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말고] 15.1% / 서한나

한겨레 2021. 4. 11.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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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선거를 보면서 나는 '하루만 네 방의 침대가 되'듯 투표 날 하루만 서울시민이 되고 싶었다.

나는 선거 전 군소정당 후보자 토론회를 유튜브 라이브로 보면서 시청자들이 뭐라고 채팅을 해대는지 지켜봤다.

그중 하나가 "세계관 최강자들이 모였네" 하고 말했다.

이번 보궐선거가 집권당 소속 정치인의 연이은 권력형 성범죄의 결과로 치러졌고 여기에 세금 824억원이 쓰였다는 것을 기억할 때 20대 여자를 뺀 나머지 계층의 투표 결과는 우리를 의아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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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말고]

서한나 ㅣ 페미니스트문화기획자그룹 보슈(BOSHU) 공동대표

서울시장 선거를 보면서 나는 ‘하루만 네 방의 침대가 되’듯 투표 날 하루만 서울시민이 되고 싶었다.

아파트 상가의 벽에서 낙서를 본 적이 있다. 색연필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나는 세상을 바꿀 것이다.” 상가가 낡았을수록, 글씨가 작아서 누가 보겠어 싶을수록 내 가슴은 웅장해졌다.

20대 여성 15.1%가 ‘기타’ 정당에 투표했다. 같은 세대 남성의 5.2%, 다른 세대에서는 0.4%에서 5.7%만이 군소정당에 투표했다. 이 숫자는 집계된 모든 세대에서 유일하다. 나는 선거 전 군소정당 후보자 토론회를 유튜브 라이브로 보면서 시청자들이 뭐라고 채팅을 해대는지 지켜봤다.

그중 하나가 “세계관 최강자들이 모였네” 하고 말했다. 비아냥조였지만 뒷걸음치다 맞는 말을 한 격이었다. 여성의당 김진아 후보가 내건 공약처럼 세상이 바뀐다면 서울로 이주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지도 모르고 원해왔지만 어떤 정치인도 말하지 않았던 것, 그는 그것을 말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서울에 여자만 사는 줄 알겠네” 조롱하지만 정치는 자원의 분배다. 같은 시민이지만 권력 유무에 따라 자원의 분배에서 교묘하게 소외되는 계층이 있다는 걸 파악하고 자원을 예리하게 분배해내는 자질은 정치인에게 필수다. 여성의당 김진아 후보가 내건 “SH 공공주택분양 50% 여성세대주 의무할당”은 그런 점에서 탁월한 공약이다.

우리에게는 세계관 최강자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세상엔 이간질이라는 게 존재한다. A 뽑지 마, 어차피 B가 될 텐데, A를 뽑으면 네 표는 사표가 될 거야. C를 뽑으면 D가 될 거야… 최악은 막아야 하지 않겠어? 그 목소리는 유혹적이지만, 1+1은 2다. A에게 표를 주면 A가 된다. 우리에게는 또한 차악이 아닌 최선의 삶을 살 권리가 있다. 한 명의 시장이 그것을 보여주면, 다른 지자체는 선례를 따라온다. 세상은 그렇게 바뀐다.

이번 보궐선거가 집권당 소속 정치인의 연이은 권력형 성범죄의 결과로 치러졌고 여기에 세금 824억원이 쓰였다는 것을 기억할 때 20대 여자를 뺀 나머지 계층의 투표 결과는 우리를 의아하게 만든다. 왜 뽑는가? 반대로, 왜 안 뽑는가?

이번 선거는 성차별의 다양한 양상을 보여준다. 당이 수세에 몰렸을 때만 여성 후보를 내세우는 ‘유리절벽’은 박영선이 후보가 된 이유를 말해준다. 나경원이 후보가 될 수 없었던 이유는 그 반대다. 이 모든 걸 지켜보는 20대 여성. 불법촬영 시위하고 각종 성범죄, 스토킹범죄 국민청원 하고 유리절벽이든 천장이든 지적하고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비혼과 비혼 공동체를 이야기하며 자구책을 찾는, 청년 세대의 갈 곳 없음과 여성차별의 이중고를 겪으며 시민이 된 이들.

60세 이상 남성 70.2%, 여성 73.3%가 오세훈에게 투표했다. 20대 남성도 72.5%로 이와 비슷한 투표율을 보였다. 정치인들이 우경화된 20대 남성의 눈치를 보는 동안 20대 여성은 무시당하고 있었다. 가임기 여성으로만 재현되거나 아예 재현되지 않는 식이었다. 15.1%는 다른 세상을 달라는 선언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비혼이 대두된 배경을 들여다보지 않고 “애는 누가 낳냐” 물은 결과 투표율은 세대와 성별로 유의미하게 갈렸다. 선택지 없음의 고문 끝에 정치적 지향에 부합하는 후보를 갖게 된 것이다.

생각하지 않는 자는 생각하는 자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다. 이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10대 여성이 곧 20대가 될 거라는 것이다. 젊은 여성은 계속해서 정치의 주체로 살아가며 나이 들 것이다. 정치가 잘못될 때 타격받는 사람은 정치를 알게 된다. 우리는 너무 오래 무시당해왔다. 같은 이유로 이들이 세상을 바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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