 23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진행된 미술품 경매 현장. 김현희 경매사가 첫번째 작품 박서보 화백의 2012년 작 묘법 No.120319를 대형 화면에 띄웠다. 시작가의 두 배가 되는 게 순식간이었다. 응찰은 멈추지 않았다. “다음 6100만원입니다. 6400, 6400, 6400만원 84번 고객님께 낙찰입니다!” 이 작품은 시작가보다 3800만원 높은 가격에 새 주인을 찾았다.

진풍경은 엿새 전 또 다른 메이저 경매사인 케이옥션 경매 때도 연출됐다. 김창열 화백의 소형 물방울 작품에 응찰 경쟁이 붙었다. 수십번 호가가 올라간 끝에 1200만원에서 시작한 경매가 8200만원에서 끝났다. 현장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다. 캔버스 1호 크기인 해당 작품은 A4용지보다 작은 크기의 소품으로 물방울이 단 1개 그려져 있는 작품이다.

◆미술시장 심상찮다

최근 미술시장이 심상치 않다. 특히 한국 미술시장을 선도하는 ‘단색화’ 인기의 회복세가 뚜렷한 것이 대표적 징조다.
미술시장에서 강세를 나타내는 박서보 ‘묘법 No.060330’. 케이옥션 제공
이날 서울옥션 경매에서는 박서보 화백의 또 다른 작품인 2003년 작 ‘묘법 No.030707’이 2000년대 근작 10호 크기 중 처음으로 1억원을 돌파하며 1억500만원에 낙찰되는 기록을 세웠다.

김창열 화백 작품은 8점이나 출품됐고 전부 낙찰됐다. 그 가운데 1993년도에 그린 ‘물방울’은 4000만원에 시작해 치열한 경합 끝에 8900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이날 경매에 참여한 한 갤러리 대표는 “10년 전 미술시장 호황을 다시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호황 조짐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예술경영센터가 지난해 말 펴낸 연례보고서 ‘2020미술시장실태조사’ 보고서(이하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이래 매년 작품 거래 수가 늘고 있어 침체기였던 미술시장이 바닥을 다지고 기지개를 켜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연도별 판매 작품 수는 2018년 4만1808점, 2019년 4만2074점으로 상승 추세다. 공공영역을 제외한 미술시장 주요 유통영역인 화랑 475개, 경매회사 9개, 아트페어(미술장터) 49개를 대상으로 2019년 한 해 실적에 대한 여론조사를 벌여 분석한 결과다.
◆이유는?

미술계에서는 넘쳐나는 유동성과 재테크 열풍, 밀레니얼 세대의 시장 신규 유입으로 미술시장이 뜨거워지고 있다는 게 중평이다. 서울에서 화랑을 운영하는 한 미술계 관계자는 “예전엔 50대, 60대가 주로 작품을 사러 왔는데 2017년쯤부터 30대, 40대 고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밀레니얼 세대 컬렉터가 확연하게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속에 가까스로 아트페어를 열었던 관계자들도 기대 이상 흥행을 한 이유로 밀레니얼세대 유입을 꼽는다. 화랑협회 관계자는 “젊은 컬렉터들은 평소 자기 취향을 드러내는 수단이자 재테크 수단으로 미술품을 주목하고 있고, 유튜브 등으로 스터디를 해두었다가 아트페어라는 큰 장이 서면 작품 실물을 보러 나온다”고 설명했다. 오랜 컬렉터들의 전통적인 유통 경로인 화랑을 통한 거래가 주춤한 동안, 젊은 층의 주요 유입 경로인 온라인 경매나 아트페어를 통한 거래가 눈에 띄게 늘었다.
◆한국 넘어 세계미술시장 “낙관적”

미술시장에는 앞으로 ‘호재’가 더 많을 거란 얘기가 나온다. 시장을 이끄는 1970년대 단색화 작품의 주역인 원로작가들이 국제적으로 더 조명될 기회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팬데믹을 통과하며 예상되는 보복 소비, 밀레니얼 신규 컬렉터 유입으로 대변되는 미술시장 저변 확대 등이 그 이유다.

이우환, 박서보 등 ‘블루칩’이라 불리는 작가들도 해외에서 이목을 끌 것으로 기대된다. 박서보 화백은 영국 최고의 갤러리로 꼽히는 런던 화이트큐브에서 지난달 17일부터 개인전을 열고 있다. 박서보는 영국에, 이우환은 프랑스에 각각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 건립도 예정돼 있다. 보고서는 한국 작품이 출품된 해외 경매인 본햄스, 서울옥션(홍콩), 소더비, 아르퀴리알, 크리스티, 필립스 SBI아트옥션의 경매 분석 결과, 2019년 김환기 작품의 경매 총액은 289억원, 뒤를 이어 이우환이 90억원 거래됐고, 이우환 화백은 해외 경매 출품 작가 중 유일하게 뉴욕, 도쿄, 런던, 파리, 홍콩 다섯 지역에서 모두 거래됐다고 설명한다. 내년 화랑미술제가 처음으로 세계적 영국 아트페어인 프리즈와 공동주최되는 점도 한국 미술시장 위상이 높아질 기회라는 기대가 나온다.
김창열 ‘물방울’. 케이옥션 제공
이런 현상이 세계적 현상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세계 미술시장 2019년 거래량은 4050만 건으로 전년 대비 2% 상승했고, 2009년 이래 최근 10년 중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세계 미술시장에 대해 컬렉터 65%가 낙관적으로 전망했고, 67%는 향후 10년간 전망이 낙관적이라고 답했다.

다만 빠른 속도로 시장이 달궈지는 데 대해 미술계에서는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별세 직후 가격이 치솟은 김창열 화백의 물방울 작품들처럼, 분위기에 휩쓸려 자칫 지나치게 높은 가격에 작품을 매입하거나, 작품을 재테크 수단으로만 보는 세태에 대한 걱정이다.

수십년 컬렉터이자 아트딜러이기도 한 미술계 관계자는 “작품을 살 때는 10년간 나와 함께 살게 될 물건이라는 생각을 하고 사야 한다. 오랜 기간 그림 덕에 행복감을 느끼고 미적 가치를 느껴야지 투자 수단으로만 봤을 때는 이후 소장 기간에 관리가 힘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화랑협회장을 지낸 최웅철 웅 갤러리 대표는 “젊은 컬렉터들의 성향을 보면 일본식 만화나 게임 캐릭터 식의 화풍만 찾는 경우도 있어 시각의 폭이 너무 좁은 것 아닌지 우려될 때가 있다”며 “미술사 공부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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